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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침/한 여운

5초 가창력 논란에 대한 소고

by Rainysunshine 2011.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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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뉴스데스크는 얼마 전 <5초 가수 수두룩… 가창력 논란>이란 제목으로 집중취재기사를 내보냈다. 이 제목으로만 보면 ‘노래를 짧게 하는 가수는 가창력이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제의식은 있어 보이나 문제를 인식하는 것도 그것을 도출해 내는 과정도 MBC 답지 않게 두루뭉수리하다.

일단, 위의 명제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가창력이란 무엇인가가 해결되어야 한다. 근데 이 문제는 쉽지가 않다. 2008년 전문가 20인이 뽑은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 1위는 조용필 이였지만 기교, 성량 등 기술적 능력이 뛰어난 가수 1위는 이승철, 곡 해석력, 가사 전달력 등 감성적 능력이 가장 뛰어난 가수 1위는 김광석 이였다. 다수결이 그랬을 뿐 투표에 나온 가수의 수는 거의 20명에 가까워 사실상 저마다 선호하는 가수가 다름을 알 수 있다.1)

그런가하면 2007년 105명의 가수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가장 존경하는 가수 1위는 서태지와 아이들이였고 최고의 남녀가수는 각각 조용필인순이였다.2) 또한 PD들이 뽑은 최고의 가수는 이적 이였다.3) 이런 조사가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가창력이란 것은 상대적이고 좋은 노래와 동반될 때에만 그 효과가 커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악가 출신가수 조영남을 생각하면 빨리 이해될 수 있다. 그는 위의 가수들이 별반 다를 바 없는 대중가수고 한 때 라이브 무대에서 각광받는 게스트이자 소위 노래잘하는 가수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을 순위에 올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창력이란 허상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누구도 가창력이란 이름의 절대적 표준치를 제공할 순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한 곡에서 5초만 부르면 노래를 못 부르는 가수인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취재의 취지와는 달리 증명할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5초를 부르는 이유는 가수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한 곡을 해석하기 위한 음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원수가 많으면 그만큼 적게 부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오페라에서 아리아를 부르는 가수가 있고 레시타티브를 부르는 가수의 양이 다른 것과 같다. 인원이 5명인데 한 명만 부를 순 없지 않겠는가? 뮤지컬에 나온 모든 배우가 똑같은 분량으로 노래를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물론 적게 부를수록 노래를 못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옳은 말을 아니다. 예를 들어 컨츄리 꼬꼬 시절 신정환탁재훈애련을 부르는 동안 옆에서 거의 입만 뻥긋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라디오스타>를 통해 결코 병풍이 아님을 입증했다. 노래를 적게 부르는 가수는 그만큼 준비가 덜 되었거나 다른 가수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 사실상 옳다. 그렇다고 반대로 노래를 3분 이상 부르면 다 가창력을 인증 받은 가수인가? 우리는 쉽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가창력은 곡의 길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평론가의 “가창력이 퇴화 된다”는 말은 결코 옳지 않다. 이 말이 옳기 위해서는 5초를 부른 가수의 가창력이 5초전에 더 좋았어야 한다. 또한 지금은 5초를 기준으로 하지만 과거 판소리나 창을 부를 때의 기준으로 보면 판소리를 완창하지 못하면 가수가 아니다. 그러면 2시간 영화에서 5분 나오는 단역은 배우라고 할 수 있는가? 연기력이 퇴화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 기사를 망치는 가장 어처구니없는 지점은 무엇보다도 맨 마지막이다. 가창력의 문제에서 뜬금없이 “댄스 그룹이냐, 정통파 가수냐, 가요계에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지만 분명한 건 누구나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지나친 댄스음악 쏠림 현상만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라는 멘트로 결론을 맺고 있다. 갑자기 화살이 댄스음악으로 바뀌는 것도 그렇지만 지금이 과연 댄스음악이 쏠리고 있는 형국인가? 멜론, 벅스, 도시락 등의 주요 음원 차트를 보라. 아이돌뿐만 아니라 인기 있는 가수들이 차례로 돌아가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09년의 경우를 보자. 1위는 소녀시대, 투애니원, 브라운아이드걸스, 지드래곤 등의 아이돌이 반 정도 차지하고 있었지만 김태우, 아웃사이더, 리쌍, 에이트 등이 나머지 반을 차지했다. 1위만 놓고 보면 그런 것이고 10위권 안에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차트를 오갔다. 올해는 1위의 횟수가 점점 짧아지고 신곡들의 반응이 바로바로 실시간 반영되므로 더더욱 장기집권은 꿈도 꿀 수 없다. 거기에 2AM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아이돌이 댄스만 부르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것을 놓고 봤을 때 정말 위의 결론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식의 취재를 한 것일까?

위의 것들을 종합해 보면 아마도 기자는 빠른 댄스 음악을 하는 아이돌 가수들의 가창력이 가요계에 끼치는 폐해를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는 기획기사였다. 이제는 가요계의 적지 않은 부분을 아이돌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또한 아이돌은 연예계의 다양한 소스를 제공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기도 하다. 무엇이 불만일까? 아이돌이 연기하는 것? 그렇다면 개그맨이 MC를 하거나 아나운서가 예능에 나오는 것, 연기자가 노래하거나 예능에 나오는 것, 기업가가 대통령이 되는 것 역시도 문제 삼아야 한다. 연기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세상에 이런 순혈주의적 사고가 인간의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그럼 아이돌이 노래를 잘하냐?”라고 반문하실 것이다. 내가 읽는 것들 중 위의 기사에 공감하는 많은 댓글이 대부분 그런 것 이였다. 노래를 못하는 아이돌이 가요계를 망친다는 것 이였다. 하지만 내가 들어본 바에 의하면 그렇게 못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 정도 못하는 가수는 가요계에서도 마음먹고 뒤지면 얼마든지 나온다. 그러니 전체를 싸잡아서 못한다고 욕하지 말자. 위와 같은 댓글을 달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를 기준으로 말한다. 하지만 기준은 기준일 뿐 누구나 그 사람과 똑같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의 기준을 마리아 칼라스, 혹은 카루소에 맞출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만약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각계각층에서 직업을 갖는 사람은 소수여야만 할 것이며 나머지는 모두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음악계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면 단지 기우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가수들은 지금까지도 있어왔지만 음악계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정말 노래를 못하는 가수들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아 가게 되어 있다.

러니 제발 특정 가수의 각도로 아이돌을 바라보지 말자. 아이돌은 노래도 해야 하지만 개인기도 연마해야 하고 예능에도 적응해야 하며 춤을 필수적으로 해줘야 한다. 그래야 TV에서 소비될 수 있다. 또한 그래야 뮤직뱅크와 인기가요, 음악중심이 돌아가고 예능이 돌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창력이 있는 가수가 설 땅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방송 3사는 가창력 중심의 가수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인 <초콜렛>, <라라라>, <스케치북>을 갖고 있다. 거기에 라디오는 기본적으로 듣는 매체이기 때문에 노래를 잘하거나 입담이 좋아야 한다. 아이돌보다는 가창력 있는 가수가 훨씬 유리하다. 또한 가수 거미가 <라디오스타>에 나와 외모 때문에 힘들었음을 토로하듯이 가창력만으로는 안 되는 것은 아이돌의 잘못이 아니라 외모를 보고 뽑는 기획사, 그리고 외모를 이슈로 뽑아내는 언론사, 무엇보다도 대중의 취향이 그렇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시작하는 새싹들을 5초짜리 가수로 폄하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들의 미래는 지금의 모습만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우리의 사고만큼 갇혀있지 않다.


1) 20080319 / 헤럴드경제

2) 20070903 / 홍진경의 가요광장

3) 20070831 / PD연합회 창립 20주년 기념


* 수퍼 주니어, 소녀시대 등의 인기가수들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취재의 공정성을 문제 삼기에 무리가 없다.


20100730 / 한겨레신문 /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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