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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4

쌍쌍파티1 - 주현미 & 김준규 / 1983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과 더불어 1970년대를 마감한 우리나라는 1980년대에 이르러 드디어 꿈에 그리던 민주주의를 향해 다가섰지만 신군부의 집권으로 다시 그 소망은 뒤로 미뤄지고 만다. 대신에 1970년대를 힘겹게 버텨온 우리 국민은 그간 이루어 놓은 인프라와 유가, 달러, 금리가 동시에 낮아지는 3저 현상에 힘입어 유래 없는 경제 호황을 누린다. 도심은 대중화된 자동차로 붐비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차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찾게 있었다. 국가의 경제적 성장으로 국민들은 그간의 정서를 대표했던 한을 밀어내고 신명으로 갈아타기 시작한다. 젊은 세대는 리믹스된 댄스 음악을 들었고 트로트를 소비하던 성인층은 기존의 슬프고 애상조에 젖은 트로트보다는 좀 더 발랄하고 빠른 음악에 반응했다. 이에 힘입어.. 2019. 4. 7.
사의 찬미 – 윤심덕 / 1925 사의 찬미(죽엄의 찬미)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파 여성, 소프라노 윤심덕이 1925년 발표한 곡으로 루마니아 작곡가 아이온 이바노비치(Ion Ivanovici, Jovan Ivanović, Iosif Ivanovici, Josef Ivanovich)가 작곡한 다뉴브강의 잔물결(Valurile Dunării, Дунавски валови, Donauwellen, Flots du Danube)에 우리말 가사를 붙인 번안곡이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최초의 히트곡으로 기록되고 있다. 2015년 야후 재팬 온라인 경매에서 SP음반이 520여만 엔 (당시 4800여만 원)에 낙찰되었다. 한국 음반 사상 최고가라고 한다. 윤심덕은 이 곡을 오사카에 있는 닛토사에서 녹음한 후 시모노세키에서 부산행 연락선을 탑승한 후 .. 2017. 12. 17.
애수의 소야곡 - 남인수 / 1937 애수의 소야곡은 후에 가요의 황제로 군림하는 남인수가 1937년 오케 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곡이다. 국내에서 국민가요로 불릴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일본에서도 토도로키 유키코(轟由起子)가 애수의 세레나데(哀愁のセレナーデ)란 제목으로 리메이크 해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다. 곡의 장르는 트로트로 작곡가 박시춘이 만들었고 세션도 박시춘의 기타 한 대로 끝냈다. 처음에는 시에른 레코드사에서 김상화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눈물의 해협이란 제목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1936년 남인수의 본명인 강문수로 발표했지만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남인수의 실질적인 데뷔 곡이다. 박시춘은 이듬해 오케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 곡을 다시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작사가 이부풍을 섭외했다. 새로운 가사를 입은 이 .. 2017. 6. 25.
주현미 19610927 주현미 19610927 우리대중음악계에 있어서 다른 시대 못지않게 1980년대에도 많은 거성들이 있었다. 최고의 왕관은 언제나 조용필에게로 돌려지지만 후대의 영향력에 있어서만큼은 들국화, 어떤날, 그리고 유재하가 최고의 뮤지션이다. 하지만 트로트분야로 넘어오면, 남녀를 통틀어 주현미가 그 영예를 차지한다. 실상 주현미는 트로트뿐만 아니라 메인스트림에서도 조용필 다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용필의 아성에 도전한 김수철, 이용 등은 정상권에 오르자마자 조기 탈락했고 전영록은 90년대 초반까지 승승장구했지만 전국을 뒤흔들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주현미의 인기가 후대에 방송사의 조직적인 트로트 지원에 힘입었다는 이유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그녀의 이력을 보면 인기의 유지와 롱런의 힘은 언제나 노력에서 나온다는 .. 2011.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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