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슬은 대한민국 싱어송라이터 양희은이 1971년 발표한 데뷔 앨범 <양희은의 고운 노래 모음 - 아침이슬>에 수록한 곡으로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곡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5년부터 1980년대에 사람 많은 곳에서 이 곡을 부르는 건 모두 시위로 간주할 정도였다고 말한다. 1971년 정부 지정 건전가요가 되었다가 1975년 긴급조치 9호로 금지곡이 되었고 1987년 6월 시민항쟁으로 해금되었다.
양희은은 이 곡이 민주화의 상징이 된 것에 대해 공감에서 "이 노래가 거리의 상징이 될 줄은 몰랐어요. 근데 이를 절감한 순간이 있어요. 민주화운동이 뜨거웠던 어느 날, 난 우연히 시위 대열에 섞였다가 대열에서 빠져나왔을 때 이 곡이 들렸어요. 시위대가 ‘떼창’을 하고 있었죠. 모골이 송연했다. ‘이게 뭐지? 이 노래가 왜 이렇게 들리지?’ 제가 서정에 겨워 부르던 것과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한참 후에야 알았어요. 이 곡은 더 이상 내가 부르던 그 노래가 아니었음을"이라고 말했고 김민기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1987년 이한열 시청 노제 때 거기 있었어어요. 근데 앗, 뜨! 뭐 그런 느낌… 백만명이 부르는데, 그 백만명이 다 각자의 마음으로 간절하게 부르는데 내가 그걸 뭐라고 감히 말하겠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아, 이건 이제 내 노래가 아니구나'라고요"라고 말했다.
대중음악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이영미 교수는 위의 사전에서 "4/4박자 장조, A-A’-B-C의 네 도막 형식을 지니고 있다. 구조적으로 잘 짜인 화성과 선율을 지니고 있어 균형감과 안정감을 지니고 있으며, 종반의 절정부는 화려하면서도 크게 스케일을 넓히고 있고 IV-I도 이행하여 성스러움까지 느끼게 한다. 이러한 경향의 노래는 대중가요사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 곡으로 인해 합법적 활동이 금지되고 셀 수 없이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김민기가 작사, 작곡한 곡으로 양희은의 것보다 조금 늦게 나온 첫 독집 앨범에 수록했다. 양희은은 다수의 매체에서 "1971년 이 곡을 만났어요. 열아홉 살, 가정 형편 때문에 음악감상실 오비스 캐빈에서 노래 할 때였어요. 김민기씨가 학교 축제에서 부르는 걸 보았죠.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라는 부분을 듣는 순간 노래와 사랑에 빠졌어요. 노래가 너무 좋아 배우고 싶었는데 공연을 위해 악보를 그렸다가 찢어버렸다는 거예요. 김민기씨는 처음에 이 곡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선배들과 함께 했던 뒤풀이 모임이 파하고 난 뒤 청소부 아저씨가 모임 장소를 청소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모아온 종이들 중 찢긴 조각을 찾아내 보면서 연습했죠. 이후 내가 부르고 싶다고 하니까 그러라고 하셨어요. 당시에는 저작권 개념이 뚜렷하지 않았어요. 누가 '그 노래 좋다'고 하고 원작자가 '너 가져'하면 끝이었죠. 그리고 날마다 아르바이트 가서 이 노래를 불렀어요. 언젠가 꼭 녹음을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원작자보다 먼저 취입하게 된 거죠. 4개 방송사 PD들이 뜻을 모아 당시 킹레코드사 박성배 사장에게 소개해준 덕분에 어렵사리 레코딩이 이뤄졌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용복이 12줄 기타를 연주했다. 이용복은 "기타 잘 친다는 소문을 듣고 절 찾아왔어요. 그리고 녹음하러 갔더니 양희은씨가 아주 오래 기다렸어요라고 말했죠. 근데 가수랑 맞춰 볼 시간도 없이 바로 연주에 들어갔어요"라고 말했다.
양희은은 이 곡의 무게에 대해 공감과 JTBC <히든싱어 - 양희은>에서 "만 번도 넘게 읊조렸어요. 그래서 더 각별해요. 남들이 보기에는 무덤덤하게 부르는 것처럼 보여도 수십 년간 내 안의 흐름이 온전히 담겼어요. 근데 괴롭기도 했어요. 이 노래에서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이 곡을 넘어선 노래를 발표해야 한다는 강박도 생겼어요. 그러나 도망칠 수가 없었어요. 노래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큰 무게로 자리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모든 노래가 장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또 어떤가하고요. 비로소 그 무게를 떨칠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가사는 밤을 새울 정도로 다가올 시련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작은 미소를 짓고 결연하게 나아가겠다는 화자의 의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2018년 JTBC <뉴스룸>과 가진 김민기의 인터뷰는 "미술대학에 입학하고 집이 정릉에서 수유리 우이동으로 이사를 갔어요. 반지하 창고가 있었는데 거기를 처음으로 제 개인 작업실로 만들었어요. 거기서 그림을 그리다 막히면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만들다 막히면 그림을 그리고는 했죠. 그 날은 그림 작업이 막혀서 노래 작업을 할 때였는데, 그게 이 곡 이였어요. 근데 가사를 '그의 시련일지라'라고 쓴 뒤에 곡이 막히는 거예요. 화성이건 멜로디건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그 부분을 '나의 시련'으로 바꾸어 보았더니 나머지가 그냥 확 풀렸어요. "그의 시련"일 때는 예수나, 석가 등 성자의 모습을 그린 것이었을 거예요. 아마도 '그의 시련'에서 '나의 시련'으로의 자리 바꿈이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 읽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많이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봐요. 그 지역은 야산도 있고 무덤도 몇 개 있던 곳이라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부분이 나왔는데. 그것 때문에 금지곡이 된 건 웃긴 일이예요"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20210518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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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 처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1970s/1971]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양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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