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은 작곡가 이세건이 만들었다. 이세건은 이 곡으로 1984년 KBS 가사대상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이선희가 SBS <힐링 캠프>와 JTBC <히든싱어3>에 출연해 말한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고2때 노래를 배우기 위해 남영동의 장욱조 음악실을 찾아 심사를 받으러 갔었어요. 노래는 잘 부른다는 말을 들었지만 수업료가 비싸 사무실을 다닐 수가 없었죠. 그런데 사무실을 나오던 중에 한 무명의 작곡가가 악보들을 꾸겨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선생님 왜 악보를 버리세요?’라고 물으니 ‘아무도 내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말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부르면 안 될까요?’라고 물었더니 맘껏 가져가서 부르라고 하시는 거예요. 바로 그 악보들 중에 J에게가 있었어요. 이후 저작권은 모두 선생님을 드렸어요”라고 말했다. 이세건은 이후 민해경에게 사랑은 이제 그만, 오복에게 J 그대는, 소녀 등을 주며 히트 작곡가가 된다.
가요제에 단 둘이 출전하게 된 것에 대해 임성균은 2011년 뉴욕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학년 때 음악 동아리 4막5장을 창단했어요. 그리고 이듬해 학교 축제에서 가창력이 돋보였던 이선희를 멤버로 영입했죠.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가요제를 위해 호흡을 맞춘 건 불과 3개월 남짓에 불과했어요. 당시 우리 동아리는 그룹과 혼성듀엣 두 부문에 걸쳐 신청해 놓았었는데 그룹은 예선에서 탈락하고 혼성듀엣만 통과했어요. 보통 예선에서 몇 소절만 부르면 심사위원들은 통과 여부만을 곧바로 결정했는데 J에게는 1절을 끝까지 다 들으시더라고요. 느낌이 좋았죠”라고 말했다.
대상 수상 후 4막 5장으로 활동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임성균의 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수상 이후 방송 활동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어요. 하지만 군대에 가야했죠. 어차피 가야 할 곳이었기에 이선희에게 솔로를 권유했어요. 그리고 저는 군 생활을 한 뒤 제대 후에 기획사에 들어갔죠. 1989년 솔로 앨범도 발표했지만 소속사에서 뇌물 스캔들이 터져 ‘가수는 내 길이 아닌가보다’ 싶었어요. 그저 음악이 좋아 미사리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의 스산한 삶을 보며 ‘어쩌면 나의 미래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 가수의 꿈을 접었죠. 그리고 무역회사에 들어간 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이민을 갔어요.” 임성균은 한인들을 위해 4막5장을 재결성해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연 날 이선희의 무대의상은 아직까지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이선희는 큰 안경과 파마머리는 부모님의 눈을 속이기 위해, 월남치마를 입은 것은 “청바지는 안 된다”고 말해 대회규정상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치마는 관객으로 온 초등학생의 옷을 빌려 입은 것이다. 이선희는 “치마를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어 치마 빌려준 학생을 찾아가고 있었는데 대상 수상 소리가 들렸어요”라고 말했다.
20151116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2014/08/30 - [2000's/2005] - 인연 - 이선희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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