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외2016. 10. 29. 17:00



그램 파슨스(Gram Parsons)는 기타와 피아노로 컨트리 장르 안에서 R&B, 포크, 소울, 록 등을 섞은 하이브리드 음악으로 컨트리와 록 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친 뮤지션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평가는 그램 자신이 자신의 음악을 '코스믹 아메리칸 뮤직(Cosmic American Music)'이라고 명명한 것과도 상통한다.

 

그램10살 때 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공연을 보고 음악에 대한 동경을 품기 시작했다. 그래서 록큰롤을 카피하는 페이서스(Pacers), 레전즈(Legends) 같은 팀을 결성했고 아버지가 경영하는 클럽에서 연주를 했다. 16살에는 킹스턴 트리오(The Kingston Trio)저니멘(Journeymen)에 영향을 받은 실로스(Shilos)란 팀을 만들어 커피숍과 야외무대, 고등학교 등 등에서 공연했다. 실로스가 해체된 후에 그램은 하버드 대학에 들어간다. 비록 한 학기 만에 그만두었지만 멀 해거드(Merle Haggard)를 들었고 보스턴 포크 음악 주자들과 1966인터내셔널 서브머린 밴드(International Submarine Band, 이하 ISB)를 결성했다.

 

이들은 이듬해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L.A로 갔다. 여러 차례 멤버 교체를 거듭한 끝에 리 헤이즐우드(Lee Hazlewood)LHI사와 계약을 하고 <Safe AT Home>을 녹음했다. 이 앨범에는 그램의 베스트로 평가받는 Luxury LinerDo You Know How It Feels의 초기 버전이 들어있다. 하지만 앨범은 발매시기가 점점 늦춰졌고 결국 밴드가 해체된 후인 1968년 중순에야 발매되었다.


 


앨범이 나올 때 그램은 이미 버즈(The Byrds)에 들어간 뒤였다. 데이빗 크로스비(David Crosby)마이클 클락(Michael Clarke)이 팀을 떠난 뒤였기에 그램버즈의 베이시스트인 크리스 해밀턴(Chris Hamilton)과 매니저인 래리 스펙터(Larry Spector)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재즈 피아니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리듬기타와 보컬에 능한 그램을 택했다. 하지만 정식 멤버로 계약하진 않았다. 콜럼비아사는 이미 버즈 멤버들과 1968년 초에 계약을 해서 그램과 다른 신입 멤버인 케빈 켈리(Kevin Kelley)버즈 멤버들에게 월급을 받는 형태가 되었다.

 

그램버즈<Sweetheart Of The Rodeo>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앨범은 원래 버즈의 리더인 로저 맥귄(Roger McGuinn)이 기획 했다. 로저는 블루그래스로 시작해서 컨트리, 웨스턴, 재즈, R&B 그리고 당시에는 가장 진보적인 음악 형태 중의 하나로 인정받던 전자 음악까지 포섭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램L.A를 떠나 내시빌에 가서 녹음하자고 멤버들을 설득했고 음반을 녹음하면서 로저는 자신의 원래 계획을 포기하고 컨트리 음악이 풀 장착된 앨범으로 콘셉트를 다시 잡게 되었다. 하지만 그램은 여전히 LHI사와 계약 하에 있었다. 그래서 LHI의 사장 그램에게 앨범에 이름이 오를 경우 고소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결국 로저그램을 메인 목소리로 내세웠던 곡들을 자신의 목소리로 바꾸었다. 그럼에도 You're Still On My Mind, Life In Prison, Hickory Wind 등에선 그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버즈1968년 여름 영국에 있을 때 그램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반대해 남아프리가 공화국에서 콘서트 할 계획을 세우고 팀을 떠난다. 하지만 그동안 그램이 비정치적인 노선을 걷는 것처럼 보였기에 팀원들은 의아해 했다. 이 때 그램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믹 재거(Mick Jagger), 키스 리처즈(Keith Richards) 등과 사귀어서 이 둘과 로저, 크리스 등과 함께 스톤헨지를 여행했고 팀을 떠난 뒤엔 키스의 집에 머물면서 그에게 컨트리 음악에 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둘은 몇 시간씩 앉아 기묘하고 다양한 컨트리 음악들을 들었으며 기타로 그 다양한 곡들을 변주하기도 했다.

 


L.A로 돌아은 그램크리스, 베이시스트 크리스 에서리지(Chris Ethridge), 페달 스틸 연주자 스니키 피트 클레이노우(Sneaky Pete Kleinow)플라잉 부리토 브라더즈(The Flying Burrito Brothers, 이하 FBB)를 결성하고 1969<The Gilded Palace Of Sin> 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현대적인 컨트리 음악 스타일을 담고 있고 표지는 히피문화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장식된 누디 옷(Nudie suit : 누디 콘(Nudie Cohn)이 디자인 한 장식적인 옷)을 입고 찍었다. 비록 상업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도시와 근교, 전통과 현대를 오가는 혁신적인 앨범으로 평가받는다.

 

이들은 버즈의 드러머 마이클 클락(Michael Clarke)을 끌어들여 전미 투어를 떠났다. 그램이 비행기의 고소 공포증을 호소해 기차로 투어를 돌아야했고 버즈의 곡들을 재해석한 필라델피아 공연 외에는 대부분의 도시에서 좋지 않은 반응을 받았다. 거기에 그램은 이때부터 사일로사이빈과 코카인에 빠져들어 연주를 망쳤고 멤버들은 포커게임으로 돈을 탕진했다.

 

L.A로 돌아온 이들은 기차에서 자주 연주했던 The Train Song을 녹음해 남은 돈으로 이 곡의 프로모션에 투자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크리스 에서리지는 팀을 떠났고 크리스 힐만(Chris Hillman)이 베이스를 맡는 동안 버니 리돈(Bernie Leadon)이 들어와 기타를 맡았다.

 

그러나 이후 그램은 점점 더 마약에 빠져들었고 <Let It Bleed> 앨범을 마무리하고 전미 투어를 하러 미국에 들른 롤링 스톤즈 멤버들과 연일 파티만 하면서 지내느라 거의 곡 작업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FBB의 관객은 점점 줄어들어갔다. 그나마 롤링 스톤즈 덕택에 이들은 알타몬트 뮤직 페스티벌에 오프닝으로 설 수 있었다.

 


이들은 부채가 쌓여갔고 이를 막을 길이 없었다. 그러자 A&M사가 FBB를 컨트리 그룹으로 재건함으로써 손실을 막아주겠다고 나섰다. 매니저 짐 딕슨(Jim Dickson)은 컨트리 웨스턴 스타일의 팝과 홍키통크 스타일의 음악을 녹음하도록 부추겼고 재정부족으로 크리스, 그램, 버니는 서둘러 곡을 만들어 녹음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앨범이 1970년의 <Burrito Deluxe>. 이 앨범은 전작에 비해 비평적으로 혹평을 받았지만 Older Guys롤링 스톤즈의 곡인 Wild Horses가 들어 있다. 그램롤링 스톤즈<Sticky Fingers> 마스터 테이프를 듣고 Wild Horses를 커버하고 싶다고 말했고 은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 하지만 싱글로 발매하진 않았다. 이 앨범의 실패로 결국 멤버들과의 협의 끝에 그램은 팀을 나왔고 나머지 멤버들은 크리스 힐만을 중심으로 뭉쳐 2장의 앨범을 더 내놓았다. 이 당시의 상황에 대해 크리스우린 컨트리 방송국과 록 방송국 그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램1970년 초 A&M사와 솔로 음반 계약을 맺고 프로듀서 테리 멜처(Terry Melcher)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둘은 코카인과 헤로인에 대한 관심이 잘 맞아 결국 또다시 약물에 빠져들게 되었고 그램은 솔로 작업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고 많은 시간을 표류하며 지냈다. 그램롤링 스톤즈의 새 앨범 <Exile On Main Street>에 참여하고 싶어 그들을 찾아갔고 키스와는 듀오 앨범을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램은 정신적으로 방전되어 있었고 여자 친구와 자주 다퉜으며 음악에 대한 열의와 달리 실제로 제대로 하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키스의 애인 아니타(Anita Pallenberg)그램에게 떠나달라고 말했고 후에 키스는 이게 의 주도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이 앨범에서 팬들은 그램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썼는데, 후에 키스Sweet Virginia에서 그램이 코러스를 넣어주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램롤링 스톤즈와 같이 있고 싶어 했고 1972년 투어에도 참여하고 싶어 했다. 물론 뜻대로 되진 않았다.

 


그렇게 그램롤링 스톤즈와 헤어지게 되었고 많은 경우에 있어 결별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듯 그램은 애인이었던 그레첸 버렐(Gretchen Burrell)과 결혼해 약을 끊고 옛 친구들을 만나며 목가적인 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그리고 새 앨범을 준비하고 싶어했고 다시 FBB 멤버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특히 크리스의 초청으로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의 공연을 본 뒤 그녀를 자신의 솔로 앨범에 참여시키기로 마음 먹는다.

 

그램의 첫 솔로 앨범 <GP>1973년에 나왔다. 그램에밀루를 섭외해 그램 파슨스 앤 폴린 앤젤스(Fallen Angels)란 밴드를 조직해 공연팀을 조직했고 필 카우프만(Phil Kaufman)을 매니저로 고용했다. 그램의 알콜량을 조절하는데 많은 역량을 기울였고 초창기 공연은 별로 수지타산이 좋지 않았지만 점차 많은 팬들이 찾고 좋은 공연이란 소문이 퍼지기 시작해 닐 영(Neil Young), 린다 론스태드(Linda Ronstadt) 등의 가수들도 찾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램의 앨범 판매량이 많아지는 것과는 그리 상관이 없었다. 그램의 초기음악은 혁신적이었지만 이글스(The Eagles)가 등장한 이후에는 고전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램이글스의 초창기 멤버로 그룹의 방향을 닦은 버니 리돈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서인지 이글스의 음악을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듬해 그램의 두 번째 앨범 <Grievous Angel>이 나왔다. 이번에도 데뷔 앨범과 마찬가지로 에밀루엘비스의 리드 기타리스트 제임스 버튼(James Burton)을 기용했고 약과 술을 거의 끊고 열심히 작업에만 매진했다. 이 앨범은 그램의 사후에 나와서인지 몰라도 대체적으로 평단의 관심을 많이 끌었다. 대부분은 커버곡이거나 과거에 발표했던 곡들이고 In My Hour of DarknessReturn Of The Grievous Angel 두 곡만 신곡이다.

 


앨범을 녹음하기 전 그램의 공연에서 백 밴드로 활동하던 클레어런스 화이트(Clarence White)가 음주운전자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래서 클레어런스의 장례식때 그램버니와 즉흥적으로 Farther Along 공연을 펼쳤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램은 매니저 에게 자신이 죽거든 조슈아 나무(유카의 일종) 아래서 화장해 달라고 말했다.

 

그램6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 남동부에 위치한 죠슈아 나무 국립공원에 반해 이혼한 뒤 만난 새 애인 마가렛 피셔(Margaret Fisher), 과 그 곳에서 자주 데이트를 즐기곤 했었다. 197310월 공연이 잡혀 있던 그램은 긴 공연 전에 한 번 만 더 공원을 보러가자고 친구들에게 말하고 마가렛, , 개인 매니저 마이클 마틴(Michael Martin), 마이클의 애인 데일(Dale McElroy) 등과 공원으로 떠났다.

 

하지만 도착한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아 그램은 침대에서 거의 죽어가는 채로 발견되었다. 그램을 살리려고 소생술을 하던 친구들은 인근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1973919일 공식적인 사망 판단이 내려졌다. 병원에서 내린 결과는 몰핀과 알콜 과다 섭취였다. 당시 그램의 나이 26세였다. 마가렛은 후에 인터뷰와 자서전을 통해 그램은 일반인이 사용하는 몰핀의 3배까지 사용하며 한계까지 밀고나가는 투여를 하곤 했다고 밝혔다. 여전히 그는 마약의 소용돌이 안에서 버티고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램의 시체는 루이지애나의 장지로 가는 도중 L.A 공항에서 사라졌다. 클레어런스의 장례식에서 했던 그램의 말을 들어주기 위해 과 또 다른 한 친구 한 명이 시체를 훔쳐 조슈아 공원으로 데려 간 것이다. 그램의 소원을 그램의 아버지에게 말했지만 그램의 아버지는 루이지애나에 그램을 묻기 원했고 같이 음악하던 친구들은 아무도 오지 못하도록 해 시체를 훔칠 수 밖에 없었다. 조슈아 국립공원에 도착한 은 공원의 캡 록 지역에서 관을 열어 5 갤런의 가솔린을 시체에 붓고 불을 붙였다. 경찰은 즉시 추적에 나섰으나 일련의 사람들에 의해 방해를 받았고 며칠이 지난 후에야 두 사람을 붙잡았다. 하지만 당시에 시체를 훔친 죄에 대한 법이 없어 둘은 관을 훔친 죄와 공원을 더럽힌 죄로 750달러만 물고 풀려났다. 그러나 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램은 루이지애나의 공원묘지로 이장되었다. VH1그램 시신 도난 사건을 록 음악사의 충격사건 95위로 뽑았다.

 

사후에 그램에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이젠 그의 초창기 음악이 록 음악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록음악과 컨트리의 결합은 그 누구보다도 그램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보고 있다. 2003AMA는 그램에게 대통령상을 주었고 롤링 스톤은 그램을 역사상 최고의 뮤지션 87위로 선정했다. 에밀루2008CMA 명예의 전당에 오르자 미국의 한 저널리스트는 그램이 아직 CMA에 오르지 못한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논평했다.

                                       


보다 자세한 정보 http://en.wikipedia.org/wiki/Gram_Parsons


20131215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Posted by 현지운 Rainy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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