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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s/1924

설날 - 윤극영 / 1924

by Rainysunshine 2024.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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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은 대한민국 동요 작곡가 윤극영(19030906~19881115)이 어린이 잡지 <어린이> 1월호, 2월호에 수록한 곡으로 우리나라 설날의 대표적인 노래로 유명하다. 1926년 발표한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동요집 <반달>에 수록했다.

 

윤극영이 작사, 작곡했다. 윤극영은 1979년 이두호와의 인터뷰에서 "1923년 어느 날 이었어요. 동경 하숙집에서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체격이 건장한 젊은이가 언덕을 올라오고 있어요. 나는 무심코 그가 나를 찾아오는 손님 같다는 막연한 짐작을 했는데 생각이 맞아떨어졌어요. 그가 소파 방정환이었어요. 우리는 처음만나 피아노를 치며 ‘날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형제 / 반짝반짝 정답게 비치더니 / 웬일인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 남은 별이 둘이서 눈물집니다’를 부르며 어린이들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방정환은 3.1운동 때 33인 대표인 손병희 선생의 사위로 월간지 <신여성>과 <어린이> 잡지를 만들고 있었지요.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윤극영, 당신이 어린이들이 부를 노래를 만들어라, 자신만을 위해 음악공부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장차 나라를 이끌어 갈 우리 어린이들이 즐겨 부를 노래가 없다"고 했을 때 나는 무조건 찬동했어요. 그 해 5월1일 방정환, 진장섭, 조재호, 손진태, 정병기, 정순철과 내가 색동회를 발족시켰어요. 서울에서는 그날을 어린이날로 정해 행사도 하고. 뒤이어 마해송, 이헌구도 멤버로 참여했는데 색동회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순 우리말과 노래로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일깨워주려는 운동이었지요.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우리 동포들이 무차별 학살 당하는 살벌한 일본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귀국을 했어요. 아버님은 뒤뜰에 음악을 할 수 있는 조그마한 별채를 지어주셨어요. 그곳에서 어린이들을 모아 달리아회라는 합창단을 만들고 여름에 이 노래를 만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장유정 교수는 조선일보에서 이 곡과 고드름을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요라고 말하면서 "윤극영은 이 곡을 만들게 된 동기를 밝힌 바 있다. 매년 1월 1일에 아이들이 학교에 모여 1년의 학업을 시작하는 의식을 일본 노래인 식가로 마무리하는 데에 신경질이 날 정도로 예민해졌다. 아이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려고 고심하다 우리나라 고유의 풍속, 즉 설날에 빚어지는 일들에 중점을 두자 술술 풀렸다고 한다. 섣달그믐을 까치설이라고 한다. 예부터 까치는 우리나라에서 길상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설날 새벽에 가장 먼저 듣는 소리로 그해 운수의 길흉을 점치는 청참 풍속이 나온다. 이때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해는 운수 대통으로 여겼다"라고적고 있다.

 

아마도 이 곡의 가사에서 까치의 설날이 왜 어제인가에 대한 논란이 제일 많은 것 같다.  이에 대한 첫번째 설은 민속학자 서정범 교수의 주장이다. 섣달 그믐날은 '아찬 설' 또는 '아치 설'이라고 불렸다. '아찬', '아치'는 순우리말로 '작은'을 뜻한다. 예로 남서해안 다도해 지방에서 조석 간만의 차가 가장 작을 때 '아치 조금'이라고 부르고 경기만 지역에서는 '까치조금'이라고 부른다. 그런 의미로 설날은 '한설, 한첫날'로 전날은 '작은 설'이라는 뜻으로 '아치 설'이라고 했다. 세월이 흐르며 '아치'가 뜻을 상실하며 '아치'와 음이 비슷한 '까치'로 바뀌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아치설'이 '까치설'로 이어지는 원형을 문헌에서 찾을 수는 없다고 한다. 

두번째 설은 고려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나오는 것이다.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한 스님과 작당을 해 왕을 없애려고 했는데, 까치와 쥐, 돼지와 용의 도움으로 왕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소지왕은 동물들의 공을 인정하여 십이지신 모두 넣어줬지만, 까치를 넣을 자리가 없었다. 대신 설 바로 전날을 까치의 날이라 하여 까치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이 설화에 나오는 동물은 까치가 아니라 까마귀라고 말한다. 

이 외에 설날을 지내지 않는 일제의 새해와 우리의 설날을 구별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설,  까치의 무늬와 비슷한 색동저고리를 설 전날에 준비했기 때문이라는 설, 까치의 한자어 작(鵲)과 어제의 한자어 작(昨)의 음이 같아서 그렇게 했다는 주장 등이 있다. 

 

가사는 평소와 다른 옷과 분위기 등으로 설날만의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다. 

 

20240208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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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세요

 

우리집 뒤뜰에는 널을 놓시고

상들이고 잣까고 호두까면서

언니하고 정답게 널을 뛰고

나는나는 좋아요 참말 좋아요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
우리 우리 내 동생 울지 않아요
이 집 저 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
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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