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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6

일제강점기 창작 대중음악 한동안 일본의 번안 곡들만 발표하던 가수들은 1920년대 말에 이르러 드디어 창작 대중음악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제1호는 김영환 작사, 작곡의 강남달(낙화유수)로 인정받고 있다. 이 당시 히트한 창작곡들로는 세 동무, 목포의 눈물, 황성 옛터(황성의 적) 등이 있다. 이 당시 창작곡들의 특징으로는 3박자, 민요풍, 민중들의 애환을 담은 곡들이 많다는 것 등이 있다. 1930년대에 들어서는 신민요가 출연한다. 신민요는 대개 3/4박자로 세마치와 굿거리 장단을 사용한다. 아리랑, 노들강변, 능수버들, 맹꽁이타령, 아리랑랑랑, 울산타령(울산아가씨), 조선팔경가(대한팔경가), 처녀총각, 풍년가 등이 있다. 1930년대에는 일본 엥카의 영향을 받은 트로트 또한 창작되기 시작한다. 이 당시 히트한 트로트들로는 애수.. 2019. 4. 29.
쌍쌍파티1 - 주현미 & 김준규 / 1983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과 더불어 1970년대를 마감한 우리나라는 1980년대에 이르러 드디어 꿈에 그리던 민주주의를 향해 다가섰지만 신군부의 집권으로 다시 그 소망은 뒤로 미뤄지고 만다. 대신에 1970년대를 힘겹게 버텨온 우리 국민은 그간 이루어 놓은 인프라와 유가, 달러, 금리가 동시에 낮아지는 3저 현상에 힘입어 유래 없는 경제 호황을 누린다. 도심은 대중화된 자동차로 붐비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차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찾게 있었다. 국가의 경제적 성장으로 국민들은 그간의 정서를 대표했던 한을 밀어내고 신명으로 갈아타기 시작한다. 젊은 세대는 리믹스된 댄스 음악을 들었고 트로트를 소비하던 성인층은 기존의 슬프고 애상조에 젖은 트로트보다는 좀 더 발랄하고 빠른 음악에 반응했다. 이에 힘입어.. 2019. 4. 7.
한명숙 19351201 창가로부터 주도권을 가져온 트로트의 강세 속에서 1960년대 초 우리대중음악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다. 바로 한명숙의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가 시장을 강타한 것이다. 기나긴 애상조의 노래가 대중음악계를 주름잡아오던 기존의 패턴에서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는 경쾌한 서구 팝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선 이였으며 기존의 여가수가 지니고 있었던 전형적인 꾀꼬리 같은 목소리만의 세상에 종식을 알리는 부고장 이였다.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난 한명숙은 평양음대 교수인 외삼촌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서양 고전음악을 접하면서 자랐다. 노래에 소질이 있어 합창단원으로 활약하며 음악 대학의 진학을 꿈꾸기도 했지만 한국전쟁의 발발로 그 꿈을 접어야 했다. 인천에 피난 와 살면서 오르간을 치며 노래 연습을 하던 그녀는 우연히 옆집.. 2017. 11. 11.
애수의 소야곡 - 남인수 / 1937 애수의 소야곡은 후에 가요의 황제로 군림하는 남인수가 1937년 오케 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한 곡이다. 국내에서 국민가요로 불릴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일본에서도 토도로키 유키코(轟由起子)가 애수의 세레나데(哀愁のセレナーデ)란 제목으로 리메이크 해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다. 곡의 장르는 트로트로 작곡가 박시춘이 만들었고 세션도 박시춘의 기타 한 대로 끝냈다. 처음에는 시에른 레코드사에서 김상화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눈물의 해협이란 제목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1936년 남인수의 본명인 강문수로 발표했지만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남인수의 실질적인 데뷔 곡이다. 박시춘은 이듬해 오케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 곡을 다시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작사가 이부풍을 섭외했다. 새로운 가사를 입은 이 .. 2017. 6. 25.
현철 19450617 일제강점기에 탄생한 트로트란 장르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3번에 걸쳐 융기한다. 그 첫 번째는 당시 주류였던 창가, 신민요를 제치고 서민의 품으로 들어온 일제강점기 후반의 일이며 두 번째는 이미자를 필두로 남진과 나훈아가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1960년대, 그리고 1980년대 후반 주현미와 소위 트로트 4인방이 집권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서구대중음악보다 먼저 입장해 장구한 시간을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 트로트는 역사 속에서 그렇게 좋은 평가를 얻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주도에 의해 적극적으로 이식되었다는 주장 때문이다. 거기에 1980년대 후반의 인기는 관과 방송사가 연합한 결과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1980년대 후반 거세게 일어난 트로트의 봉기는 정.. 2012. 1. 4.
주현미 19610927 주현미 19610927 우리대중음악계에 있어서 다른 시대 못지않게 1980년대에도 많은 거성들이 있었다. 최고의 왕관은 언제나 조용필에게로 돌려지지만 후대의 영향력에 있어서만큼은 들국화, 어떤날, 그리고 유재하가 최고의 뮤지션이다. 하지만 트로트분야로 넘어오면, 남녀를 통틀어 주현미가 그 영예를 차지한다. 실상 주현미는 트로트뿐만 아니라 메인스트림에서도 조용필 다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용필의 아성에 도전한 김수철, 이용 등은 정상권에 오르자마자 조기 탈락했고 전영록은 90년대 초반까지 승승장구했지만 전국을 뒤흔들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주현미의 인기가 후대에 방송사의 조직적인 트로트 지원에 힘입었다는 이유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그녀의 이력을 보면 인기의 유지와 롱런의 힘은 언제나 노력에서 나온다는 .. 2011.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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