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 포(애드 훠, Add 4)는 국내 록 음악사 최고의 기타리스트, 작곡가, 프로듀서로 평가받는 신중현(申重鉉)이 결성한 밴드로 국내 최초의 록밴드로 기록되고 있다. 빗속의 여인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록음악으로 평가받는 곡을 남겼고 2장의 앨범만을 발표하고 해체했다.
1960년대 초부터 미8군의 인기는 식기 시작했다. 물가는 오르는데 뮤지션들에게 지급했던 월급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미8군에 인력을 대던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인원을 줄여 회사의 수지를 맞췄다. 신중현은 이런 시장의 흐름에 맞추기 위해 1962년 패키지 쇼그룹 클럽 데이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 더 이상 미8군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대중음악 시장을 겨냥한 애드 포를 결성했다. 당시에는 LP에 들어갈 곡의 레퍼토리가 완성되어야 앨범을 낼 수 있던 시기라, 곡을 만들고 연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중현은 밤에는 동두천 밤무대에서 연주를 하고 낮에는 작곡을 하며 밴드 멤버들과 함께 지냈다. 하지만 멤버들 간에 한 차례 불화가 있어서 계속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신중현은 보컬에 서정길, 드럼에 권순근, 베이스에 한영현을 라인업으로 구성한 새 멤버들로 팀을 짜고 음반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동두천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녹음은 우리나라 최초의 녹음실인 장충녹음실에서 이루어졌다. 마당이 넓은 가정집이었다. 시설이라곤 카펫을 깐 응접실에서 미군들이 군용으로 사용하던 릴 테이프 녹음기가 전부였다. 마이크를 하나밖에 사용할 수 없어 선을 최대한 늘어트리고 마이크 주변에 멤버들이 빙 둘러서서 노래를 불렀다. 아침 10시에 시작한 녹음은 오후 4~5시가 되어서 끝났다. 단 하루 만에 앨범의 녹음을 끝낸 것이다. 이 앨범에는 KBS <아마추어 톱 싱어 대회> 1등을 차지한 장미화가 천사도 사랑을 할까요와 굳나잍 불을 끕니다 2곡의 보컬을 맡았다. 장미화는 OBS <연예뉴스> 등과의 인터뷰에서 “KBS가 남산에 있을 때 신중현이라는 분이 찾아오셨어요. 난 그 분이 누군지 몰랐죠. 조그만 남자분이 오셔가지고 자기가 애드포라는 미8군 밴드를 운영하는데 보컬로 들어와 줄 수 있겠냐고 물었어요. 전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그냥 좋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1964년 발표한 첫 앨범은 기대와 달리 그렇게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음반사에서 계약금 같은 걸 주지도 않는 때였고 뮤지션들은 앨범을 내주기만 해도 고마워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인 시민회관, 서울 세종로 아카데미 음악 감상실, 명동 오비스 캐빈 등에서 공연을 하고 매진시키기도 했지만 수중에 돈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당시 주먹출신의 쇼단장들이 실권을 쥐고 있어서 연예인들은 착취당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겨우 생활이나 할 수 있을 정도였고 그것도 그나마 공연이 없으면 전혀 수입이 없었다. 1966년엔 <한국의 벤쵸스 Add 4 – 신중현 경음악편곡집 Vol.1>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신중현이 모든 곡을 편곡하고 애드 포가 연주한 앨범이다. 신중현이 작곡하지 않은 노란 샤쓰의 사나이 같은 곡들도 있어, 단순히 경음악 시장을 노린 앨범으로 보인다. 하지만 1965년 신중현은 결혼을 했고 1966년 큰아들을 가진터라 팀을 꾸려가기에는 생활고가 만만치 않았다. 할 수 없이 팀을 해산하고 다시 미8군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패키지쇼 밴드 조커스(Jokers), 블루즈 테트(Blooz Tet)를 거쳐, 1968년엔 덩키스(Donkeys)를 결성했다.
신중현이 팀의 이름에 대해 활동 당시 자신의 사진첩에 자필로 적은 것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Add 4란 글자를 뜯어보면 4를 더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 4명이 모여 음악을 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각자 4명은 개성이 다르니 그 개성을 하나로 합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모든 것이 발달하고 따라서 사람의 귀도 발달합니다. 옛날에 듣던 음과는 달라야지요. 화음도 다릅니다. 6도, 3도의 코드로는 만족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음악의 4도 화음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음악적으로 Add4란 어떤 화음에 음을 덧붙여 색다른 소리를 낸다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잘 쓰지 않았던 4도 화음을 사용하는 이유는 아마도 색다른 것을 원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도 시대에 맞도록 연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서 <신중현, Rock>에서는 “밴드명을 자세히 살펴보면 당시 내가 추구했던 음악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3도 화음으로 고정되어 있는 기존의 것에 하나를 더한다는 뜻으로, 즉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낼 토대를 마련한다는 신조어를 밴드 이름으로 함으로써 나는 항상 실험하는 뮤지션이 되겠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1962 ~ 63 : 신중현(리드 기타), 윤광종(리듬 기타), 한영현(베이스)
1963 ~ 64 : 신중현(리드 기타), 김대환(드럼), 서정길(보컬), 지미(베이스)
1964 ~ 66 : 신중현(리드 기타), 권순권(드럼), 서정길(보컬), 한영현(베이스)
20201007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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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우뚝 솟는 새빨간 우체통
내 말 좀 들어요
사랑하는 그님에게 내 편지 전해줘요
그렇게 있지 말고
애타는 심정 달래 길 없네
불 붙는 사랑 막을 길 없네
빨리빨리 전해줘요
나 정말 만나는 날 까지 참을수 없어요
애타는 심정 달래 길 없네
불 붙는 사랑 막을 길 없네
빨리빨리 전해줘요
나 정말 만나는 날 까지 참을수 없어요 X3
지속가능성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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