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시절이다. 갈등은 발전을 위한 토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대부분은 그저 집단이기주의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싶다. 북한과 남한의 관계는 (지금의 정권이 지나면 다시 좋아지리라는 기대와 함께) 표면상 다시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하고 여야의 관계는 날치기가 횡행하던 시절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다. 그런가하면 공격적인 선교로 가끔씩 세계를 놀라게 하는 우리나라의 기독교도는 일명 ‘땅밟기’라는 작태를 통해 그 특유의 배타성을 다시 한 번 드러냄으로써 전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고 현 정권 들어 이래저래 수난을 겪는 불교계는 이명박 정권과의 관계를 아예 체념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은 가요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게 일어난다. 물론 가요계뿐만 아니라 연예계 전체에서도 이런 모습은 있다. 가령 예능의 양대 산맥인 1박빠와 무도빠와의 대결은 댓글 혹은 블로거의 글,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문기자들의 기호를 통해 심심치 않게 발견되곤 하고 영화계에서도 한 영화를 놓고 서로를 알바로 부르는 지지와 반대의 난상 토론이 있으며 이창동 감독과 조선일보의 관계처럼 노선의 차이를 가르는 분명한 선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이저 기획사인 JYP와 SM, YG 팬들과 기자들은 상대방의 가수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면서 작은 실수라고 꼬투리를 잡으려는 태도부터 시작해 내부 가수 팬들끼리도 대립하는 양상을 보여 이런 집단적 이기심을 띠는 것은 가요계가 훨씬 심한 느낌이다.
지난해 JYP에서 쫓겨난 박재범과 기존 2PM 팬들 간의 혈투는 올해 인터넷 상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 중의 하나였다. 최근 박재범의 팬들은 택연의 군 문제를 개인의 인기 구축을 위한 쇼로 치부해 버림으로써 아직까지 이 둘의 관계가 전쟁 중임을 가시화했다. 동방신기 역시 ‘5명이 진리’라고 외치던 팬들이 SM 팬과 JYJ 팬으로 나뉘어 서로에게 폭풍 같은 비난을 퍼붓고 있다. SM에 남은 2명은 여전히 동방신기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것으로 보이고 JYJ의 경우, 앨범을 발표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공중파 입성이 이루어진 점을 봐서 아직 업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느낌이지만 <성균관스캔들>에서 유천이 성공적인 연기력을 보여주었듯이 일본에서 이미 연기자로 인정받은 멤버들은 앞으로 음악뿐 아니라 연기를 통해 팬들과 만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올해도 여지없이 음악차트 1위, 공연의 메인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가수들과 팬들의 자존심 대결이 불꽃을 튀었다. 특히 연말 시상식은 상의 권위와 상관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탄 상은 드높이고 자기가 싫어하는 가수가 받은 상은 폄하하는 편협한 팬덤의 모습이 여전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음악상이 다른 여타의 상, 예를 들어 영화 시상식이나 외국의 음악상들이 가지지 못한 점을 특유의 자랑거리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오지 않으면 안 준다’는 것이다. 참으로 권위와는 상관없는 동네 꼬마아이들의 소꿉놀이 같다. SM은 M.net과 결별하고 2년째 음원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 당연히 M.net차트를 기준으로 하는 <Mnet 카운트다운>과 연말시상식인 MAMA에서 이들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런가하면 한국일보가 만드는 <골든디스크>는 공정성을 문제 삼아 YG가 보이콧하고 있다. 80년대 후반 국내 최고의 시상식 중 하나였던 <골든디스크>는 이후 끊임없이 공정성에 시달리며 계속 나오는 가수만 주다가 이제는 공정성과 상관없이 자사의 기준만을 들이대는 여타의 다른 상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최근 들어 보이는 우리나라 음악상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점점 매출을 기준으로 하는 상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화를 산업으로 보는 시각만 들어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과거 신문사와 방송사의 이름을 걸고(물론 지금도 골든 디스크와 서울가요대상과 같이 명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주는 상들보다는 앞으로는 5대 음원사와 포털 사이트가 중심이 돼 각자 자신의 회사에 매출을 올려준 가수들에게 상을 나눠 줄 것으로 보여 상대적으로 언론사의 입지는 좁아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언론사의 명분보다는 음원사의 명분이 크고 MAMA나 멜론에서 보았듯 시상식도 더 화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멜론 시상식>은 2년 연속 메이저 3사가 모두 출연하고 MBC가 거기에 수저를 더함으로써 최고의 시상식 중 하나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런 추세는 공정성의 문제를 사라지게 할지는 모르겠으나 음악의 발전을 위한 실험과 도전정신은 외면당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그 전에도 딱히 눈에 띄는 상이 있진 않았지만 뮤직비디오의 퀄리티를 따지던 <Mnet뮤직시상식>이 <MK뮤직페스티벌>로 바뀌고 올해는 MAMA로 바뀌면서 이제 국내에서 표면적으로 매출보다 예술성을 기준으로 하는 상은 유일하게 한국대중음악상만이 남았다.
하지만 이 마저도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어 후원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난점이 있고 7회에 소녀시대가 상을 받음으로써 개인적으로 이 상만이 가지고 있던 아우라 역시도 깨졌다고 본다. 지극히 개인적이라서 설득력이 부족하지만 이 상은 그래도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출발이 남다르기 때문 이였다. 2003년 이효리가 10 minutes로 국내의 모든 상을 석권하는 것에 대한 평론가들의 반발은 그래도 시장 우선주위에 반대하는 목소리로 들렸고 또한 장기하가 상을 석권할 때는 빅뱅을 넘어섰다는 어떤 예술우위 진영(이라고 일단 분류하자)의 단합 같은 것도 느껴졌다. 물론 그래미가 마이클잭슨(Michael Jackson)에게 8개를 쏟아 부으며 열광했던 적이 있듯이 음악이란 예술성과 대중성이 함께 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소녀시대가 이효리나 빅뱅보다 더 나은 음악적 결실을 맺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지울 수 없다. 과연 소녀시대가 이효리의 경우에서처럼 2003년을 그렇게 제패했을 때 평론가들은 가만있었을까?
음악의 반쪽은 음악성이다. 그 반증은 대중들 역시 아이돌을 폄하하고 가창력을 따지는 데서 드러난다. 그러니 우리도 국내의 모든 영화상이 관객 수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작품상과 감독상 등으로 그 작품의 질을 판단하듯이 매출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반대의 목소리 역시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한다. 어차피 연말 시상식에서 ‘객관’을 기대하지 않은지 오래됐고 한 해 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음악인들에게 주는 상은 널렸다. 그냥 상을 만드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기준’만이 존재할 뿐이다. 거기에 객관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투표방식의 상은 어떤가. 우리는 그저 누구의 팬이 더 많은지를 확인할 뿐이다. 거대한 팬덤을 형성하는 팬들의 이기적인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굳이 이런 절차가 필요할까?
결론적으로 시상식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설사 수상자로 선정된 뮤지션이 그 상에 대해 욕을 하더라도, 한 번 기준을 정했으면 상을 주자. 그리고 매출을 기준으로 하는 것만큼 음악적 실험과 도전을 위해 노력한 음악인들을 격려하자. 진정한 권위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20101220 / 20120216 한겨레 훅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http://koreanmusicawards.com/2016/teaser/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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