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음악 감상이란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의 환상 교향곡(Sympphonie Fantasique)을 인상적으로 들었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이 곡이 소개된 이유는 이후 바그너(R. Wagner)의 라이트모티브(Leitmotiv, 지도동기)에 영향을 주는 고정 관념(idée fixe)이란 개념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베를리오즈는 특정한 테마를 계속 등장시켜 주인공을 떠올리게 하는 주제로 사용하게 했는데 이는 현재 흔히 말하는 테마곡의 시초가 되는 것이다. 가령 1995년 SBS에서 방영되었던 김종학 감독의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혜린(고현정)이 등장할 때마다 테마곡인 서로 다른 연인을 들려주면 어느 순간부터는 혜린이 화면에 있지 않아도 혜린을 떠올리게 되는 효과처럼 말이다.
그 중 Un bal은 환상 교향곡 2악장의 제목이다. 베를리오즈는 교향곡의 각 악장을 기존의 음악가들과 같이 알그레로, 아다지오와 같은 빠르기로 나누지 않고 베토벤(L Beethoven)의 9번 교향곡에 등장하는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처럼 제목을 달았다. 그래서 환상 교향곡은 5악장으로 되어 있고 각각 열정(Rêveries), 무도회(Un bal), 들판의 풍경(Scène aux champs), 단두대로의 행진(Marche au supplice), 마녀들의 집회에서의 꿈(Songe d'une nuit de sabbat) 등의 제목을 갖고 있다.
환상 교향곡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어떤 이상적인 여인을 만나 단 번에 사랑에 빠진 한 음악가의 이야기다. 1악장은 사랑에 대한 열정을, 2악장은 무도회와 같은 떠들썩한 곳에서도 한 사람만 생각하는 마음을, 3악장은 자연처럼 목가적인 곳에 있어서 평안함을 느끼지만 여전한 사랑에의 불안함을, 4악장은 사랑을 고백했으나 거절당하고 아편으로 음독자살하는 상황을, 5악장은 죽지는 않았으나 꿈속에서 마녀의 집회에 가서 있었던 기괴한 일들을 그리고 있다. 이 제목이 환상 교향곡인 이유는 환상적인 꿈을 꾸는 4, 5악장 때문이다.
이 곡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실제 모델은 베를리오즈 자신이다. 베를리오즈는 1827년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햄릿(Hamlet)>에서 오필리어 역을 맡은 아일랜드의 배우 해리엇 스미드슨(Harriet Smithson)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베를리오즈는 수없이 많은 연애편지를 보냈지만 단 한 통의 답장도 받지 못한다. 결국 베를리오즈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고통의 탈출구로 이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이 곡이 초연된 1830년 해리엇은 참석하지 못했지만 2년 뒤 이 곡을 듣고 베를리오즈를 다시 보게 된다. 결국 베를리오즈와 해리엇은 결혼에 골인한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불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둘은 10년 만에 별거에 들어갔고 베를리오즈는 새로운 사랑에 빠졌다.
1845년 베를리오즈가 2악장을 설명한 프로그램 노트를 토대로 보면, 음악가는 흥겨운 파티 장에서 있어도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관념으로 가득 차 있다. 하루 종일 그녀의 이미지가 그를 사로잡고 있어서 어디에서건 혼란한 마음 상태에 있는 것이다.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20140911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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