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 밴드 각설탕(The Sugarcubes)이 점점 인지도를 얻어가자 비요크(Björk)는 펑크가 아닌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어졌다. 마침 팀원들도 <Stick Around For Joy>를 발매할 즈음에는 다들 딴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10대에 이미 써 두었던 곡들을 들고 프로듀서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The Anchor Song이나 <Post>에 수록된 It’s Oh So Quiet과 같은 재즈 스타일의 음악을 하고 싶었던 그녀의 레이더망에 걸린 사람은 배드 테이스트 레이블의 아스문두르 존슨(Ásmundur Jónsson)과 원 리틀 레코드사의 프로듀서 데릭 비르켓(Derek Birkett)이였다. 하지만 데릭과 런던에서 작업을 진행하던 그녀는 당시 남친의 소개로 알게 된 넬리 후퍼(Nellee Hooper)를 만나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넬리와의 작업에 더 마음이 쏠린 것이다. 비요크는 결국 지금까지 작업해왔던 모든 이들을 해고하고 넬리와 그가 소개한 사람들하고만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어찌된 일인지 둘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알았던 사람처럼 거의 모든 면에서 스타일이 일치했다. 결과적으로 넬리는 비요크와 공동으로 진행한 Like Someone In Love와 비요크 혼자 프로듀싱 한 The Anchor Song을 제외한 나머지 곡에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다.
그렇게 몇 개월에 걸쳐 뚝딱거리며 만든 <Debut>에서는 5곡의 싱글이 발표된다. 첫 주자는 앨범 발표에 앞서 레이 브라운 오케스트라(Ray Brown Orchestra)의 Go Down Dyin‘을 샘플링한 퍼커션으로 시작하는 Human Behavior다. 평론가들이 앨범의 백미로 추켜세운 이 곡은 미국 모던 록 차트와 댄스 차트에 각각 2위에 랭크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이터널 선샤인>이란 영화로 유명한 감독 미셸 곤드리(Michel Gondry)가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당시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최고의 뮤직 비디오 100선(96위)에 선정되었다. 그 다음은 “그는 소년이지만 미의 여신”이라고(당시 애인의 미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노래한 곡) 노래하는 Venus As A Boy를 싱글로 내놓았다. 힘을 뺀 일렉트릭 사운드로 포장한 이 음악의 후반부에서 비요크는 초현실세계와 교신하는 듯한 고음으로 아방가르드 스타일을 과시한다. 이 뮤직비디오에서 비요크는 아주 독특하고 기괴한 헤어스타일과 도마뱀 친화적인 모습으로 당시의 MTV 매니아들에게 기묘함을 주었다. 지금 보면 아무렇지도 않지만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싸이, 자두, 파충류소녀 디에나가 ‘엽기’라는 타이틀로 인기를 끌었던 2000년대 초반보다 10여 년 앞선 것이다.
다섯 곡의 싱글 외에도 군중 속의 고독을 묘사한 Crying, 한 지겨운 파티에 참석했다가 느낀 점을 표현한 There's More To Life Than This, Big Time Sensuality와 비슷한 감정을 노래하는 One Day, 자신은 아이슬란드에 살고 남친은 영국에 살 때의 감정을 노래한 Aeroplane, Violently Happy와 반대의 상황으로 “내가 보살펴 줄게 나에게 오라”는 Come To Me같은 곡들이 다양한 악기와 전자음, 그리고 변화무쌍한 비요크의 목소리로 청각을 인정사정없이 자극한다. 당시의 메인스트림과 조금 다른 길을 가는 이 앨범에게 NME는 올해의 앨범이라는 찬사로 화답했다.
이후에도 비요크는 <Post>와 <Homogenic>을 비롯해 내놓는 앨범마다 대부분 호평을 받는다. 하지만, 첫인상이 강하게 남아서인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다른 앨범보다는 <Debut>에 먼저 이끌린다. 특히 Big Time Sensuality를 들을 때면 커다란 클럽의 한 가운데에서 있는 상상을 하곤 한다. 가창력 위주의 기승전결이 뚜렷한 전형적인 곡 패턴에 익숙한 분들은 거부감이 일어 한 번 듣고 방치할 수도 있겠지만, 이따금씩 불현 듯 떠오르는 비요크의 음악은 들을수록 매혹적이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100만장 이상 팔렸다는 사실도 납득이 된다. 특히 요즘처럼 획일화된 음악들이 전파를 장악한 시점에 뭔가 다른 음악을 찾는 분들에게 이 앨범을 적극 추천한다. 매너리즘에 빠진 귀를 신선한 감각으로 채워 줄 것이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
20120306 다음뮤직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1990's/1996] - 비요크(Björk) 기자를 공격하다
[2000's/2000] - New World - Björk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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