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문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을 니체(F. Nietzsche)가 본 방식으로 음악의 예를 들어 살펴보면 고통에 빠진 사람 중 아폴론 쪽에 속하는 사람은 경쾌한 음악이나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며 기분을 전환해 자신의 고통을 관조하려는 사람이고 디오니소스 쪽에 속하는 사람은 오히려 더 슬픈 음악을 들으면서 그 슬픔 자체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녹여 씻기게 하는 사람인 것이다.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이별을 경험 한 후 한 쪽은 스틸 하트(Steel Heart)의 She’s Gone을 들으며 동네방네 이별의 아픔을 떠들고 다닐 수 있겠고 다른 한 쪽은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She’s Gone을 들으며 스스로 삭이는 경우일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전자는 의사표현이 확실하고 후자는 그 마음을 잘 알 수는 없을 수도 있다.
니체는 인간이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아폴론의 예술과 니오니소스의 예술이 있다고 보았고 이 둘의 결합으로 인해 비극이 탄생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 두 대립과 화합의 충동이 예술의 역사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니체는 아폴론적인 예술은 문학예술과 조형예술이고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은 음악예술과 무용예술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위에서 논문과 시로 나누어 예를 든 것이 정확하게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가 음악에 가깝다고 강변하고 싶다. 고대에는 시가 곧 음악이고 음악이 시었기 때문이다. 글자와 음악이 분리된 것은 역사 속에서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글자와 그렇지 못하고 시간만을 점유하는 음악이 갖는 차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내게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이 두 양식을 내 멋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주어진다면, 아폴론의 예술은 자신의 삶과는 무관하게 떨어져서 오로지 다른 세계로의 집중(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신(神)을 찾는 것처럼)을 통해 구현한 잘 정제된 예술이라고 보고 디오니소스의 예술은 삶과 완전하게 밀착되어 오직 자신이 처한 상황에 몰두하여 빚어낸 투박하고 강인하며 본성을 그대로 드러낸 예술로 해석하겠다. 그러므로 논문의 형식으로 짜인 논리적 완결성을 갖춰 별다른 해석의 여지가 따로 또 존재하지 않는 글들은 아폴론의 위치에, 온갖 메타포가 난무하여 읽는 사람에게 각각 다른 영감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는 시와 같은 예술은 디오니소스의 위치에 놓겠다.
20120109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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