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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3

이상준(李尙俊) 1884 ~ 1948 이상준(李尙俊, 1884 ~ 1948)은 김인식, 김형준과 더불어 초기 양악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특히 김인식의 족적과 업적을 더욱 발전시킨 음악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상준은 김인식이 재직하던 조선정악전습소(조양구락부)에 입학해 김인식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이상준은 조선음악 쪽이고 김인식은 서양 음악부 쪽이라 수제자라고 볼 순 없지만 김인식에게 배운 서양음악 이론으로 악보를 채보하는 엄청난 양의 작업을 하게 된다. 이상준은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12살에 서울 정동의 피어슨 성경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서 풍금과 서양음악을 배운 그는 15살에 평양으로 가 대성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재직했고 이후에도 계속 유명한 학교들을 옮겨 다니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상준은 기존의 음악들을 서양 악보로 채보하는 작업을 꾸준.. 2019. 2. 10.
김인식 18850919 ~ 19620217 김인식(金仁湜, 18850919 ~ 19620217)은 현재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음악가로 기록되고 있다. 그 이유는 최초의 서양음악 교사였고 최초의 서양음악 형식의 곡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음악 스타일은 선교사들로부터 배우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유교적 사고를 지닌 아버지 때문에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았다. 김인식은 평양에서 4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기독교 예배당에 다니면서 창가(唱歌)류의 음악을 처음 접했고 평양숭실중학교 재학시절 성악, 오르간, 바이올린 등을 배우며 음악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당시에는 교사가 부족해 실력이 뛰어난 조교를 뽑아 월급을 주면서 아래 학년을 가르치도록 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김인식도 그런 조교 중 한 명으로 뽑혀 오르간을 치면서 .. 2019. 2. 6.
창가(唱歌) 서양음악적인 의미에서 창작음악의 역사는 1905년 김인식이 만든 학도가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학도가는 창작음악 1호라는 역사적인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이를 음악적인 장르상으로는 창가(唱歌)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직업적인 가수 등)이 부르는 걸 듣는 감상용이 아니라 직접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다. 이 말은 일본에서 유래했다. 일본에서 창가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용 노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당시의 서양식 노래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김인식에 이어 이상준이 창가를 작곡했다. 이상준은 , 등 여러 편의 창가집을 발간해 창가를 정착시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어 홍난파는 1916년 야구전을, 정사인은 추색을, 백우용은 조선유람별곡 등을 발표했다. 창작작품이 아닌 경우는 189.. 2014.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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