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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록6

나를 잊지 말아요 - 김희애 / 1987 나를 잊지 말아요는 1987년 KBS 라디오 DJ들이 모여 만든 옴니버스 앨범 에서 대한민국 배우 김희애가 발표한 곡으로 KBS 3위 등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고 아직까지도 수명을 유지하고 있다. 전영록은 EBS 등과의 인터뷰에서 "앨범이 많이 팔린 걸로 알고 있는데, 작곡료로 10만원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싱어송라이터 전영록이 만들고 백업 보컬을 맡았다. 전영록은 "원래는 배우 이덕화씨를 위해 만들었어요. 그러다 KBS에서 곡 의뢰가 와서 주게 되었는데 대학교 후배인 김희애씨에게 갔어요. 제가 다른 작곡가로서 다른 사람에게 준 첫 곡이예요. 김희애씨의 보컬은 굉장히 과감해요. 그리고 창법이 독특해요. 비브라토가 되게 특이하고요"라고 말했다. 이덕화는 KBS 등을 비롯한 다수의 프로그램에.. 2022. 12. 19.
애심 - 전영록 / 1975 애심(사랑의 낙서)은 대한민국 싱어송라이터 전영록이 1975년 데뷔 앨범 에 수록한 곡으로 멜론 1976년 연말차트 28위에 올라 있다. 전영록은 KBS전주 등 다수의 프로그램(이하 모든)에서 "이 곡은 나올 때는 별 반응이 없었는데요. 이듬해 저와 최미나씨가 출연한 이형표 감독의 1976년 영화 의 주제가로 사용되었어요. 여기에 깔리면서 노래가 갑자기 떴어요"라고 말했다. 김용기 작사, 작곡의 곡으로 전영록은 "영화 출연 제의가 들어왔어요. 김수용 감독의 라고요. 그래서 제 노래를 삽입시켜주면 출연하겠다고 했죠. 영화에 급하게 사용할 곡이 필요해서 선배인 김용기씨에게 부탁을 해서 받았어요. 백치아다다를 부른 나애심씨가 제 고모인데요. '야 이 노래 내 노래지? 기특하다'라고 말씀하시던 게 기억나요"라고.. 2022. 12. 17.
종이학 - 전영록 / 1982 종이학은 전영록이 1982년 발표한 여섯 번째 앨범에 수록한 곡이다. 당시 차트에서 1위를 하지는 못했지만 상위권에 오래 머물렀다. S.G워너비, 이기찬, 손호영, 장미여관 등이 리메이크 했다. 작사는 이건우, 작곡과 편곡은 이범희가 했다. 전영록은 1979년 누군가라는 곡을 발표한 후 가수를 포기했다가 1980년 5월 서울 국제가요제에서 지나간 시절의 연가로 금상과 빌보드상을 받은 이후 자신을 얻어 재기 작을 발표하게 되었고 종이학을 비롯해 지나간 시절의 연가, 그대 뺨에 흐르는 눈물 등이 좋은 반응을 얻어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마음을 바꾸게 된 것에 대해 1982년 11월 2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 노래 수준에 환멸을 느껴 두 번 다시 노래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2019. 10. 12.
바람아 멈추어다오 - 이지연 / 1989 바람아 멈추어다오는 이지연이 1989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에 수록한 곡이다. 전영록이 만들고 유현상이 프로듀서를 맡았다. KBS 음악순위 프로그램 에서 5주간 1위를 차지했다. 러브홀릭이 2006년 앨범에서, 장나라가 전영록 30주년 기념앨범 에서, 김지우, 허각이 KBS 2TV 에서 각각 리메이크 했다. 모바일 리듬 액션 게임 오투잼 아날로그의 특집 기획 프로젝트 '명곡을 찾아라‘에 사용되었고 강보라가 보컬로 참여했다. 유현상은 자신의 자서전 에서 전영록이 이 곡을 쓰게 된 계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연의 매니저로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던 나는, 어느 날 차안에서 탤런트 김희애가 부른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노래를 들었다. 지연이가 불러도 좋을, 지연이에게 잘 어울리는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9. 9. 26.
이지연 19701031 수없이 떴다 지는 연예계의 크고 작은 별들처럼 이제는 옛 팬들의 기억 속에서만 반짝거리고 있지만, 이지연이란 이름은 '90년대의 H.O.T나 2000년대의 보아 혹은 장나라와 같이 '80년대를 대표할만한 틴 아이돌 스타였다. 김완선을 필두로 김승진, 박혜성 등의 10대 스타를 배출한 '80년대의 시장은 그녀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나긴 조용필의 독주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80년대 중반의 우리 대중 음악은 주현미를 중심으로 한 트로트 진영과 조용필, 전영록, 김수철, 이문세, 윤시내, 정수라, 나미, 이선희 등이 혼전을 벌이던 메인스트림 진영, 헤비메탈과 언더그라운드의 조용한 혁명 등이 힘 겨루기를 하고 있었고 전 세대에 비해 풍요롭게 자랐던 10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소방.. 2013. 3. 6.
장덕 19620421 ∼19900204 “잊지 말아요/ 우리의 사랑을/ 잊지 말아요/ 우리의 기억들을/ 이제는 시간이 됐어요”. 한창 성장기에 있던 약관의 한 뮤지션은 이와 같이 이별의 가사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 모든 음악인의 죽음은, 팬들에게 공허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괴로움을 동시에 안겨주기 마련이지만 나이 어린 스타일수록 그 황당함은 배가된다. 우리 음악계의 지각변동을 바로 목전에 둔 1990년, 아까운 나이로 생을 마감한 장덕은 '80년대 추상적이고 모호했던 가사를 가지고 있던 음악들의 모습을 띠고 있으면서도 당시 10대들이 품고 있던 생각을 표출할 수 있었던, 신세대적 감각이 출중했던 프로듀서 중의 한 명 이였다. 그녀의 음악은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그로 인한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한 결 같이 어둡게 이별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2012.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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