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기사는 평균 수명 백세를 넘게 사는 것이 축복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궁리해야 할 시점임을 일깨워준다. 이것은 지금 위의 문제에 직면한 분들뿐만 아니라 사전(事前)적으로 그 시간을 대비해야 할 젊은 층의 준비과정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뜻하는 것이다.
백세를 넘게 살게 되면 우선 한 가지의 직업만을 갖고 살기는 어려울 수 있다. 자영업자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퇴직이후의 또 다른 일을 준비해야 할 것이며 의사나 변호사와 같이 전문 자격증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직종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
60세에 퇴직하고 40년을 그냥 보내기엔 인생이 너무 아까울 것 같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취직 이후에 공부를 멈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끊임없이 자기계발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는 없겠지만 그래도 책만 읽고 그것을 곧 잊어버리는 현실이 되어서는 별 소용이 없다. 홈페이지(블로그 등)를 개설하고 자신의 기억을 저장해 관심분야를 개발해야 한다. 그래서 취미도 살리는 한편 개발한 관심분야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시장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격증과 같은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퇴직 이후에도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길도 제시해 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국가가 나서서 미리 교육을 통해 이런 것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는 길을 정책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하지만 한 직업만 가지고도 살 수 있다는 개개인 각자가 지닌 사고의 전환 또한 절실히 필요하다.
또 한 가지가 있다면, 자신의 나이가 지닌 한계를 지우려고 노력하며 사는 것이다. 이것은 무조건 젊게만 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원한다면 나이에 걸맞게 보이지 않더라도 한 번 시도해 보자는 의미다. 백세를 넘게 살게 되면 어차피 노인이라는 개념도 달라질 테니 70세에 로스쿨에 도전하고 80세에 영화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건강만하다면 오히려 풍부한 사회경험이 더욱 더 유리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나이에 대한 편견을 심는 사회다. 어린 시절부터 ‘몇 살이 되었으니 -게 행동을 해야지’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란다. 그러다보니 특정한 나이가 되면 그 나이에 맞는 행동이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한다. 그리고 그것을 ‘나잇값’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런 편견이 다수성을 얻었다고 해서 항상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들어도 젊은 사람들의 문화를 그들보다 더 잘 흡수할 수 있으며 나이가 어려도 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 비해 이해심이 깊고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 나이가 그 사람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이 그 사람을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나이와 인격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똑똑히 보아오지 않았는가. 나이는 호봉처럼 일관적인 잣대로 들이대 수 있는 경력이 아니다. 동안대회의 77세 우승자를 보라. 나이는 얼마든지 거꾸로 먹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갑자기 위와 같이 편견을 깨부수고 맘대로 살 능력이 인간에게는 있을까? 혼자서 환경을 무시하고 떨치고 일어나기는 정말 말만큼 쉽지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위와 같이 행동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요구되는 자세가 있다. 그것은 주위에서 뜻이 같은 사람들과 연대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적어도 편견을 깨고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자기 자신도 용기를 키워야 한다. 어떤 것이든 먼저 시작하는 사람은 더 많이 노하우를 갖게 되고 나중에 시작하는 사람은 먼저 시작한 사람보다 적은 노하우를 갖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먼저 시작한 사람이 항상 앞서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뒤따라간다고 해서 앞지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또한 앞질러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성공의 척도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이가 많다고 먼저 죽는 것이 아니듯 세상의 모든 일은 늦게 시작했다고 해서, 혹은 늦은 나이에 시작했다고 해서 빛을 발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빛을 보기까지 노력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시간이라는 것에서 좀 더 자유로워져 보자. 그리고 재테크를 비롯한 연금이나 보험만을 믿지 말고 용기를 내어 하고 싶었던 일을 준비해보자.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 가는 익히 알고들 있지 않은가.
20110322 / 한겨레 신문 오피니언 훅 / 현지운 rainysusn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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