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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한국대중음악사

양악대

by 현지운 Rainysunshine 2019.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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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812월부터 우리나라는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국왕의 지위를 황제로 격상시켰다. 정부는 의전 행사를 위한 국가적 차원에서 서양 음악을 수입할 필요성을 느끼고 19001219일 신식 군대 내에 양악대를 창설했다. 지휘자로는 독일 출신으로 일본에서 양악대를 육성한 경험이 있는 프로이센의 육군 군악대장 프란쯔 에케르트(Franz Eckert, 1852 ~1916)를 초빙했다. 프란쯔의 양악대는 190199고종의 생일 행사에서 데뷔 연주회를 가졌다. 프란쯔는 양악대를 운영하면서 음악 인재를 육성하려고 하였고 우리나라 전통음악의 세계화를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최초로 국가인 대한제국 애국가를 만들어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는 강제 해산되었고 양악대도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고종은 일본의 압력에 불구하고 양악대를 황실에만 두겠다는 조건으로, 이씨 왕조만의 양악대라는 뜻의 이왕직양악대((李王職洋樂隊 - 일본이 부른 명칭, 우리나라에선 황제란 명칭을 사용해 李皇職洋樂隊로 부름)이름을 바꾸었으나 합일병합 이후에는 더 이상 재정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1915년 해산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위암에 걸린 프란쯔가 사망했다. 지휘자를 잃은 단원들은 모금을 빌어 민간단체의 성격을 띤 경성악대란 이름으로 다시 출범했지만 이들도 결국엔 재정적자로 인해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양악대원들은 작곡가, 연구가, 선생님 등으로 직업을 바꾸면서 국내 음악계를 발전시켰다. 대원들 중에는 내 고향을 리별하고정사인이 있다.

 

20190128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사

성수무강하사 해옥주를 산같이 쌓으시고

위권이 환영에 떨치사

오천만세에 복록이 일신케 하소서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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