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s/20122016. 1. 2. 05:00

 

 

H.O.T.가 등장할 때까지만 해도 아이돌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일단 악기 연주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2000년대 초 립싱크도 하나의 장르입니다라고 말했던 SM 이수만 대표의 말처럼 라이브로 음악을 소화할 수도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편곡은 물론이고 작사, 작곡에 깊이 관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엔 싱크(NSync)Bye Bye ByeIt's Gonna Be Me의 뮤직 비디오에서 양손이 묶여 있는 인형들처럼, 아이돌이란 꼭두각시처럼 그저 잘 훈련된 군무에 인사성 정도에만 신경 쓰고 몰개성한 캐릭터에 남성인지 여성인지 모를 예쁜 얼굴로만 구분될 수 있는 상품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클릭비(Click-B)란 팀은 처음에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아마 노민혁이라는 기타리스트 때문이었을 것이다. 1990년대 초반 <핫뮤직>에서 하루에 몇 시간씩 기타를 만진다는 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한 그룹의 기타리스트로 나타났을 때, 그 기대감은 너무나도 남다른 것이었다(정성하보다 더 강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1집을 듣자마자 기대는 바로 실망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만의 기타소리는 잠깐이었고 잊혀진 사랑처럼 댄싱 그룹들과 전혀 다를 바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연을 조금 한다는 이유로 그냥 댄스 그룹 앞에 자만 넣은 그룹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베이스를 친다는 김상혁이나 드럼을 친다는 하현곤 역시 그냥 구색에 지나지 않을까, Promise 같은 곡은 누가 연주해 준 게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그러다 백전무패가 나왔을 때 이 팀이 댄스를 버리고 오히려 을 추구하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고 당시 리뷰도 그런 방향으로 썼지만, 이들은 곧 보컬 위주의 4인조로 재편되었고 연주를 내세운 밴드가 아닌 아이돌에 무게를 둔 포맷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이들은 제이 워크JNC란 이름으로 앨범도 냈고 몇몇은 솔로로 활동하며 2006년 다시 뭉쳐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하며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한 명맥을 이어갔지만, 음악사에 아무런 족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현곤 팩토리란 이름은 지금까지의 궤적을 반전시킬 만큼 드라마틱한 컴백이었다. 가장 인지도 없던 아이돌의 반란이랄까. 적어도 내게 하현곤의 등장은 전혀 예상 못한 것이었다. 솔로 가수도 아니고 연기자나 방송인도 아닌 프로듀서라니 말이다. 그는 예전의 아무 존재감 없이 드럼만 칠 줄 알았던 친구가 아니라 위에 내가 열거했던 아이돌에 가졌던 모든 편견을 다 뒤집어엎을 만한 실력을 키워왔던 것이다. 물론 2008<남자들의... 이야기...>는 획기적이지도 않았고 신선함도, 그렇다고 노련한 장인의 그 무엇도 없는 앨범이었다. 단지 예전의 동료들과 합을 이뤄 마치 외인구단의 집합 같으면서도 안정적인 느낌만 강하게 주는 앨범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현곤의 느닷없는 출현은 처음 노민혁에게 가졌던 새로운 기대를 품게 할 만큼 인상적이었던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그렇게 이 친구는 윤종신의 월간시리즈처럼 달마다 한 곡씩 발표한다. 그러면서도 <남자들의... 이야기...>처럼 프로젝트성 그룹에 대한 가능성을 여전히 타진한다. 어쩌면 <느즈막즈음...>은 이런 자기주장의 중간 결산쯤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그가 주장하는 것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자신의 보컬이라고 생각된다. 여자를 몰라서의 호소력과 솔직히의 힘, 그리고 모든 노래에서 힘을 뺀 부드러운 흐름은 클릭비 시절 다른 얼굴들에 완전히 가려져 있던 하현곤을 새롭게 발굴해 낸다. 또한 전자음을 최대한 배제하고 스트링을 위주로 한 어쿠스틱한 편곡 역시 아이돌 시절을 잊게 할 만큼 현재 힐링 음악의 시류와도 잘 맞는다. 귀를 자극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당분간은 자주 듣게 될 앨범 같다.

 

요즘은 아이돌이 편견을 뛰어넘기 위해 몇 배 더 노력하는 모습이지만 <느즈막즈음...>같은 앨범은 초창기 아이돌 역시 아이돌이란 이름 밑에 숨겨진 재질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현곤에게는 김현철 같은 싱어 송라이터로서의 면을 강하게 띠는 프로듀서의 모습도 보이고 유희열이나 정석원, 이승환이 감행했던 프로젝트 앨범 감독의 역량도 비친다. 또한 김태원처럼 (의도적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자신과 음악을 같이 했던 과거의 동료들을 하나, 둘 데려오는 것도 아주 보기가 좋다. 그렇기에 아낌없이 응원을 보내며 ‘고집불통의 자아를 포기하지 말고 거침없이 계속 정진하길 빈다.

 

20130114 다음 뮤직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Posted by 현지운 Rainy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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