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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외

정율성(鄭律成) 19140707 ~ 19761207

by 현지운 Rainysunshine 2019.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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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鄭律成, 정부은(鄭富恩), 정뤼청, 19140707 ~ 19761207)은 일제 강점기 조선 전라도 광주에서 출생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작곡가다.

1929년 신흥학교에 입학해 합창단 활동을 했고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혁명군사간부학교에 입학해 수학하던 중 의열단에 가입했다. 이때 의열단 단장인 김원봉(金元鳳, 18980928 ~ 19581100)이 '선율(旋律)'로써 '성공(成功)‘하란 뜻의 ‘율성’이란 예명을 지어주었다. 이 시기에 소련 레닌그라드음악원 출신 크리노와(Krenowa) 교수에게 성악, 작곡, 피아노, 바이올린 등을 배웠고 1937년 연안으로 이주해 루쉰예술학원, 중국인민항일군사정치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1939년 중국 공산당의 가입해 문예오락 부서를 맡았고 팔로군행진곡을 포함해 8곡으로 구성된 팔로군 대합창을 작곡했다. 1942년 조선 혁명군 정학교에서 음악장으로 활동했고 유격전가처녀 적녀성조선 의용군 행진곡연안송 등의 항일노래를 만들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북한으로 귀국해 해주에 음악전문학교 설립, 조선인민군 협주단 창설 및 단장을 맡았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중국의 요구로 중국으로 파견되었고 중국에서 음악 활동을 하다 1956년 북한에서 종파사건으로 연안파가 숙청되는 것을 보고 중국 국적을 얻고 귀화했다. 문화대혁명으로 추락했으나 1988년 덩샤오핑의 명령으로 팔로군 행진곡중국인민해방군가로 지정되면서 복권되었고 1990년 북경 아시안 게임의 주제 음악으로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20세기 최고의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다.   

20190331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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