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혹은 행복의 나라로)는 대한민국 싱어송라이터 한대수가 1974년 발표한 데뷔 앨범 <멀고 먼 길>에 수록한 곡으로 1972년 서유석과 양희은이 각각 처음 발표했다. 멜론에 따르면 양희은의 버전은 1973년 연말결산 38위에 올라있다. 한대수는 2000년 발간한 자서전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에서 "군에서 제대하고 나니 제 노래 두 곡이 히트하고 있었어요. 한 곡은 김민기가 부른 바람과 나이고 다른 한 곡은 양희은이 부른 이 곡이었어요. 저는 그 길로 CBS PD에 의해 데뷔 앨범을 녹음하러 신세계레코드로 끌려갔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아주 많은 가수들이 커버했다.
한대수가 만들고 세컨 기타를 맡았고 정성조가 오르간, 임용환이 퍼스트 기타를 연주했다. 한대수가 이 곡을 처음 대중에게 선 보인 것은 1968년 세시봉 무대고 이후 1969년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가졌던 첫 공연(리사이틀) 때에도 공연을 가졌다. 그리고 군대 가기 전 1970년 CBS 라디오 PD 김진성의 스튜디오에서 "곡들이 사라질 것이 두려워" 처음 녹음했다. 이듬해 서유석과 양희은이 녹음한 것으로 보아 이미 포크 가수들 사이에서는 알려질대로 알려진 노래였던 것 같다.
이 곡의 버스 부분은 뉴질랜드 출신의 프랑스 가수 그램 올라잇(Graeme Allwright 19261107 ~ 20200216)이 1972년 발표한 La ballade De La Désescalade와 거의 흡사하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한대수에게 표절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대수는 자신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지은 노래이고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이 부른 것을 본 다수의 목격자가 있다며 블로그를 통해 타임라인을 공개하고 있다. 발표된 것만 따지고 보면 1972년으로, 같은 해이기 때문에 누구의 표절로 확정짓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17년만에 만난 아버지를 만나 US로 건너가 아버지와 살게 된 한대수는 새어머니와 갈등을 빚었다. 한대수는 위의 저서에서 "삶의 흥미를 잃은 내 모습은 상담교사들 눈에 띄었어요. 거기서 온화한 과학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내가 시를 쓰고 예술적 재능을 개발하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고 농장과 리조트를 운영하는 오빠를 소개시켜 줘, 방학 때는 그곳에 가서 일하면서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천국과도 같았죠. 거기서 하는 일 중 하나는 모닥불을 피워 아이들을 모아놓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일이 끝나면 오두막으로 돌아가 또 기타를 쳤고요. 그때 자작곡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만든 곡들이 이 곡과, 옥의 슬픔, 그날까지 같은 곡이예요"라고 말했다.
가사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각자가 생각하는 이상향에 대한 바람을 대리만족 시켜 주지 않았을까 싶다. 한대수는 EBS <싱어즈>에서 "새어머니의 구박이 너무나도 심했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 고등학교 3년 동안 제 곡의 반을 만들었어요. 너무 힘드니까 곡이 술술 나왔어요. 이 곡의 '울고 웃고 싶소'는 친구들이 보고싶은 것, '노는 아이들 소리'는 어릴 때 제기차기 하고 짝대기 같고 놀던 그때가 너무나도 그리웠던 것을 말해요. (새어머니가) 너무나도 냉정하니까요. 그러니까 대중적인 인기를 위해 만든 게 아니고요. 저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만들었어요. '고개숙인 그대'는 내가 고개를 숙였기 때문에 그런거예요. 당시 롱아일랜드는 집이 별로 없고 다 평야였어요. 하늘은 푸르고 광야는 넓고 나는 왜이리 슬픈 가, 분단된 우리나라도 슬프고, 그래서 장막을 걷으라고 말한 거예요"라고 말했고 2011년 플럭서스와의 뮤직비디오 촬영 때는 "고통, 고통, 고통, 우린 태어날 때부터 저주받았어요. 웃고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자꾸 행복의 나라니, 기쁨이니, 평화, 사랑, 그걸 찾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는 "당시 시대는 실제로 더 끔찍했다. 힘들고 어려웠고 배도 '진짜로' 고팠다. 지금은 예술가들이 '진짜'로 배가 고프진 않는 것 같다. 물론 그런 것은 있었다. 군사정권이 하도 혹독한 때라 그 억압이 좋은 곡이나 연극이 나오게 한 원동력이 되긴 했다. 도저히 행복하지 않으니 행복의 나라를 찾고 싶었고 차라리 바람이 되고 싶었던 시절이었다"라고 말했다. 군부독재때 "지금 이 나라가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냐"와 같은 이유로 금지당했다고 한다.
표절에 대한 한대수의 주장 https://m.blog.naver.com/geechanlee/222674917434
20230128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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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또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 주세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줘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벽의 작은 창가로 흘러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고개 숙인 그대여 눈을 떠보세
귀도 또 기울이세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 찾을 수 없이
밤과 낮 구별 없이
고개 들고서 오세
손에 손을 잡고서
청춘과 유혹의 뒷장 넘기며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2020s/2020] - Mexican Wife - 한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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