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력 있는 노래 실력을 자랑하는 리아는 고등학교시절 통기타 서클에서 활동하다 친구가 몰래 엽서를 보낸 덕택으로 출연하게 된, 수많은 스타들의 입문기에 등장하는 선견지명을 지닌 친구를 둔 덕택에 가수가 된 케이스다. 그리고 1993년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별밤 뽐내기에서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The Greatest Love of All로 연말 결선 1등을 거머쥐면서 실질적인 가수가 된다. 하지만 역시 쌍팔년도 이전의 가수들이 하나같이 겪었던 집안의 반대가 공식처럼 등장하고 록 음악을 하고 싶어 여러 밴드 오디션을 전전했지만 여자라는 편견을 깨지 못하고 혼자 노래를 불러야 했던 역사가 더해지면서 힘들었던 미운오리 새끼 시절을 보낸다. 그리고 EBS TV <아름다운 세상 커다란 꿈>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사전MC(쇼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살려놓는 일)를 하다 매니저 이상명에게 픽업되어 1996년 첫 앨범 <Diary>가 탄생한다. 1집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넥스트의 김영석은 그녀에게 리아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렇게 소속사를 찾고서 리아는 별 어려움없이 데뷔전부터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같은 소속사인 동물원과 박정운의 게스트로 출연해 웹상에서 호응을 얻었으며 라이브 가수들의 등용문인 <이소라의 프로포즈>라는 프로그램에서 거침없는 샤우트와 시원한 목소리로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중고신인이 되어 있었다.
개성이란 히트 곡을 낸 데뷔 앨범은 “조금 튀게 살아 갈꺼야”라는 가사 그대로 고정관념과 편견에 휩싸여 살기 싫은 철학을 내 보이고 있다. 산악 전문가인 아버지를 따라 5살 때부터 네팔에서 살았던 그녀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그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적응을 잘 못해 외톨이가 되었고 많이 힘들어 했던 기억을 적었던 일기장의 내용들을 가져와 데뷔 앨범의 가사를 썼다. 김영석의 지휘아래 주로 모던 록의 기조에서 얼터너티브의 증폭을 장착한 이 앨범은 그녀를 대번에 노래 잘하는 가수로 대중에게 인식시켰고 댄스 가수들의 틈바구니에서 짧게 깎은 머리로 인해 특출 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러나 과도한 라이브 공연으로 목을 혹사해 성대결절에 걸리고 만다. 수술을 요하는 중병이었으나 목소리의 변조를 우려해 요양만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택했고 그 상태로 2집을 녹음했다. 그녀의 생각을 거침없이 담은 2집 <개똥철학>도 1집에서와 같은 노선으로 승부한 앨범으로 고정관념, 개똥철학, 바보천국 등과 같이 기존의 선입견을 깨고 싶은 의지를 노래했다. 이 앨범에선 난 그래를 히트시키며 팝계의 엘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한 발짝 더 대중의 입맛에 다가갔다.
3집 <요조숙녀>는 실연의 아픔과 더불어 록필이 가미된 노래보다는 서정적으로 변신한 앨범이다. 그간 보여준 거칠고 과감한 샤우트의 곡들이 Watch U Baby나 Say Yes같은 곡에서 드러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사랑에 실패한 한 성숙한 여인의 자기 감내가 들어 있다. 눈물이 커다란 인기를 끌었지만 홀로 서기나 슬픈 독백에서 보여주는 절제의 미학은 ‘리아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며 처음 그리고 그 후나 Dreaming의 성숙함은 성장이라 여길만 하다. 리아는 “요조숙녀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꾸고 싶었다. 진정한 요조숙녀는 겉모습이나 외모에 구애받지 않는 당당한 여성이라고 생각 한다”라는 말로 타이틀의 변을 내놓아 철학적으로는 여전히 1, 2집의 선상에 있음을 알게 했다.
이 앨범의 성공 이후 매니저와의 불화설로 인해 동아기획과의 법정 소송에 휘말린다. 한때 매스컴의 집중적인 보도를 받기도 한 이 사건은, 그녀에게 마약과 청부폭력의 혐의를 씌워 한 동안 은둔 속으로 집어 넣었다. 거기에 송재준의 도움으로 낸 4집 앨범도 기획사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홍보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활동을 접어야 했다.
마음을 달래려 네팔의 산행과 인도에서 휴식을 취한 그녀는 뮤지컬 <록 햄릿>에서 오필리어 역을 맡아 열연하며 재기를 다졌다. 그리고 4집의 수록 곡들과 신곡을 포함해 낸 4.5집 <추신>을 2000년에, 2003년에는 <Alchemist>, 2008년에는 리메이크 앨범 <Bridge>를 발매했다. 하지만 매체를 통한 홍보를 할 수 없어 애를 먹었으며 그로인해 세인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무명으로 떨어진 13년의 세월 동안 결혼과 이혼을 오가며 청부폭력 혐의도 벗고 연극무대에 섰던 리아는 2010년엔 카레이싱 대회에 출전해 우승하며 다재다능한 면모를 과시했고 보컬을 지도했던 경험을 살려 최근에는 실용음악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의 자리에 있다. SBS 플러스 <컴백 쇼 탑10>에 출연했던 그녀는 2012년 KBS2 <내 생의 마지막 오디션>에 출연해 소식을 궁금해 하던 팬들과 눈물의 재회를 했다.
20121022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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