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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한국대중음악사

일본 군가의 유입과 음악교육

by Rainysunshine 2019.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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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들이 군가로 차용한 멜로디는 기독교의 찬송가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일본 군가, 그 다음이 서양의 명곡들이다. 이런 예는 국내 대중음악사에서 서양 음악을 수용하던 초기에 일본의 군가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청일전쟁(1894 ~ 1895), 러일전쟁(1904 ~1905)을 계기로 많은 일본의 군가들이 국내에 들어왔고 유행했다. 이 일본 군가는 기독교, 그 중 개신교의 찬송가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은 물론이고 반일과 항일의 내용을 담은 노래에서도 다수 차용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런 노래들의 근원을 모르는 상태에서 점점 국민 정서에 적합한 보편적인 노래들이 되기 시작던 것이 후세대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이로 인해 이런 노래들은 우리 근대 음악의 원형으로 평가받을 뿐 아니라 심지어 민족음악의 한 부류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민경찬 한예종 교수는 논문 <일본 근대국민국가의 형성과 근대음악>에서 독립군가의 상당수가 일본군가가 원곡이라고 말하며 그 예로 독립군가 중 하나인 봉기가가 일본군가인 アム-流血(아무르강에 흐르는 피)의 멜로디를 가져온 것이고 소년군가일본해군에서, 승리 행진곡군함 행진곡에서, 조국 생각독립군은 거름, 전우의 멜로디에서 각각 가져온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교육권은 일본 통감부의 설치 이후 일본식으로 개편해야만 했다. 이때 음악 교육도 실시되는데, 초등학교(당시 보통학교)에서는 창가라는 이름으로, 상급학교에서는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학과목을 개설해 가르쳤다. 이로 인해 기존의 우리 음악들은 금지가 되고 일본의 창가가 대거 유입되어 제도권의 주류 음악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20190130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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