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에 의하면 19세기 말 본격적으로 서양음악이 유입되기 전, 여러 경로를 통해 서양음악과의 접촉이 있었다. 일단 이론적인 혹은 문헌적인 소개를 살펴보면, 1631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정두원(1581 ~ ?)은 음악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정보를 담은 <직방외기(職方外紀)>라는 책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 책은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줄리오 알레니(Gioulio Aleni, 1582 ~ 1649)가 중국 황제의 명을 받아 저술한 것이다. 홍대용(1731 ~ 1783)은 중국의 베이징을 방문한 후 가톨릭교회에 설치된 오르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담헌집(湛軒集)>을 남겼고 박지원(1727 ~ 1805)은 서양음악에 대한 토론과 감상평을 <열하일기(熱河日記), 1778>에 담았다. 이덕무(1741 ~ 1793)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1795>에 단편적인 서양음악의 기초 이론을 소개했고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을 통해 서양 음악의 음자리표, 악보 등을 소개했다.
서양 음악의 직접적인 유입은 가톨릭 신부들에 의해 처음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는 김대건(1822 ~ 1846)과 최양업(1821 ~ 1861)이다. 이들은 마카오에서 체계적으로 그레고리안 성가 교육을 받았다. 프랑스 신부 샤를르 달레(Claude Charles Dallet, 1829 ~ 1878)가 지은 <한국천주교회사, 1874>에는 병인박해(丙寅迫害, 1866, 조선 흥선대원군 집정 시기에 8천 여명의 가톨릭 신자가 처형된 사건. 이 사건으로 우리나라에 프랑스가 쳐들어 오는 병인양요가 일어난다) 때 외국인 신부 순교자들이 형장으로 압송되면서 성가를 불렀다고 적혀 있다.
20190127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