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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s/1970

봄비 - 퀘션스 / 1970

by Rainysunshine 2021.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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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신중현이 만든 곡으로 처음 발표한 것은 신중현1968년 말 결성한 덩키스(Donkeys)라는 팀이다. 맨 위에 신중현 사운드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는 이 음반은 표지만 봐서는 보컬을 맡고 있는 이정화의 솔로 앨범인 듯한 착각을 준다. 당시의 멤버는 신중현(리드 기타), 이태현(베이스), 김호식(드럼), 김민랑(오르간), 오덕기(리듬 기타), 이정화(보컬). 이 음반은 그리 인기를 얻지 못했고 이정화가 베트남으로 떠나면서 팀은 해체되었다. 덩키스는 국내 음악사에서 처음으로 사이키델릭 음악을 한 팀으로 평가받고 있다.

 

봄비가 크게 히트한 것은 신중현1970년 초 결성한 퀘션스(Questions)가 발표한 버전이다. 멤버는 신중현(리드 기타), 이태현(베이스), 김대환(드럼), 김민랑(오르간) 이었고 보컬은 박인수, 김추자, 송만수, 임성훈, 임희숙 등의 객원보컬을 기용했다. 퀘션스의 현재 표기는 퀘스천스로 해야 된다. 당시는 발음 표기대로 쓰지 않고 들리는 대로 표기했던 것 같다.

 

퀘션스의 음반은 킹 레코드에서 나왔고 19703, 7, 11일 재판, 삼판을 찍었다. 디자이너와 실무자간의 소통이 잘 안 돼서 그런지 몰라도 잘 못 표기된 곳이 더러 있다. 그대는 바보명동거리송만수가 아니라 임성훈이 부른 것이며 빗속의 여인임성훈이 아니라 송만수가 불렀다.

 

당시 신중현은 거의 해마다 그룹을 결성한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에 대해 당시 베이스를 맡았던 이태현8군 무대에서는 이름을 1년 이상 못 씁니다. 왜냐하면 1년이면 전국의 미군 클럽을 거의 다 돌기 때문에 같은 이름이면 부킹이 안돼요. ‘봤는데 왜 또 보냐?’는 식이죠. 그렇기 때문에 매년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오디션에 받아주질 않아요. 바꾸고 싶어서 바꾸는 게 아니라 상품성 때문에 바꾸는 거죠. 그때 활동한 분들이 이름을 다 기억 못하는 게 그런 이유에서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음반의 히트로 신중현은 일본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상상초월의 대우를 제안 받았지만 일본인으로 귀화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신중현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지금의 한류 열풍으로 인해 아무 장벽 없이 일본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을 보면 당시에는 한일 양국의 벽이 얼마나 높았었나 알 수 있다.

 

이 곡은 신중현이 서울 원효로에서 하숙을 하고 있던 1968년 봄에 만들었다. 외로운 맘이 들었던 그는 어느 새벽 하숙집을 나와 마음을 달래려고 산책을 했고 그 때 안개 속에서 이슬비를 맞으며 봄비의 후렴구인 나나 나나나 나나나하는 멜로디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멜로디를 읊조리며 하숙집으로 돌아와 곡을 완성했다.

 

원래는 10분이 넘는 곡이지만 음반사 사장인 킹박이 무단으로 편집해 실었다. 2015년 MBC <복면가왕>에서 우리동네 음악대장 하현우가 불렀다. 

       

20140530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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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션스19703월 발표한 음반의 왼쪽에는 신중현 작편곡집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어 그룹의 느낌보다는 작곡가의 프로젝트 앨범 같은 인상을 준다. 이 음반에서 박인수봄비를 불러 전무후무한 소울 보컬의 1인자로 등극한다.

 

신중현박인수와의 첫 만남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67년 어느 날 낮에 연습하고 있는데 박인수가 찾아와 자기를 한 번 봐 달라고 했어요.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니 소울 가수라고 말했는데, 그 어투에서 자신감이 느껴졌죠. 템프테이션스(Temptations)My Girl오티스 레딩(Otis Redding)Dock Of The Bay를 불렀는데 그야말로 흑인이 울고 갈 정도였어요. 거기에 플래터스(Platters), 샘 쿡(Sam Cooke), 레이 찰스(Ray Charles) 등 흑인 가수의 노래라면 못하는 게 없었죠. 바로 그날 저녁 무대에 세웠는데 박인수의 모션 하나하나에 박수를 치고 난리가 났어요. 연세대 앞 내 사무실에서 봄비만 가지고 1주일을 연습시켜 무대에 세웠죠. 무릎을 꿇고 땅을 치며 뽑아 올리는 절창에 공연장은 항상 떠나갔어요. 그게 국내 최초의 소울 무대였을 거예요. 아마 어릴 때 기지촌에서 그런 무대를 보고 자란 듯해요. 지금도 사람들에게는 봄비 하면 박인수라고 말했다

 

또한 박인수씨는 한국 최초의 소울 가수로 소울 맛을 제대로 낼 줄 아는 가수였어요. 영어 발음이 좋고 손을 비비며 노래하는 것과 오만가지 인상을 쓰며 노래 부르는 것이 인상적 이었죠”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박인수는 공연을 펑크 내는 등의 기행으로 그룹에 자주 손해를 입혔다. 신중현은 이로 인해 이후의 곡들은 자신이 직접 불러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황색 소울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박인수는 한국전쟁 때 고아가 되어 12살에 미국으로 입양되었고 15살에 다시 국내로 들어와 미8군에서 일을 하며 생활했다. 그러다 그의 노래 실력을 알아본 한 미군의 소개로 미8군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고 미8군에서 어느 정도 유명해진 뒤 신중현을 찾아갔다. 

1976년 대마초 파동을 겪은 후 어려운 생활을 했지만 1980 당신은 별을 보고 울어 보셨나요, 1988 신촌 블루스 음반 참여, 1990년 베스트 음반을 발표하며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나 90년대 말부터는 떠돌이 생활로 지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여러 차례 지인들의 도움으로 이일 저일 해보았으나 적응하지 못했고 저혈당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다. 2002년 선·후배들의 도움으로 <리멤버 박인수 사랑의 콘서트>를 열고 재기를 꿈꾸었지만 췌장에 자라난 인슐린 종양을 제거하던 중 잦은 저혈당 쇼크로 인해 뇌손상이 발생했고 그로인해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게 되었다. 하지만 2012 30년 만에 부인과 재혼하고 점차 회복상태에 있으며 <박인수와 함께 하는 솔의 만남-어메이징 그레이스>, <박인수와 친구들 앵콜 공연> 등을 통해 복귀했다. 이런 근황은 KBS 1TV <인간극장>, TV조선 <대찬인생>, SBS <좋은 아침> 등에서 조명했다.

 

개인적으로 박인수의 보컬은 우리나라의 역대급 보컬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노르웨이 숲>, <신세계>에 등장한 영화배우 박인수가 외모적으로 젊은날의 가수 박인수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없지 않다.   

 

 

참고자료

 

신중현과 아름다운 강산 노재명 새길 / 1994

박인수 현지운 이즘 / 2002

록의 대부 신중현 신중현 한국일보사 / 2003

한국 팝의 고고학 1960 / 신현준 외 한길아트 / 20005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 마져 울려주네

봄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

 

[대한민국] - 김추자 19510102

[대한민국] - 애드 포(Add 4) 1962 ~ 1966

[1960s/1969] - 님은 먼 곳에 - 김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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