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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외

플래즈마틱스(The Plasmatics)

by 현지운 Rainysunshine 2017. 11. 11.


플래즈마틱스(The Plasmatics)웬디 올린 윌리암스(Wendy Orlean Williams)와 매니저 로드 스웬슨(Rod Swenson)이 결성한 미국의 펑크 메탈 밴드로, 전기톱으로 기타 자르기, 스피커 부수기, 큰 망치로 TV 부수기, 무대 위의 자동차 부수기. 세미 누드 등 수 없이 많은 금기를 깨는 라이브 공연으로 록 음악사에서 엄청난 논쟁을 일으킨 밴드다.

 

1977년 예일대를 졸업한 로드는 콘셉트 있는 공연과 신 다다이즘 등에 관심을 갖고 타임스스퀘어에서 데드 보이즈(The Dead Boys), 라몬즈(The Ramones), 패티 스미스(Patti Smith) 등의 쇼와 뮤직 비디오들을 만드는 일련의 카운터 컬처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이 때 잡지에 캐스팅 구인광고를 냈었는데, 해외에서 뉴욕에 막 도착한 웬디가 우연히 버려진 쇼 비즈니스 위클리 보고 그를 찾아왔다.


웬디 로드는 오디션을 통해 팀원을 뽑고 1978년 뉴욕 보워리에 위치한 CBGB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시작한다. 시각적인 면을 강조하던 이들은 기타리스트 웨스 비치(Wes Beech)가 합류해 완전한 팀컬러를 만든다. CBGB에서 독특한 공연으로 언더그라운드 펑크 신에서 높은 주가를 올렸고 한 주에 한 번씩만 있었던 무대를 한 주에 4번으로 늘리고 2번 정도는 매진을 기록하기도 한다. 이들의 소문을 듣고 록 음악 팬들은 각지에서 CBGB로 몰려오기 시작했으며 이들도 전기톱으로 기타를 반으로 자르는 등 점점 더 격하게 퍼포먼스를 만들어 냈다.


이외에도 이들은 폴란드 전쟁 영웅이 운영하는 어빙 플라자를 명물로 만들었고 19791116일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도 하지 않고 팰러디움 댄스홀에서 공연한 최초의 팀이 되었다. 이후 필라델피아와 뉴저지 등의 공연장 등을 접수했고 여타의 펑크 밴드들이 엄두내지 못하는 공연들을 펼치면서 명성을 쌓았다. 하지만 미국의 음반사들은 이들과 계약하길 주저했고 멀리 영국의 스티프 레코드사가 19803월 이들과 계약했다. 스티프사 산하의 A&R사는 이들에 관해 읽고 보았던 것이 사실인가 확인하러 뉴욕으로 직접 날아가 공연을 보았다. 이 당시 웬디게일 파머(Gail Palmer)의 포르노 영화 <Candy Goes To Hollywood>에 출연하기도 했다.



플래즈마틱스1980년 첫 앨범 <New Hope For The Wrechted>를 내놓고 레이블을 위해 영국 공연을 하려 했다. 하지만 소방서에서 TV와 차를 부수는 등의 퍼포먼스가 공연의 안전성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통보하자 공연사에서 그 이유를 들어 취소했다. 그래도 스티프에서 내놓은 첫 싱글 Butcher Baby는 영국 싱글 차트 55위까지 올라가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미국의 유명한 공연장인 위스키 고고에서 서부 공연을 시작해 화제성으로 몰려든 팬들에 의해 연장공연에 들어가기도 했다.


19811 웬디는 밀워키 공연에서 외설죄(Public Indecency : 우리나라로 치면 공연음란죄 정도)로 체포되었다. 웬디가 관객들 앞에서 큰 망치로 자위하는 시늉을 냈다는 것이다. 웬디는 체포를 거부해 얼굴을 강타 당했고 이를 말리려던 로드 역시 가격을 당했다. 웬디로드는 경찰관 폭행, 수사방해, 주류판매 법조항 위반 등으로 고소당했지만 모두 무혐의로 풀려났다. 웬디는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고 이후 공연들은 경찰관들이 지키는 가운데 진행되었지만 별 사고 없이 끝났다. 이후 클리블랜드에서 한 번 더 외설죄로 체포되었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다. VH1웬디의 밀워키 공연 사건을 '록 음악사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 100건' 중 100위로 뽑았다



법적인 소송으로 첫 번째 앨범 활동에 차질을 빚어 두 번째 앨범은 좀 지체되었다. 시간과 재정이 부족했던 이들은 음반사와 첫 앨범의 ¼ 정도 수준의 제작비로 3주 안에 앨범을 만드는 데 합의했다. 19815앨리스 쿠퍼(Alice Coopoer) 밴드의 닐 스미스(Neal Smith)를 드러머로 초청해 두 번째 앨범 <Beyond Valley Of 1984>를 내놓았다. 그리고 ‘The 1984 World Tour’란 제목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 막바지에 이들은 38스페셜즈(38 Specials),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e) 등의 음반을 프로듀싱 했고 후에 I Can Dream About You란 곡을 히트시키는 댄 하트만(Dan Hartman)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은 이들의 앨범이 너무 획기적이어서 좀 더 플래즈마틱스다운 음반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플래즈마틱스크리스 로마넬리(Chris "Junior" Romanelli)조이 리스(Joey Reese) 등을 새로운 멤버로 받아들이고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음반을 녹음해 1981년 여름, 6곡이 든 미니 앨범을 내놓았다. 이 음반의 음악적 스타일은 전형적인 헤비메탈 사운드로 제목도 <Metal Priestess>.

 

이어 1982년 봄 캐피탈 레코드사와 은 새로운 앨범의 데모를 제작하자고 로드에게 제안했다. 그래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뉴욕 스튜디오인 일렉트릭 레이디 스튜디오에서 한 주 만에 녹음을 끝내고 믹싱 한 데모 앨범이 만들어졌다. 이 앨범은 스콜피온즈(Scorpions)의 앨범을 1위에 올린 프로듀서 디터 디억스(Dieter Dierks)가 관심을 보였고 결국 프로듀서를 맡았다. 디터가 프로듀싱 한 플래즈마틱스의 네 번째 음반 <Coup d'Etat>는 펑크와 헤비메탈을 섞은 최초의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이런 장르는 S.O.D., 앤스랙스(Anthrax) 등이 시도했다. 장르상의 특징 때문인지 몰라도 웬디가 목을 심하게 사용해 매일매일 목이 상하지 않도록 보호를 받아야 했다. 의 데모 버전은 20년 후인 2000<Coup de Grace>란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이 앨범을 <Coup d'Etat>의 진정한 버전으로 여기는 팬들이 많다.


이들은 앨범을 낸 후 TV와 버스 폭파 등의 화면을 담은 The Damned 뮤직 비디오를 내놓고 의욕적으로 공연에 들어갔지만 캐피탈사는 10배 이상 돈을 벌어들이고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한 미남 밴드 듀란 듀란(Duran Duran)에게 회사의 여력을 집중하면서 플래즈마틱스의 프로모션이 상대적으로 훨씬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같은 해 모토헤드(Motörhead)의 매니저 더그 스미스(Doug Smith)로드에게 모토헤드의 리드보컬 레미(Lemmy)웬디에게 컨트리 곡인 Stand By Your Man을 듀엣으로 부르게 하고 싱글로 낼 것을 제안했고 이 기획은 3곡을 담은 EP로 발매되었다.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My Way 버전과 더불어 보수적인 음악계를 디스한 곡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또한 같은 해 키스(Kiss)플래즈마틱스에게 공연의 게스트로 와 줄 수 있냐고 물었다. 키스는 이들을 통해 이벤트성 화제를 뿌릴 수 있고 플래즈마틱스도 새로운 관객들 앞에서 새로운 홍보를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키스 진 시몬스(Gene Simmons)는 캐피탈과의 계약기간이 아직 남았기에 플래즈마틱스의 앨범보다는 웬디의 솔로 앨범을 내자고 제안하고 자신이 프로듀서를 맡고 싶다고 말한다.


레지날드 밴 헬싱(Reginald Van Helsing)이란 이름으로 베이스를 담당하고 리드 기타에 마이클 레이(Michael Ray), 그리고 게스트 뮤지션으로 에이스 프렐리(Ace Frehley), 폴 스탠리(Paul Stanley), 에릭 카(Eric Carr) 등을 섭외해 만든 웬디의 솔로 앨범 <WOW>웬디의 첫 글자들을 따서 만든 것으로 웬디를 이 앨범으로 1985년 그래미 베스트 여성 록 보컬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올랐다. 


1986년엔 웬디의 두 번째 솔로 앨범 <Kommander Of Kaos>가 나왔다. 플래즈마틱스 멤버들이 참여했으며 웨스로드가 프로듀서를 맡아 <WOW>보다는 빠른 템포의 진행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웨스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팀을 탈퇴하고 공연에도 참여하지 않았지만 작곡과 편곡, 녹음 등에는 간간이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플래즈마틱스1987년 앨범 <Maggots : The Record> 때 복귀했다



<Maggots : The Record>모토헤드의 매니저 더그가 만든 GWR사에서 해외 배급을 맡았다. 이 음반은 펑크의 전형적인 미니멀리즘을 보여주었던 <Kommander Of Kaos>와 달리 음악이 복잡해졌고 주제면에서도 <Coup d'Etat>에서와 같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주제들을 꺼내 암울한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환경파괴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그리고 그로인해 발생할 인류멸망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온실효과 등을 비롯한 인류의 환경파괴에 대해 대중적인 인식이 확산되지 않았던 터라 팬들과 평론가들은 이 음반을 스래쉬 메탈 오페라라고 부르곤 했다. 커랭 이 앨범에 만점을 주었다.


이후 플래즈마틱스는 더 이상 앨범을 발표하지 않았고 웬디만 여러 영화에 출연하면서 지내다가 1988년엔 스래시 랩이란 별명을 얻은 세 번째 솔로 앨범 <Deffest! and Baddest!>을 발표했다.



10여년이 지난 후인 199846일 웬디는 목숨을 끊었다. 같이 살던 로드를 심부름 보내고 집 근처 숲에서 권총으로 자살한 것이다. 유서가 발견되었고 로드의 말에 의하면 삶의 의지에 대해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웬디는 이전에도 두 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VH1웬디의 죽음을 '헤비메탈계의 중요한 사건' 중 43위로 꼽았다. 웬디는 여전사의 모습과 달리 동물을 사랑해, 동물보호에 앞장서서 일했고 1990년대에는 동물들의 재활을 돕는 일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채식주의자이고 건강식에 대한 인식이 남달라 한 모닝쇼에 출연해서는 흰 설탕을 많이 쓰는 유명 요리사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웬디는 뉴욕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었던 그녀는 대학에서 운영하는 지역학교에서 클라리넷을 배웠고 고등학교 밴드에서 클라리넷을 불기도 했으며 어린이 TV 프로그램인 <하우디 두디 쇼(Howdy Doody show)>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콜로라도에서 비키니 판매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플로리다, 유럽 등을 다니면서 요리사와 댄서로 일하다 1976년 뉴욕에 내려 우연히 든 잡지의 구인광고를 보고 로드와 만나면서 음악을 하게 되었다.  


20131105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You were a god in the halls of time

You've seen them come and seen them go

But why can't you sleep at night?

Maybe it's the glare of the lights

Maybe it's something you'll never know

You heard the voice again last night

You're fooling yourself, this ain't no dream

Well maybe it's not too late

You can still feed the hand of fate

Just roll the dice and play the game

 

Oh, legends never die

They keep your memories alive

Legends never die

They keep a part of you inside

 

You know you're not the way you seem

You're not a puppet on a string

Maybe it's not too late

You could still feel the hand of fate

Just close your eyes and play the game

 

 

Tuesday morning, New York Times

You passed away, you lost your mind

We all try to play the game

We all wanna taste the pain

We'd sell our souls if the price is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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