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은 의전과 외교 행사를 위해 양악대를 만들고 1902년 8월 15일 대한제국 애국가를 공포했다. 고종은 의정대신 윤용선에게 국가의 제정을 명했고 이에 궁중의 학자들이 모여 작사를, 양악대의 지휘자인 프란쯔 에케르트(Franz Eckert, 1852 ~1916)가 작곡을 했다. 정부가 이 곡의 악보를 공식적으로 배포했음에도 현재는 가사와 선율이 조금씩 다른 악보 10여 종이 전해져 온다. 아마도 일제 통감부가 이 곡을 금지 시킨 후 전국 각지에서 저마다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구전되어 온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 곡 외에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여러 편의 애국가들이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개화파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이 계몽운동의 차원에서 만들었다. 외국 곡의 멜로디를 사용해 가사만 붙인 곡들로 영국 국가를 사용한 새문안교회 애국가(황제탄신경축가 - 1896년 9월9일 고종황제 탄신일을 기념), 스코틀랜드 민요 Auld Lang Syne을 사용한 배재학당 애국가(무궁화가)와 찬미가가 있다. 찬미가의 경우는 현재 사용하는 애국가 가사의 전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20190129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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