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는 대한민국 가수 이동원(19510415 ~ 20211114)이 1989년 발표한 6번째 스튜디오 앨범 <향수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의 타이틀곡이다. 이듬해 재판을 찍을 때 박인수의 이름을 넣고 앨범 표지를 바꿨다. 멜론(뮤직박스) 주간 26위 정도에 그친 것으로 기록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살아남은 스테디셀러다. 음반도 상당한 수가 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너 박인수의 말에 의하면, 발매된 후 7개월만에 70만장을 판매했고 2010년까지 130만장이 나갔다고 한다. 가톨릭 가요대상 작곡 부문을 수상했고 초창기의 성악계 반대 분위기와 달리 지금은 우리나라 가곡에 포함하는 분위기다. 김도향과 패티킴 등 다수의 가수들이 커버했다.
이동원이 기획하고 대한민국 시인 정지용(19020620 ~ 19500925)의 자유시, 서정시에 작곡가 김희갑이 곡을 붙였다. 편곡은 김용년이 맡았다. 여러 인터뷰를 보면 테너와 대중가수의 합작은 KBS PD 신광철의 아이디어인 것으로 보인다.
이동원은 KBS부산 <뮤직토크쇼 가요1번지> 등 다수의 매체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방송국 앞에 책방이 있었어요. 가끔 가곤 했는데요. 어느날 월북작가라고 소개하면서 <정지용 시선>, <김기림 시선> 이렇게 두 권이 나와 있었어요. 그걸 사서 읽다가 이 시를 발견했죠. 처음 보자마자 '우리 말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이걸 노래로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시작이 되었구요. 김희갑 선생님을 찾아가 저와 테너가 함께 노래를 부르려고 하니 곡을 좀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시더니 '이게 좋긴 한데, 너무 길고 가사의 토씨 하나 바꾸면 안 되지 않느냐. 어렵겠다'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매달렸습니다. 후에 들은 얘기로는 부인 양인자 선생님께서 '이 곡은 꼭 한 번 작업을 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거 같아요'라며 격려와 종용을 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곡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 1년 걸렸어요. 악보를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너무 근사하게 만드셨더라고요. 악보를 가지고 연습을 하고 녹음에 임했는데, 한 두 번 부르는 걸 들으시고는 저를 부스 밖으로 부르시더니 '오늘은 안 되겠다. 그런 느낌으로 만든 게 아니야'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부끄럽기도 하고 해서 심기일전 하기 위해 강원도 등 전국을 돌면서 저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한 20일간 방황을 했습니다. 가사에 나오듯이 휘돌아 나가는 곳을 찾아 보기도 하고요. 그런 후에 다시 가서 녹음을 했고 한 두 번 들으시더니 OK를 주셨습니다. 완성된 곡을 들으며 여의도 쪽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부모님 생각도 나고, 해냈다는 생각도 들고, 뭔지 알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났습니다." 후에 이동원은 시와 비슷한 느낌의 곳을 찾았다며 경북 청도에서 살기도 했다.
테너 박인수가 보컬에 참여했다. 당시 박인수는 대중음악가와 협연했다는 이유로 업계에서 지탄을 받기도 했다. 박인수가 현대문화, 네이버캐스트, 월간조선 등 다수의 인터뷰에서 한 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89년 초 이동원씨가 지인의 소개를 받아 집에 찾아왔습니다. 정지용 시인의 시집을 들고서요. 제가 알기론 해금이 된 지 얼마 안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몇 페이지를 펼치고서는 '시를 한 번 읽어보세요. 맘에 드시면, 혹시 곡이 붙으면 저하고 노래 하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묻더군요. 이동원씨와는 친분도 있지 않았고, 정지용 시인도 알지 못했습니다. 무심코 책장을 넘겼는데 느낌이 강렬하게 왔습니다. '이 시는 국민의 시다'라고요. 저는 조상까지 합하면 서울에서만 500년을 산 사람이예요. 시골이 고향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사람이죠. 그런데 읽자마자 '이게 고향이구나'하고 바로 느껴졌습니다. 저는 망설이지 않고 '시가 좋습니다. 곡만 좋다면 좋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부드러운데도 딕션이, 전달력이 아주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6개월 뒤, 이동원씨는 곡을 들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김희갑씨가 우리 둘의 목소리를 맞출 수 없어 몇 번을 고사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너무 훌륭했습니다. 노래가 마음에 딱 들었어요. 두 달 뒤에 녹음했죠. 클래식 성악가가 대중가수랑 음반을 내니까, 좀 시끄러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오페라단에서 제명당하고, 파문이 커질 줄은 몰랐죠. 그냥 시가 좋고, 곡이 좋으니, 노래를 부르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당시에 노래를 녹음하면서 계약을 하지 않아 돈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인세가 총 13억원이라고 들어왔다고 하는데, 10원 한 푼 안 받았습니다. 연말에 이동원씨가 길쭉한 상자 하나를 들고 집에 찾아왔더라고요. 그때까지 인세가 7억원 들어왔는데 그동안 본인이 진 빚을 갚고, 작은 집도 한 칸 마련하느라 돈을 썼다는 겁니다. '잘했다'고 했습니다. 이동원씨가 '이제부터 들어오는 인세는 주겠다'고 했는데, 감감 무소식입니다. 길쭉한 상자 안에 용돈이라도 조금 넣어왔나 싶어 열어 보니, 연어 한 마리가 있지 뭡니까(웃음). 하지만 그 덕분에 남자분들이 절 아는 체 해 주시고. 1년에 200번씩 공연을 했습니다. 그걸 10년간 했죠. 거의 매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연말공연 같은 경우는 페이도 5배 정도 높게 받고요.그걸로 집도 사고 했습니다. 오페라단에서 제명되었지만 사실 공연을 하느라 오페라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희갑은 가톨릭 가요대상 수상 소감에서 " 자그만치 10개월이라는 장시간이 요구됐을 정도로 까다롭고 힘겨운 시간이었습니다. 제 작품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린 노래죠. 시에 곡을 붙인다는 것이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이 곡은 음절수가 잘 맞지 않아 애로가 참 많았습니다. 작업 6개월쯤에는 포기할 뻔도 했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어릴적 자란 정겨운 고향의 모습을, 청소년들에게는 경험하지 못한 진짜배기 우리네 농촌을 부드럽고 감미로운 선율로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아내 양인자씨의 격려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특히 클래식과 대중가요의 첫 만남으로 주목을 받아 (뿌듯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잘 소화해준 박인수씨와 이동원씨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라고 말했고 2006년 40주년 헌정공연에서는 "두 분이 이 곡을 녹음했을 때가 저의 음악 인생에 있어 가장 만족스럽고 스트레스가 확 풀렸던 순간입니다. 훌륭한 가수를 만나 음반에 수록되는 순간이야말로 보약 중의 보약이죠"라고 말했다.
향수는 정지용이 일본에서 유학할 당시에 지었다. 1927년 3월 <조선지광 - 65호>에 발표했고, 1935년 발간한 첫 시집 <정지용시집>에도 수록했다. 내용은 일제강점기에 보낸 일본 유학시절, 고향(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너무 좋았고 그립지만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슬퍼하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20221117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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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벌 동쪽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 시는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1980s/1988] - 슬픈 그림 같은 사랑 - 이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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