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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외31

조르쥬 무스타키(Georges Moustaki) 19340503 - 20130523 조르쥬 무스타키(Georges Moustaki)는 이집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유대계의 그리스인들이셨고 프랑스를 좋아하셔서 프랑스 지지자들이셨다. 조르쥬는 이런 영향 하에서 이집트에서 자랐지만 부모님이 프랑스 학교에 보냈고 거기서 프랑스어를 배웠다. 부모님은 전 세계인이 찾아오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명한 서점을 소유하고 계셨는데 그로인해 조르쥬는 전 세계 다양한 계통, 인종의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그게 어느 정도였나 하면 부모님은 아버지가 5개 국어, 어머니가 6개 국어를 할 정도였다. 그로인해 조르쥬는 이탈리아어 같은 경우는 집에서 깨쳤다. 17살에 프랑스에서 여름을 보낸 뒤 조르쥬는 프랑스로 간다. 처음에는 시집을 파는 방문책판매원을 했.. 2016. 1. 24.
얼 클루(Earl Klugh) 19530916 재즈로 팝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 얼 클루(Earl Klugh)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10세에는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Merry), 밥 딜런(Bob Dylan) 등 1960년대의 포크 싱어들을 좋아했고, 스페인풍의 기타 연주에도 관심을 기울였던 그는 가장 영향을 준 인물로 조지 벤슨(George Benson),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 찰리 파커(Charlie Parker), 쳇 엣킨스(Chet Atkins) 등을 꼽는다. 뛰어난 재능으로 선배들을 놀라게 했던 그는 15세에 재즈 플룻 연주가인 유제프 라티프(Yusef Lateef)의 앨범에 이름을 올리며 음반을 통해서는 처음으로 이름을 등록하게 된다. 이후 1971년 조.. 2015. 12. 20.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19420325 - 20180816 이 글에서는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1942~2018)의 히트곡을 개괄하도록 하겠다. 아레사를 개괄하기 위해선 콜롬비아, 애틀랜틱, 아리스타로 이어지는 레이블 교체기를 살펴야 할 것 같다. 음악 스타일이 레이블마다 바뀌기 때문이다. 모타운과 경합을 벌인 첫 레이블 콜롬비아는 아레사의 목소리를 스탠더드 발라드 시장에 내놓았다. 전략적으로 포스트 빌리 홀리데이(Billy Holiday)로 만들기 위해 재즈에 기반을 둔 발라드로 시장을 돌파하려 했기 때문이다. 당시 콜롬비아의 창립자이자 CEO였던 존 해몬드(John Hammond)는 후에 아레사가 품고 있던 가스펠적인 이력에 무지했다고 술회했다. 결과적으로 6년 동안 Rock-a-Bye Your Baby with a Dixie Melo.. 2015. 11. 29.
마티카(Martika) 1969 미국 대중음악계에는 1950년대부터 10대들의 음악적 향연이 있어왔다. 가장 가까운 예로는 2000년대 초반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를 필두로 한 일군의 여성가수들, 그리고 백스트리트 보이즈(Backstreet Boys)와 엔싱크(N-Sync)를 내세운 틴팝의 차트 장악을 꼽을 수 있지만, 틴팝이란 말은 1980년대 후반 대중음악계에서 십대들의 약진을 두고 시작된 말이다. 당시에 티파니(Tiffany)와 데비 깁슨(Debbie Gibson)의 양대 산맥이 대세였고 바비 브라운(Bobby Brown)이 있었던 뉴 에디션(New Edition)을 시작으로 리키 마틴(Ricky Martin)이 살짝 몸담았던 메누도(Menudo), .. 2015. 11. 14.
가제보(Gazebo) 1960 “너 가제보(Gazebo) 알어?” “응? 그게 뭔데?” “가수이름이야”, “푸하하 그런 가수가 있어?” 가제보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우리 말의 ‘가재’가 연상 돼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음악과 상관없어 보이던 이름은 초기 신스-팝에 대한 기호를 결정짓는 역할을 했다고 느껴진다. 기억 상으로는 Lunatic을 처음들은 것 같고 I Like Chopin과 Masterpiece 등이 그 다음이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은 처음으로 음반을 샀던 시기에 구입한 것들 중 하나라 잊을 수 없는 음반이다. 가제보의 고향은 레바논으로, 이탈리아 외교관인 아버지와 미국 가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외교관이어서 어릴 때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고 5개 국어를 배웠으며 여자 .. 2015. 10. 18.
Loggins And Messina 로긴스 앤 메시나(Loggins And Messian, 이하 L&M)은 미국 밴드 포코(Poco)와 버팔로 스프링필드(Buffalo Springfield)에 참여했었고 콜롬비아사와 주로 일하던 독립 프로듀서 짐 메시나(Jim Messina)와 메시나를 만나던 당시에는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케니 로긴스(Kenny Loggins)가 결성한 듀오다. 둘은 메시나의 집에서 아주 많은 곡을 만들고 녹음하며 지냈고 메시나의 도움으로 로긴스도 콜롬비아사와 계약을 맺는다. 원래 메시나는 프로듀서로서 로긴스의 솔로 앨범을 계획했었고 로긴스의 솔로 성공을 위해 작곡은 물론이고 편곡 연주 보컬 등에 참여하며 물심양면으로 로긴스를 도왔다. 하지만 회사의 방향은 메시나의 이름을 어떻게든 대외적으로 크게 표현하는 식으로 방침이 .. 2014. 10. 27.
Mike Oldfield 19530515 언제나 충격은 갑작스럽게,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혼자 모든 악기를 다루고 2500번 이상의 오버 더빙을 한 앨범 는 이제껏 우리가 들어왔던 모든 음악의 선입견을 깨버렸다. 세상의 악기는 기타와 피아노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장르는 록과 컨트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이크 올드필드(Mike Oldfield)는 이 한 장의 명반 속에서 이제껏 전통의 이름으로 군림해 오던 모든 것을 와해시켰고 동시에 완성해냈다. 그러나 더욱 더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이 멀티 악기 연주자의 나이였다. 그는 고작 스무 살에 비틀즈(The Beatles)가 몇 년 동안의 화합 끝에 일구어 놓은 아트 록의 경지에 올라서 버린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그랬듯 이 앨범은 신생 레이블인 리처드 브랜슨(R.. 2012. 10. 28.
F.R. David 19470101 1980년대 초반 뉴웨이브의 물결이 전 세계를 강타할 때 국내에서는 어떤 가수보다도 프랑스 출신의 한 가수가 먼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F. R. 데이빗(F. R. David)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가수는 "사랑한다는 표현을 글로 옮기기 어렵다"는 가사의 싱글 Words와 "음악이 나를 슬프게 한다"는 Music으로 한반도를 뒤집어 놓았고 계속해서 Pick Up The Phone으로 그 상승세를 몇 년간 지속했다. 멜로디 위주의 음악과 119-125 사이의 bpm을 가진 하이 에너지 스타일은 그대로 우리 음악 시장을 파고 들었고 그의 첫 번째 음반은 이후 마이크 올드필드(Mike Oldfield)와 컬처클럽(Culture Club)으로 인기를 누리는 예음사에서 높은 판매고로 소위 대박의 반열에 올랐다.. 2011. 12. 18.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 - 1750 후대에 음악가 집안으로 연구 되는 바흐가는 바흐가 태어날 당시에도 이미 가문에서 배출한 음악가들이 아이제나흐 근방과 도시에서 많이 활동하고 있었다. 현재 세계에서 최고의 음악가 중 한 명으로 칭송받는 바흐는 이렇듯 음악적 세례를 듬뿍 받으며 태어난다. 비록 집안형편은 넉넉치 않았지만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큰 형의 집에 기거할 때는 하프시코드와 오르간을 배울 수 있었다. 큰 형 크리스토프 역시 음악가였다. 파헬벨의 제자였던 그는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였다. 그는 바흐와 살면서 매우 엄격하게 지도했지만 그 엄격함이 질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을 여러 곳에서 남긴다. 특히 동생이 보지 못하도록 중요한 악보를 벽장에 숨겨 두곤 했다. 바흐는 형이 보여주지 않는 파헬벨의.. 2011.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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