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의 시대에서 CD의 시대로 넘어갈 때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반발이 있었듯, 항상 오래된 것에 대한 전관예우는 우리들의 뇌리에 무의식적으로 똬리를 틀고 있다. 기타를 전면에 부각시킨 생음악이 신디사이저로 대변되는 새로운 물결에 저항을 받을 때도 그랬고 '80년대 국내 언더그라운드가 만들어 놓은 문화가 댄스와 춤으로 결정지어진 신세대 음악에 그 왕좌를 내놓을 때나 틴팝이 패권을 누릴 때에도 많은 평론가들과 기성 음악인들은 미래에 대한 암울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것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창시한 아도르노(Th. Adorno)가 고전음악에 비해 대중음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부분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퀸(Queen)의 Radio Gaga나 이승환의 Radio Heaven에서 알 수 있듯이 신문, 라디오, TV, 인터넷 등 매체의 변화가운데에서 가장 음악인들에게 안타까운 순간은 라디오의 시대에서 TV의 시대로 넘어갔던 때인 것 같다. 순수하게 음악으로만 평가하던 청중들은 소리에서 느껴지던 아우라보다는 TV에서 보여 지는 뮤지션들의 외모와 제스처, 패션 스타일에 눈을 모으기 시작했으며 버글스(Buggles)의 Video Kill The Raido Star를 앞세우고 등장한 MTV의 전성시대가 도래하자, 음악은 더 이상 귀로만 듣는 무형의 성질이 아니라 이미지와 공간감, 상징체계들이 눈앞에 보이는 현실적 유형이 되었다. 이제 뮤지션들은 더 이상 작은 트랜지스터 속의 영웅이 아니라 모든 비주얼적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패션 리더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김현식의 백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에 몸담았으며 국내 퓨전 음악의 첫 주자 사랑과 평화의 후발주자 빛과 소금의 리더인 장기호의 솔로 앨범은 이런 과거의 유산을 다시금 돌아보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TV의 등장으로 소외된 라디오를 안타깝게 표현한 내 친구 Radio와 라디오에 대한 소리에 관한 이미지를 한 트랙으로 만들어 놓은 Radio Talk, 라디오 시대의 절정을 구가하게 해 준 스테레오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은 Mono Oh No-No!'에서 라디오에 대한 사랑과 우정을 아낌없이 과시함으로써 말이다. 어쩌면 그는 이 앨범을 통해 라디오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던 음악의 진정성을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히든 트랙에서 유감없이 뽐내는 짧은 시간동안의 초퍼 실력을 비롯해 베이스의 리듬감이 전면에 부각된 내 친구 Radio, Mono Oh No-No! 등에서 연주 음악이 주는 정통성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제제기하고 있으며 다시 내 친구 Radio, Mono Oh No-No!, 그 책(The Book, The Bible), 몰라에서는 빛과 소금 시절 원 없이 보여주었던 가성과 진성의 화려한 앙상블을 선사한다. 그뿐 아니라 하모니카의 소리가 아련한 추억으로 몰고 가는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에서는 스캣의 즐거움을, 단조로운 톤의 어떻게 말할까는 기교주의적 화성 패턴에서 벗어나 뛰어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퓨전 재즈를 실험한 국내 음악의 1세대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대중이 유학을 다녀온 음악인에게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공에 대한 기대감 못지않게 이 땅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어떤 것을 과감하게 펼쳐주길 바라는 마음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약간 달라진 빛과 소금의 음반을 듣는 듯한 이 음반이 주는 장래성은 이 음반보다 이 음반이 지닌 현실적인 가치보다는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장기호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음반을 가만히 들어보자. 그 속에는 그런 균형감각에 대한 기대가 무색하지 않을 수재의 표상이 스친다.
200203 / 20150413 / 웹진 이즘 /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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