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독립사건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부터 1919년까지 있었던, 음악으로 일제강점기를 돌파하려했던 사건으로, 개성의 한영서원 선생님들인 신영순, 백남혁, 정사인 등이 주축이 되어 북간도의 민족학교에서 가져온 창가집들을 모아 새로운 창가집을 만들고 보급, 교육했던 운동이다. 이들은 1911년부터 1914년까지 창가를 수집하고 1915년 1차, 1916년 2차로 창가집을 발행해 방학동안 전국의 음악반 책임자, 음악선생님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든 전국학생하령회에 1915년 90권, 1916년 99권을 보급했다.
영웅모범 같은 곡에 등장하는 “일본의 천왕을 종으로 삼고 일본의 황후를 하녀로 삼아 부리고 말리라”는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창가집의 내용은 대부분 반일, 배일적인 내용이었고 후에 발각돼 재판에 넘겨진 신영순이 “나는 될 수만 있다면 국권을 회복하려는 염원 속에 배일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같은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규합코자 하는 욕심으로 창가집을 발행했다”라고 진술하고 있어 그 목적 또한 분명했다고 볼 수 있다. 정사인은 일본 경찰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대원들에게 대한혼을 가르치고 그 멜로디에 “운동가”라는 전혀 상관없는 가사를 입혀 남북예배당(한영서원 부설) 가는 길에 악보를 연주시켰다고 진술하고 있다.
1916년 10월 이 운동이 발각되면서 1917년 신영순, 백남혁, 이경중, 오진세, 정사인은 2년에서 2년 6개월 형을 받았고 1919년 3월 모두 출소했다.
※ 위의 글은 김지평의 <한국가요 정신사 /아름, 2000>를 발췌 요약한 것이다.
20190131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게림 나라 즘생 즁에 개와 돗이 되어도
일본 신하 안되기로 죽기 까지 결심한
박제상의 그 츙셩을 우리 모범하리라
일본 나라 인군으로 남종 삼아 불이고
일본 나라 왕후로서 녀종 삼기 작정한
석우로의 그 장긔를 우리 모범하리라
주욕신사 즁한 의로 금산적을 즉칠 뎨
빈주먹에 싸흠하여 한나 없이 다 죽인
됴즁뵹의 칠백의사 우리 모범하리라
한산도와 영등포에 거북선을 타고서
일본 군함 수천척을 한아 업이 함몰한
리순신의 그 도략을 우리 모범하리라
홍이 입은 텬강장군 좌충우돌 하면서
쥐와 같은 왜놈 군사 도처 싸화 죽이든
곽재우의 그 용맹을 우리 모범하리라
의병 일켜 싸호다가 대마도에 갗어서
일본 나라 물과 곡식 먹지 안코 죽으신
최익현의 그 졀기를 우리 모범하리라
늙은 도적 이등박문 할빈 당도 할 때에
삼발 삼중 죽인 후에 대한 만세 불으든
안즁근의 그 의긔를 우리 모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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