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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한국대중음악사13

1960년대 단조 발라드 (이지리스닝, AC음악) 1964 떠날 때는 말없이 (유호 작사, 이봉조 작곡) - 현미 보고 싶은 얼굴 (현암작사, 이봉조 작곡) - 현미 회전의자 (신봉승 작사, 하기송 작곡) - 김용만 1965 나는 곰이다 (추식 작사, 이봉조 작곡) - 최희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하운사 작사, 박춘석 작곡) - 곽순옥 불나비 (김강섭 작사, 작곡) - 김상국 맨발로 뛰어라 (유호 작사, 이봉조 작곡) - 남일해 엄처시하 (김석야 작사, 홍현걸 작곡) - 최희준 목석같은 사나이 (정민섭 작사, 작곡) - 이시스터즈 1966 초우 (박춘석 작사, 작곡) - 패티김 1967 빛과 그림자 (길옥윤 작사, 작곡) - 패티김 안개 (박현 작사, 이봉조 작곡) - 정훈희 팔도강산 (신봉승 작사, 하기송 작곡) - 김용만 1968 구월의 노래.. 2019. 9. 29.
미군 문화의 영향 전쟁 후 미군기지를 통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팝음악이 급속도로 유입되었고 유행하였다. 주한미군은 ‘미8군쇼’를 만들어 국내 뮤지션들의 시장을 만들어 주었고 그로인해 대중음악 종사자들의 생계를 위한 터전이자 훈련장소가 되었다. 그로인해 서양을 동경하거나 서양의 풍물을 그린 노래들, 영어 제목의 노래, 영어로 된 예명과 팀 이름 등이 등장하였다. 럭키 모닝 (유광주 작사 / 전오승 작곡)청춘 아베크 (이철수 작사 / 이재현 작곡)내 고향으로 마차는 간다 (유노완 작사 / 전오승 작곡)아리조나 카우보이 (김부해 작사 / 전오승 작곡)대전 부르스 (최지수 작사 / 김부해 작곡)노랫가락 차차차 (김영일 작사 / 김성근 작곡)늴리리 맘보 (탁소연 작사 / 나화랑 작곡)기타 부기 (김진경 작사 / 이재현 작곡.. 2019. 9. 17.
전쟁가요(전시가요, 진중가요) 전쟁가요는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이후에 유행한 스타일의 노래로, 군가와 대중음악이 합쳐진 것이다. 장르적으로는 군인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는 군가풍이 있고 주제 면에서는 전우의 죽음을 노래한 곡, 이산가족의 비애를 노래한 곡, 전쟁의 아픔, 전선에서 꽃핀 인간적인 정서를 노래한 곡들이 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남북분단으로 인한 현실과 이산, 실향, 반공사상과 국가안보를 중요시한 국가 정책에 힘입어 계속 오랫동안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였다. 전선야곡 (유호 작사 / 박시춘 작곡) 굳세어라 금순아 (강사랑 작사 / 박시춘 작곡) 아내의 노래 (유호 작사 / 손목인 작곡) 삼다도 소식 (유호 작사 / 박시춘 작곡) 전우야 잘 자라 (유호 작사 / 박시춘 작곡) 6.25의 노래 (박두진 작사 / 김동진 작곡.. 2019. 9. 16.
일제강점기 창작 대중음악 한동안 일본의 번안 곡들만 발표하던 가수들은 1920년대 말에 이르러 드디어 창작 대중음악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제1호는 김영환 작사, 작곡의 강남달(낙화유수)로 인정받고 있다. 이 당시 히트한 창작곡들로는 세 동무, 목포의 눈물, 황성 옛터(황성의 적) 등이 있다. 이 당시 창작곡들의 특징으로는 3박자, 민요풍, 민중들의 애환을 담은 곡들이 많다는 것 등이 있다. 1930년대에 들어서는 신민요가 출연한다. 신민요는 대개 3/4박자로 세마치와 굿거리 장단을 사용한다. 아리랑, 노들강변, 능수버들, 맹꽁이타령, 아리랑랑랑, 울산타령(울산아가씨), 조선팔경가(대한팔경가), 처녀총각, 풍년가 등이 있다. 1930년대에는 일본 엥카의 영향을 받은 트로트 또한 창작되기 시작한다. 이 당시 히트한 트로트들로는 애수.. 2019. 4. 29.
한국 대중음악 초기의 일본 대중음악 현대적 의미의 대중음악이 전 세계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19세기 영국 산업혁명 시기다. 우리나라는 1910년대에 시작되었는데 외국 선교사들의 찬송가와 더불어 일본의 대중음악이 강한 영향을 끼쳤다. 창작을 하기 전에 일본의 인기곡들을 번안해 불렀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의 대중음악 1호는 나카야마 신뻬이(中山晋平)이 작곡한 カチューシャの唄이다. 이 곡은 톨스토이(Граф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18280909~19101120) 원작의 을 연극으로 공연할 때 여자 주인공 카츄샤(카튜샤, Катюша)가 부르는 노래다. 이 곡은 2년 후 우리나라에서 을 공연할 때도 카츄샤의 이별가란 제목으로 번안해 불렀고 이 제목 외에 카츄샤, 카츄샤의 노래 등의 제목으로 불렀다. .. 2019. 4. 21.
일제강점기 음반시대 축음기와 음반의 등장으로 인류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축음기와 음반이 들어온 것은 1880년경으로 추정된다. 1기 (1880 ~ 1910) 축음기의 도입과 함께, 미국의 음반 회사가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의 육성이 처음 녹음된 것은 1896년이다. 당시 미국으로 이민을 간 우리나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문화인류학적인 차원의 민속조사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음반이 전해오고 있지는 않지만 1899년 가 음반으로 최초로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907년 미국의 콜롬비아사가 1908년에는 미국의 빅터사가 우리나라 전통음악을 녹음해 판매했다. 2기 (1910 ~1925) 음반이 뿌리를 내린 시기로 미국 회사.. 2019. 3. 18.
1920 ~ 1930년대 가곡 1920 ~ 1930년대 가곡 우리나라에서 (서양음악 형식의) 가곡(歌曲)이란 장르는 1920년대에 들어 그 틀이 형성되었다. 초기의 곡들 중에는 단순하고 소박한 곡들이 많아 나중에는 동요로 분류된 가곡들도 적지 않다. 지은이의 감정 표현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내용적으로는 낭만적이고 정서적으로 서정적이다. 대부분 정형시의 가사에 동일한 선율이 반복하는 유절 가곡이며, 선율과 리듬 면에서 민요적인 요소를 취하고 있고 반주가 선율에 종속되어 있다. 홍난파 – 봉숭아(봉선화), 봄처녀, 사랑, 옛동산, 성불사, 장안사, 금강에 살으리랏다현제명 – 니나, 가을, 고향 생각, 오라, 나물 캐는 처녀, 조선의 노래안기영 – 그리운 강남, 마의 태자박태준 – 동무생각조두남 - 옛이야기 1930년대는 한국 가곡의 어법.. 2019. 3. 11.
창작동요의 시작 동요란 어린이들의 생활 감정이나 심리 상태 등을 표현한 노래로 외국의 경우는 민요의 범주에 속하지만 우리나라는 동요는 양악에 속한다. 전래동요와 창작동요가 있는데 창작동요의 역사는 1920년대부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민간이 주도한 자생적 민족 문화 운동으로 볼 수 있다. 방정환(1899 ~ 1931)을 중심으로 한 색동회가 처음 시작했다. 색동회의 윤극영(1903 ~ 1988)은 반달을 발표해 동요로서는 최초의 국민 애창곡이 되었다. 때문에 반달 이전에 창작 동요가 있긴 하지만 반달을 한국 최초의 창작 동요로, 이 곡이 발표된 1924년을 창작동요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이 외에도 정인섭(1905 ~1983) 중심의 녹양회, 마해송(1905 ~1966) 중심의 두루미회, 유기홍 중심의 녹성동요회, 경성.. 2019. 3. 3.
창가독립사건 창가독립사건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부터 1919년까지 있었던, 음악으로 일제강점기를 돌파하려했던 사건으로, 개성의 한영서원 선생님들인 신영순, 백남혁, 정사인 등이 주축이 되어 북간도의 민족학교에서 가져온 창가집들을 모아 새로운 창가집을 만들고 보급, 교육했던 운동이다. 이들은 1911년부터 1914년까지 창가를 수집하고 1915년 1차, 1916년 2차로 창가집을 발행해 방학동안 전국의 음악반 책임자, 음악선생님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든 전국학생하령회에 1915년 90권, 1916년 99권을 보급했다. 영웅모범 같은 곡에 등장하는 “일본의 천왕을 종으로 삼고 일본의 황후를 하녀로 삼아 부리고 말리라”는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창가집의 내용은 대부분 반일, 배일적인 내용이었고 후에 발각돼 재판에 넘겨진 .. 2019.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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