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제강점기6

일제강점기 창작 대중음악 한동안 일본의 번안 곡들만 발표하던 가수들은 1920년대 말에 이르러 드디어 창작 대중음악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제1호는 김영환 작사, 작곡의 강남달(낙화유수)로 인정받고 있다. 이 당시 히트한 창작곡들로는 세 동무, 목포의 눈물, 황성 옛터(황성의 적) 등이 있다. 이 당시 창작곡들의 특징으로는 3박자, 민요풍, 민중들의 애환을 담은 곡들이 많다는 것 등이 있다. 1930년대에 들어서는 신민요가 출연한다. 신민요는 대개 3/4박자로 세마치와 굿거리 장단을 사용한다. 아리랑, 노들강변, 능수버들, 맹꽁이타령, 아리랑랑랑, 울산타령(울산아가씨), 조선팔경가(대한팔경가), 처녀총각, 풍년가 등이 있다. 1930년대에는 일본 엥카의 영향을 받은 트로트 또한 창작되기 시작한다. 이 당시 히트한 트로트들로는 애수.. 2019. 4. 29.
일제강점기 음반시대 축음기와 음반의 등장으로 인류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축음기와 음반이 들어온 것은 1880년경으로 추정된다. 1기 (1880 ~ 1910) 축음기의 도입과 함께, 미국의 음반 회사가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의 육성이 처음 녹음된 것은 1896년이다. 당시 미국으로 이민을 간 우리나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문화인류학적인 차원의 민속조사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음반이 전해오고 있지는 않지만 1899년 가 음반으로 최초로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907년 미국의 콜롬비아사가 1908년에는 미국의 빅터사가 우리나라 전통음악을 녹음해 판매했다. 2기 (1910 ~1925) 음반이 뿌리를 내린 시기로 미국 회사.. 2019. 3. 18.
창작동요의 시작 동요란 어린이들의 생활 감정이나 심리 상태 등을 표현한 노래로 외국의 경우는 민요의 범주에 속하지만 우리나라는 동요는 양악에 속한다. 전래동요와 창작동요가 있는데 창작동요의 역사는 1920년대부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민간이 주도한 자생적 민족 문화 운동으로 볼 수 있다. 방정환(1899 ~ 1931)을 중심으로 한 색동회가 처음 시작했다. 색동회의 윤극영(1903 ~ 1988)은 반달을 발표해 동요로서는 최초의 국민 애창곡이 되었다. 때문에 반달 이전에 창작 동요가 있긴 하지만 반달을 한국 최초의 창작 동요로, 이 곡이 발표된 1924년을 창작동요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이 외에도 정인섭(1905 ~1983) 중심의 녹양회, 마해송(1905 ~1966) 중심의 두루미회, 유기홍 중심의 녹성동요회, 경성.. 2019. 3. 3.
이상준(李尙俊) 1884 ~ 1948 이상준(李尙俊, 1884 ~ 1948)은 김인식, 김형준과 더불어 초기 양악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특히 김인식의 족적과 업적을 더욱 발전시킨 음악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상준은 김인식이 재직하던 조선정악전습소(조양구락부)에 입학해 김인식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이상준은 조선음악 쪽이고 김인식은 서양 음악부 쪽이라 수제자라고 볼 순 없지만 김인식에게 배운 서양음악 이론으로 악보를 채보하는 엄청난 양의 작업을 하게 된다. 이상준은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12살에 서울 정동의 피어슨 성경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서 풍금과 서양음악을 배운 그는 15살에 평양으로 가 대성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재직했고 이후에도 계속 유명한 학교들을 옮겨 다니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상준은 기존의 음악들을 서양 악보로 채보하는 작업을 꾸준.. 2019. 2. 10.
애국가 운동 대한제국은 의전과 외교 행사를 위해 양악대를 만들고 1902년 8월 15일 대한제국 애국가를 공포했다. 고종은 의정대신 윤용선에게 국가의 제정을 명했고 이에 궁중의 학자들이 모여 작사를, 양악대의 지휘자인 프란쯔 에케르트(Franz Eckert, 1852 ~1916)가 작곡을 했다. 정부가 이 곡의 악보를 공식적으로 배포했음에도 현재는 가사와 선율이 조금씩 다른 악보 10여 종이 전해져 온다. 아마도 일제 통감부가 이 곡을 금지 시킨 후 전국 각지에서 저마다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구전되어 온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 곡 외에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여러 편의 애국가들이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개화파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이 계몽운동의 차원에서 만들었다. 외국 곡의 멜로디를 사용해 가사만 붙인 .. 2019. 1. 29.
창가(唱歌) 서양음악적인 의미에서 창작음악의 역사는 1905년 김인식이 만든 학도가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학도가는 창작음악 1호라는 역사적인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이를 음악적인 장르상으로는 창가(唱歌)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직업적인 가수 등)이 부르는 걸 듣는 감상용이 아니라 직접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다. 이 말은 일본에서 유래했다. 일본에서 창가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용 노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당시의 서양식 노래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김인식에 이어 이상준이 창가를 작곡했다. 이상준은 , 등 여러 편의 창가집을 발간해 창가를 정착시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어 홍난파는 1916년 야구전을, 정사인은 추색을, 백우용은 조선유람별곡 등을 발표했다. 창작작품이 아닌 경우는 189.. 2014. 12. 7.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