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전
그렇긴 했어도 아직까지 댄싱 퀸으로서의 위엄이 느껴지는 리듬 속의 그 춤을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음악사에서 유일하게 신중현이 제공한 이 곡은 현란한 편곡과 신대철의 기타 그리고 그녀의 모습을 제삼자의 관점에서 지켜보고 만든 가사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들린 웨이브로 인해 국내 댄싱 음악사에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김완선의 2집은 충격이 수록된 것과 리듬 속의 그 춤을이 수록된 2가지 버전이 있다). 물론 이 곡 외에도 김완선은 모든 곡을 춤으로 소화했으니 춤으로 인한 그 무수했던 찬사를 여기서 까지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김완선은 춤에 있어서 만큼은 시대를 앞서갔고 그것은 국내 대중음악사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에 의해서나 극복된다. 그리고 앞으로 춤으로 시선을 끌려는 가수들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춤을 학습해야 하는 교과서 같은 존재다. 그러니 더 이상 이에 관해 무슨 말이 필요하랴.
김완선은 매니저였던 이모의 전략에 따라 자신의 키에서 한 키 이상 높게 불러야 했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초창기 앨범을 들어보면 그녀의 치켜 뜬 눈처럼 후반부의 고음은 섹시하기도 하지만 정말 위태위태해 과연 라이브에서 제대로 소화할 지가 걱정스런 곡들이 있다. 뉴웨이브 그룹 조이(Joy) 내한공연 때 불렀다 바로 접었다는 2집의 충격외에도 1집의 안돼, 선물 등이 그렇고 나홀로 춤을 추긴 외로워처럼 아주 많은 곡들의 고음이 그렇다. 처음에는 김창훈이 만든 곡 중에 산울림의 특급열차와 무녀도가 의도적으로 음 이탈을 유도하는 느낌이 들어 혹시 김창훈만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지만 “너무 잘 부르면 자주 안 듣는다”는 이모 한백희의 철학이 한 몫 했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그런 것을 의식하지 않고 좋아했기에 상관없지만, 보컬에 무지했던 시대의 모습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무키무키만만수의 앨범처럼, 격에 대한 파괴로 느껴져 여전히 좋게 들린다.
2집의 나홀로 뜰 앞에서와 그대여 다시 오세요의 감동은 여전하지만 가장 많은 애착을 가졌던 앨범은 이장희의 곡으로 채운 3집이었다. 이장희는 당시 <나는 누구인가>란 솔로 앨범을 들고 국내 활동을 타진했다. 이미 1985년에 임병수의 사랑이란 말은 너무 너무 흔해로 여전히 히트 메이커로서의 능력을 겸비했던 그를 한백희는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빠른 시간 신곡 준비를 해야 했기에 3곡을 제외하곤 모두 리메이크 곡이다. 그 중 김완선의 자전적인 느낌이 풍기는 나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도 좋았지만 사랑의 골목길을 너무 좋아했다. 이 곡은 두 명의 명 프로듀서가 편곡에 따로 참여해 두 버전을 만들어 실었다. A면은 연석원이 만든 버전이고 B면은 송홍섭이 만든 버전이다. 처음에는 연석원의 버전을 더 좋아했었는데 어느 순간 송홍섭의 버전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비록 크로매틱만 3개월 하다 관두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베이스 소리를 참 좋아했던 것 같다. 이 앨범에는 홍서범, 현진영, 박남정을 앞서는 랩 송이 들어있다. 한때 최초의 국내 랩 송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분분했지만 당연히 그 영광은 그건 너 리메이크 버전에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완성도 면에서 김삿갓이라는 데 이견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김완선이 소화해낸 이장희 최고의 곡은 이젠 잊기로 해요다. 이 곡 역시 리메이크 곡이다. 하지만 단순했던 원곡을 작곡가 이해룡이 한 번 더 변주해 뒷부분을 늘렸고 가성과 허밍의 멋진 조화를 만들어냈다. 어쩌면 김완선의 모든 곡을 통틀어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다음으로 최고의 곡이 아닐까 싶다. 이 곡이 수록된 4집은 전인권과의 작업이 결렬되면서 소방차의 사랑하고 싶어를 만든 박청귀와 후에 변진섭으로 스타덤에 오르는 하광훈 등의 신인 작곡가들과 작업을 했다. 밝은 분위기의 기분 좋은 날이 히트한 것과 달리 앨범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가라앉은 분위기다. A면보다는 B면을 더 선호해 이젠 잊기로 해요와 추억은 가슴속에 남으리만 편애했던 기억이 있다.
프로듀서 손무현의 기지가 돋보이는 5집에 이르면 이전 앨범에서 주로 노래했던 내면의 독백을 벗어난다. 가장 무도회가 전하는 “사랑하지 않아도 애인 될 수 있는” 관계, 내가 아무리 슬퍼해도 세상은 꿈쩍하지 않는 현실을 인식하는 나만의 것, 도시의 위선을 노래한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는 우리가 정(情)이라 부르던 얽힌 관계망의 사회에서 차가운 도심 속의 고독한 세계로 진입했음을 알려준다. 가사를 쓴 김순곤은 나미의 도시의 이방인과 MBC 드라마 <서울의 달>에 수록된 서울 이곳은의 화자를 통해 두 세계의 거리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1990년대의 신세대 문법이 주류가 되기 이전에도 이미 우린 그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5집도 손때가 많이 묻은 앨범이다. 그 중에서도 작은 카페 이야기의 초반부는 김완선의 재발견이라 할 만큼 완전히 빠져들었던 곡이다. 이 곡의 의외성을 칭찬했더니 이후 여자 친구는 날 보면 가끔 이 곡을 불러주곤 했었다.
6집은 앨범 타이틀이 <애수>여서인지는 몰라도 5집보다는 밋밋했다. 편곡도 임팩트 있게 다가오지 않았고 가사도 평범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애수 이외에는 음이 잘 외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김완선의 내면을 읽어낸 듯한 김순곤의 이상한 외출은 6집의 심심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알다시피 해외진출의 목표를 설정하고 있었던 한백희는 은퇴라는 명목과 함께 6집을 끝으로 김완선의 국내 활동을 중지시킨다. 이 시점은 참 시사적이다. 1992년은 신세대라 불리는 뮤지션들이 댄스를 대동하고 대거 등장하는 해였기 때문이다. 이 전의 ‘한 춤’한다는 가수들, 가령 소방차, 나미, 박남정 등을 맨 앞에서 이끌었던 김완선의 퇴장은 절묘하게 신구세대의 바통 터치와 맞물린다.
은퇴 후 그녀가 떠나간 세계에 대해서는 좀 무심했던 것 같다.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새롭게 언어공부를 하는 모습 등으로 간간이 소식을 전해왔지만 지금은 알란 탐과의 듀엣 밖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고 그것도 어느 정도는 비난의 시각 혹은 배신감의 시각을 견지하고 보았기 때문에 앨범 자체에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주류의 시장은 이미 혁명이 일어난 후여서 이전 가수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갈 틈이 없었다. 하지만 국내의 여건과는 상관없이 김완선은 당시 새로운 사회에 잘 적응하며 인기도 많이 얻었다. 클론의 인기보다 훨씬 앞서 한류의 초석을 다진 점 등은 새롭게 평가받아야 할 대목이다.
대만에서는 모두 세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아기자기하게 김완선의 목소리와 아주 잘 어울리는 곡들이라서 원래 대만 가수 같은 느낌이 든다. 알란 탐과 불렀던 헤어질 수 없는 우리는 신재홍이 만든 곡으로 대만에서의 첫 번째 앨범 <First Touch>에도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말로 부른 것보다 愛上風雨中走來的(Ai Shang Feng Yu Zhong Zou Lai De)를 더 좋아한다. 언어가 주는 어색함 때문인데, 아마 대만인들도 우리 말 버전을 더 좋아할지 모르겠다.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가 느껴지는 一顆心換一份情(Yi Ke Xin Huan Yi Fen Qing)도 국내 팬들이 좋아할만한 곡이다. 대만에서 크게 히트한 2집은 아직 국내에서 음원이 유통되진 않지만 辣辣的心은 다시 들어도 매력적이다.
국내 복귀
1996년 김완선은 이경섭, 윤일상 등의 곡을 내세워 국내로 복귀한다. 탤런트는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한 솔직함이 들어 있긴 하지만 이전의 김완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아우라를 지우고 당시 유행하던 댄스 그룹들이 공유하던 가벼움만 담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Innocence>는 동시대의 어린 가수들과 아무런 차별성도 드러내지 못하고 시류만 쫓은 앨범이 돼 버렸고 개인적으로 이 앨범을 김완선의 디스코그라피에서 워스트로 여기고 있다. 이 앨범 이후 김완선은 이모와 헤어지고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2002년 테크노를 수용한 <S& Remake>는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후반부의 Only Love, 보낼 수 없는 사랑, Another Me, I Don't Wanna Hear It From You 등이 귀를 끌었고 테크노로 편곡한 본인의 원래 곡들 중에선 그대는 바람처럼이 아주 새로웠다. 이 당시 싸이의 3집에서 같이 한 안돼요란 곡도 추천한다. 남자와 여자의 시각차를 보여줘 재미있게 들었던 곡이다. 2005년 발표한 <rEturN>의 Seventeen은 애증의 감정이 교차했던 과거와 화해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많은 팬들이 MBC <무릎팍도사>나 KBS <승승장구> 등을 통해 이 곡의 의미를 새롭게 받아들인 것 같다. 다소 전작들에 비해 아날로그 분위기가 풍기는 앨범에선 산책, Do It 같은 곡도 좋았고 서른의 노래처럼 빨리 서른이 되고 싶어 했던 어떤 소녀가 생각나게 하는 곡도 있었다. 이후 김완선은 미술공부를 위해 하와이로 잠적했고 다시 돌아와 내놓은 싱글들 중에선 Benjamin, 클래지와 함께 한 Can Only Feel, Whiter Shadow of Pale이 생각나는 윤종신의 널 사랑해 오늘따라 등을 후기 베스트로 꼽고 싶다.
김완선의 곡들을 한 차례 정리하고 보니 잘 몰랐던 친구를 새롭게 안 기분이다. 그래서 애정을 듬뿍 담아 예전처럼 다시 응원하려 한다. 여러 면에서 기본기가 탄탄하다고 느꼈고 그런 만큼 얼마든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해도 다시 폭넓은 사랑을 받게 될 거란 믿음이 생겼다. 아주 다양한 뮤지션들을 만나 예기치 못한 합작품들을 계속 만들어서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훌훌 떨쳐버리고 음악의 여왕으로 훨훨 비상하길 빈다.
20130520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2016/03/22 - [1990's/1990] -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 김완선 /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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