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Going On 30
20040420
Sony Music
Hollywood Records
어느 날, 갑자기 당신에게 과거의 한 시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원하는 시점이면 어느 곳이건 선택을 해서 갈 수가 있으며 원한다면 그 시간부터 다시 인생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부모님을 더 부자 부모님으로 바꾼다거나 외모를 달라지게 하는 등의 조건변경은 있을 수 없다. 또한 복권 번호를 미리 외워간다거나, 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에서처럼 미래의 정보를 미리 숨겨가서 사용할 수도 없다.
당신은 과거로 돌아가겠는가? 현재의 삶에 조금이라도 불만이 있는 모든 성인들은 풋풋했던 과거를 택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이 돌아가고자 하는 지점은 어디이고 왜 그 시점을 택하게 되었을까? 혹시 당신은 그 지점부터 시작하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인가? 그렇다면 빼먹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한 가지 요소가 있다. 그것은 지금 가지고 있는 삶의 경험을 고스란히 가져가야만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이 한 가지 조건만은 절대 양보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축적된 지식과 생각, 그리고 경험을 하나도 빼놓지 않는 것 말이다. 생각해보라, 단순히 돌아가기만 하는 옵션만 있다고. 그러면 돌아간 사람들은 다시 예전 그대로의 생활만을 반복하고 말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이 지금으로부터 한 50년 후에 되돌아오고 싶었던 지점이라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미래에 대한 기억이 없는데 어떤 준비를 할 것이며 어떤 비전을 꿈 꿀 것인가? 물론 어린 시절의 시기를 80년대나 90년대가 아닌 2000년대로 바꾸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성향과 주위 환경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시행착오를 수정하고자 하는 것이며 살아오면서 했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소망의 다름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조정은 현재까지 내가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하지 않으면 절대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Πλάτων)의 ‘상기(ἀνάμνησις)’일지라도 기억력이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다시 똑같은 삶을 살 것이며 여전히 특정한 선택의 시점이 되면 미래에 대한 정보부재로 인해 과거 자신의 성향만을 토대로 결정을 내리고 또 그 선택으로 인해 야기된 후회를 되풀이 할 것이다. 또 다른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의 경우를 토대로 예를 들어보자. 서로를 지겨워하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은 서로의 기억을 지우지만, 서로의 기억을 잃어버린 둘은 다시 만나 열렬한 사랑의 순환 고리에 빠져 버린다. 이것이 바로 기억을 잃어버린 인간의 삶이다.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13 Going On 30)>에서 제나의 어머니는 말한다. ‘지금까지의 실수가 나를 만든 것이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이것은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지금까지 쌓아 온 지혜를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온 말이다. 당신이 전생을 믿는 사람이라면, 왜 신이 우리에게 전생의 기억을 주지 않는지 한 번 생각해보라.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이란 영화는 바로 위와 같은 상황을 염두 해 두고 있는 영화다. 영화상에서 13살이 30살이 되는 과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작 30살의 여자가 13살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게 되는 과정이 핵심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던 주인공은 꿈꾸던 직업과 친구, 그리고 화려한 삶을 얻은 미래의 자신을 얻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종국에는 다시 13살이 되고자 한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것은 다 가지고 있으면서 그깟 남자 하나 때문에 13살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일은 상대적인 법이다. 절대적인 가치평가는 사실상 이 다원성의 세상에서 부당하다. 예를 들어 외부적으로 다 완벽하지만 직업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든가, 다 완벽하지만 첫사랑을 못 잊고 있는 사람이라든가, 역시 다 완벽하지만 어린 시절 본인의 실수로 어떤 사람을 죽게 했다든가, 어린 시절부터 준비하고자 했지만 포기해야 했던 꿈을 다시 찾고 싶은 사람 등을 한 번 떠올려보라. 알고 보면 우리는 겉으로는 알 수 없는 마음의 짐을 안고 사는 파편들이다. 많은 것(가치)들은 상대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풍족하다’는 개념 역시.
그래서 서른 살의 어느 정도 성공한 직장인인 제나는 어릴 때 친하게 지냈지만 결국 잘나가는 친구들과 사귀기 위해 내쳐야 했던, 과거의 매트를 다시 찾고 싶어 한다. 그토록 동경하던 무리와 친하게 지내기 위해 그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뒤치다꺼리를 했던 그녀지만 그것은 그녀의 허영 혹은 허상 이였다. 진정한 친구는 그렇게 생기지 않는다. 이 선택의 갈림길은 30살의 그녀에게서 아주 중요한 것을 빼앗아 간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철학적 문제로 들어가서 살펴보자면, 우리는 전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부나방처럼 한순간의 유혹에 이성을 잃어버리고 나쁜 남자, 혹은 나쁜 여자에게 끌리듯이 우리는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치명적인 선택을 감행한다. 우리에게 먼 미래를 볼 수 있는 시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경험 없는 어리석은 시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사물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상대하리라.
이 영화는 어차피 죽을 때까지 다가오는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과오를 저지르고 살아가야하는 우리 인간들의 운명을 위로하며 아주 상큼한 대리만족을 준다. 하지만 그 뿐일까? 이 영화를 다시 한 번 지금의 위치를 살펴보게 하는 영화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이 영화에서 아니 당신의 삶에서 진정한 고갱이를 만날 수도 있다.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우리가 비록 미래에 갔다 왔다는 흔적은 기억 속에 없지만, 한 번 갔다 온 것으로 치는 거다. 즉, 나와 당신 우리 모두는 미래에서 현재로 넘어 온 후회의 사자들이다. 우리 모두는 적게는 10여 년 후부터 많게는 100여 년 후까지 인생의 쓰라린 경험을 잔뜩 하고 다시 지금의 과거로 회귀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지금이 아주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근데 애석하게도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기억은 없다. 다만 어떤 큰 위험을 맞이한 시점에 모두들 오늘 아침 눈을 뜬 느낌만이 아련하다. 우리는 이런 느낌을 며칠이 지나면 금세 잊어버리고 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잊지 말도록 자신을 다독이자. 우리는 정말로 행운아다. 이제부터 맘을 다잡고 열심히 그리고 알차게 살 것이며 마음속으로 미래에 일어날 실수를 안 할 수 있도록 최대한도로 구상하며 살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고(물론 모두가 다 이런 기분일 순 없겠지만) 느끼면서 이 상황을 즐길 수 있길 진심으로 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신나고 유쾌해질 것이다. 특히 그동안 불행했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던 사람들은 아주 새롭고 건설적인 기분으로 인생을 다시 설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이 10년 후 혹은 100년 후쯤의 당신이 그토록 돌아오고 싶어 했던 바로 그날이니까 말이다.
이제 음악 얘기를 아주 조금만 해 보자. 1980년대의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좋아할만한 음악들이 수록되어 있다. <웨딩 싱어(Wedding Singer)>의 경우처럼 말이다. 물론 영화에 나오는 모든 곡이 앨범에 있는 건 아니다. 특히 마이클잭슨(Michael Jackson)의 Thriller를 원하시는 분이라면 실망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메이저와 마이너가 적절히 섞여 있다. 이런 장면이 있다. 영화 초반, 제나의 생일 파티에서 매트는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지만, 파티에 모인 애들은 도대체 흥 안 나고 기운 빠지게 하는 음악을 왜 듣고 있는지 의아해한다. 그리고 후에 제나와 단짝이 되는 톰톰은 카세트테이프를 빼버리면서 “Majority rules(너 혼자만 좋아해)”라고 말한다. 매트 또한 “Narrow, hopeless(너무 편협해서 가망이 없다)"라고 비난한다. 자기 혼자만 좋아하는 음악을 남에게 과시하고 싶거나 좋은 음악을 혼자만 발견한 기쁨으로 행복해하던 추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분위기가 잘 이해되리라 싶다. 지금도 그렇지만 메이저와 마이너의 갈등은 항상 어디서나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비록 음반은 특정시대를 겨냥한 것이고 마이클 잭슨은 없지만 영화의 내용을 이해한다면 충분히 음미해 볼만하다. 메이저인 제나에게 마이너인 매트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대중과 마니아가 함께 있는 세상. 건강하지 않은가?
20111208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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