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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서지원 (박병철) 19760218 ∼ 19960101

by Rainysunshine 2015.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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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 활동을 앞두고 나는 더 이상 자신도 없고 군대도 가야하며 사무실 가족들을 책임지기에도 너무 벅차다. 전무님은 내가 죽은 뒤에라도 홍보를 잘해 2집을 성공시켜주기를 빈다.” - 서지원 일기장

 

서지원2집 출반을 앞두고 스스로 자기의 숨을 거두었다. 어린 나이에 찾아온 부모의 이혼과 삶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이 그를 질식시킨 것이다. 그는 그렇게 죽음을 통해 이 복마전의 세상을 뚫고 나가려 했고 사후에 그의 음악은 재평가되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와 같은 방법으로 이 힘든 세상을 돌파할 수가 없다. 다만 그로 인해 인기를 얻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든 가수들의 비애를 공감할 수 있을 뿐이다.

 

서지원강수지를 필두로 이현우, 솔리드 등 재외 한인들이 90년대 초중반 국내에 들어와 가수로 데뷔할 때의 흐름에 있던 가수다. 부모님을 따라 독일로 가기 전에는 KBS 합창단으로 활동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앤젤스 합창단에서도 활동했으며 첼로 바이올린 등의 악기를 다룰 정도로 음악에 재능이 있었고 집안의 후원도 든든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부모님이 경영하시던 백화점이 문을 닫게 되자 UC버클리를 포기하고 가수가 되기 위해 국내로 들어왔다. 마침 LA에서 한인 방송국과 신문사, 음반사가 주최한 신인가수 발굴 오디션에서 천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발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에 들어와 자신의 데모 음반을 들고 다니다 만난 첫 작곡가가 오태호.

 

그렇게 오태호또 다른 시작으로 데뷔전을 치른다. 비록 큰 성공은 아니었지만 당시만 해도  184 cm에 이르는 큰와 주먹만한 얼굴로 순정만화 주인공 같이 생긴 외모 덕분에 여성 팬들에게 동화 속 왕자님의 모습과 모성애 를 동시에 느끼게 했고 이로 인해 무수한 TV 프로그램에서 객원 MC와 패널, 그리고 연기자로 활동하면서 조금씩 인기와 경력을 쌓아갔다. 방송과 2집 준비 등으로 너무 바쁘게 활동하다보니 과로로 쓰러질 정도였다. 데뷔 앨범에는 또 다른 시작 외에도 이경섭이 작곡한, 비트가 돋보이는 다짐, 후속곡으로 인기를 얻은 이탁의 댄스 넘버 사랑 그리고 무관심 등이 수록되어 있다.

 

미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중한 보컬로 가득 찬 2집은 사후에 나왔다. 그리고 폭발적인 추모의 손길에 힘입어 내 눈물 모아는 모든 차트에서 1위에 올라섰고 앨범은 셀 수 없을 정도로 팔려나갔다. 2집에서는 평소 좋아했던 강수지의 곡을 리메이크한 I Miss You가 후속곡으로 타이틀 곡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으며 원래 R&B와 가스펠 장르를 좋아했던 그답게 Arms Of Love, 친했던 누나 박선주가 작곡하고 같이 부른 76-70=Love와 같은 곡이 수록되어 있다.

 

추모공연은 박선주를 중심으로 DJ DOC, 김원준, 김정민, 강수지, 베이시스, 이본 등의 많은 선후배 가수들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유작 앨범에는 서지원이 골라 놓았었던 너만을 위해, 정재형이 만든 R&B 그때가 좋았어, 박선주가 만든 댄스곡 자격지심3곡의 미발표곡이 수록되었다. 그때가 좋았어 비디오 클립은 흑백과 컬러로 제작해 이승과 저승의 간극을 메우고자 했다.

 

사후 1000일을 맞이해서는 추모 기념 베스트 음반이 나왔다. 팬들의 끊임없는 요청으로 관철된 이 음반에는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과 같이 그가 서지원이 좋아했던 곡과 데뷔 앨범부터 지금까지의 히트곡이 망라되어 있으며 미공개 사진으로 꾸민 영상집과 미발표곡 이별만은 아름답도록, 애국가의 뮤직비디오가 함께 발매되었다. 한편 스크림이란 그룹은 서지원의 첫눈이 오는 날을 리드보컬 김태훈의 보컬을 입혀 마치 둘이 같이 부른 것처럼 녹음을 하기도 했다.

 

그의 죽음은 자살이라기보다는 스타시스템이라는 보이지 않는 괴물이 데려간 것으로 보인다. 아마 부담감도, 책임감도, 회의도 있었으리라. 그리고 거기에는 빠짐없이 열정 페이로 사회 신참자들을 혹사하는 기성인들의 속임수가 있다. 그러나 오늘도 찰나적 스타의 모습에 현혹된 많은 지망생들은 기획사의 문을 두들기고 또한 무관심 속에서 배신을 당한다. 한 가수의 자살은 이 악순환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 방법을 알고 있고 그의 죽음을 통해 더욱 처절하게 느낀다. 그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티스트의 손에 왕관을 쥐어주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서지원과 소속사 관계 : https://namu.wiki/w/%EC%84%9C%EC%A7%80%EC%9B%90

   

20010421 / 20151227 이즘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2016/01/01 - [1990's/1996] - 내 눈물 모아 - 서지원 / 1996 

2018/06/30 - [1990's/1996] - 76-70=♡ - 서지원 with 박선주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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