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1942~2018)의 히트곡을 개괄하도록 하겠다. 아레사를 개괄하기 위해선 콜롬비아, 애틀랜틱, 아리스타로 이어지는 레이블 교체기를 살펴야 할 것 같다. 음악 스타일이 레이블마다 바뀌기 때문이다. 모타운과 경합을 벌인 첫 레이블 콜롬비아는 아레사의 목소리를 스탠더드 발라드 시장에 내놓았다. 전략적으로 포스트 빌리 홀리데이(Billy Holiday)로 만들기 위해 재즈에 기반을 둔 발라드로 시장을 돌파하려 했기 때문이다. 당시 콜롬비아의 창립자이자 CEO였던 존 해몬드(John Hammond)는 후에 아레사가 품고 있던 가스펠적인 이력에 무지했다고 술회했다. 결과적으로 6년 동안 Rock-a-Bye Your Baby with a Dixie Melody 한 곡만 가까스로 40위권에 진입하는 것을 끝으로 콜롬비아와의 관계는 끝이 난다. 그러나 이것은 아레사가 스탠더드와 어울리지 못했다거나 노래를 못해서가 아니다. 음반시장의 대세가 이미 소울로 넘어갔기 때문 이였다. 가령 데뷔곡인 Today I Sing The Blues같은 곡을 들어보라.
아레사는 남편의 주도아래 애틀랜틱으로 옮긴다.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Jerry Wexler)는 아레사에게 콜롬비아 스타일을 버릴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본연의 가스펠에 펑키함을 얹혔다. 그리고 그 전략은 주효해 탑 텐 곡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이적 첫 싱글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은 9위에, 두 번째 싱글 Respect는 1위에 올랐다. 이어 Baby I Love You(#4), (You Make Me) Feel Like A Woman(#8), Chain Of Fools(#2), (Sweet Sweet Baby) Since You've Been Gone(#5). Think(#7) 등의 히트곡이 줄줄이 이어진 것이다. 특히 Respect는 아직도 아레사의 대표곡으로 인식될 정도로 곡의 파장이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흑인 민권 운동과 더불어 아직까지도 흑인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소울 음악이기 때문이다. 이 곡의 주인공은 원래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이었다. 하지만 그가 남자의 입장에서 ‘존중’을 원했다면 아레사는 여성의 입장에서 ‘존중’을 원했다. 특히 원곡에 알파벳 하나하나를 집어주는 “R, E, S, P, E, C, T”, 후렴구 “Sock It To Me” 부분을 첨가해 강조점을 부각했다. 그러자 여성 해방운동과 맞물리게 되었고 모든 소수자의 권익을 주장하는 곡으로 해석돼 불려나갔다.
Respect가 들어있는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 앨범도 좋지만 Chain Of Fools, Since You’ve Been Gone, Ain’t No Way 등이 수록된 <Lady Soul>이야말로 아레사 최고의 앨범이다. 특히 캐롤 킹(Carole King)과 제리 고핀(Gerry Goffin) 부부가 만든 (You Make Me) Feel Like A Woman은 개인적으로 비가 내릴 때마다 잡아끄는 곡이다. 그렇게 아레사는 애틀랜틱에 있는 동안 16곡의 R&B 1위곡을 터트리며 높은 인기를 구가한다.
하지만 아리스타에서의 초창기도 그리 쉽지는 않았다. 첫 두 장의 앨범이 실패하고 나서야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를 기용한 <Jump To It>이 골드를 기록하며 조금 회복세를 보였다. 그리고 타이틀곡은 간만에 R&B 1위에 오른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뉴웨이브로 넘어가버린 뒤였다. 이 앨범은 디스코의 끝물을 탄 앨범으로 흑인 팬들 위주로 히트했다. 한때 싱글 차트와 R&B 차트가 거의 동일시되던 때도 있었지만 점점 R&B는 우리나라의 트로트 위주인 성인가요 차트 같아져 인기도면에서 싱글 차트와 점점 멀어졌다. 다음 앨범 <Get It Right> 역시 R&B 싱글 1위 한 곡만 던져놓고는 급격히 사라졌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라디오를 듣던 아레사는 당시 히트하던 곡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듣고 자신의 음악도 좀 젊어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신예 프로듀서인 월든(Narada Michael Walden)을 기용했다. 하지만 완전하게 뉴웨이브로 가지는 않았다. 뉴웨이브보다는 보컬에 힘이 필요한 록에 비중을 둔 방향으로 나갔고 다만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고 R&B보다는 팝 사운드의 요소를 가미했다. 그러자 시장이 빠르게 반응했다. 첫 싱글 Freeway Of Love가 10년 만에 싱글 차트에 3위에 오른 것이다. 이어 셀프타이틀 곡인 Who’s Zoomin’ Who가 7위, 유리드믹스(Eurythmics)와 함께 여성의 자주성을 주창한 Sisters Are Doin’ It For Themselves가 18위에 오르며 앨범은 생애 처음으로 100만 장 이상 팔아 치웠다. 그리고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과 함께 부른 I Knew You were Waiting은 드디어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르며 <Lady Soul> 당시의 인기를 구가한다.
그녀가 전설로 추앙받는 것은 충격에 가까운 노래실력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1998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공연 예정이던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가 아파 무대에 오를 수 없자 그를 대신해 몇 분 전에 통보받고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 중 Nessun Dorma를 소화한 것을 들 수 있다. 거기에 또 한 가지, 2000년대 들어 정규앨범이 뜸해지긴 했지만 그전까지 해마다 앨범을 발표하며 어떡하면 대중에게 더 다가갈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한 것에도 있다. 전설이 되기 위해선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일찍 죽던가 아니면 꾸준함을 보여야 한다. 그녀의 최근 정규앨범이 2011년인 것처럼 말이다. 1998년 미국 타임지는 피카소(Picasso),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i) 등과 더불어 아레사를 20세기의 문화예술인으로 꼽았고 2008년 롤링 스톤은 레이 찰스(Ray Charles)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를 제치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1위에 아레사를 올렸다. 이건 우리나라에서 인순이가 조용필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선 것만큼이나 상당히 놀라운 평가였다.
20120727 20151129 다음뮤직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2012/10/17 - [1960's/1967] - Do Right Woman, Do Right Man - Aretha Franklin / 1967
2013/06/15 - [1960's/1967] - Chain Of Fools - Aretha Franklin / 1967
2013/10/21 - [1960's/1967] - I Never Loved A Man - Aretha Franklin / 1967
2014/07/11 - [1960's/1967] - Respect - Aretha Franklin / 1967
2015/03/25 - [1960's/1967] -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 Aretha Franklin / 1967
2018/01/20 - [1960's/1968] - Think – Aretha Franklin / 1968
2018/08/18 - [1970's/1973] - Until You Comeback To Me – Aretha Franklin / 1973
2018/08/20 - [1980's/1987] - I Knew You Were Waiting – Aretha Franklin & George Michael / 1987
'대한민국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르쥬 무스타키(Georges Moustaki) 19340503 - 20130523 (0) | 2016.01.24 |
---|---|
얼 클루(Earl Klugh) 19530916 (0) | 2015.12.20 |
마티카(Martika) 1969 (0) | 2015.11.14 |
가제보(Gazebo) 1960 (0) | 2015.10.18 |
Loggins And Messina (0) | 2014.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