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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파5

봄처녀 - 선우정아 / 2015 봄처녀는 대한민국 싱어 송 라이터 선우정아가 2015년 발표한 곡으로 한국대중음악상 팝 부문 노래 후보에 올랐으나 빅뱅(Big Bang)의 Loser가 받았다. 빌보드 선정 '2010년대 최고의 K-Pop' 74위에 올랐다. 선우정아가 이은상(李殷相, 19030101 ~ 19820918) 시조에 홍난파(洪蘭坡, 18970410 ~ 19410830)가 1932년 작곡한 봄처녀를 사용해 만들었다. 엔지니어는 브래드 휠러(Brad Wheeler)가 맡았고 걸그룹 바버렛츠(The Barberettes)가 BG 보컬에 참여했다. 이 곡의 홍보글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 곡의 탄생은 매우 우연하다. 2집 앨범을 작업하던 당시 친구에게 빌린 싸구려 전기기타를 이래저래 장난스레 연주하는 과정에서 기타 테마가 만.. 2021. 4. 24.
1920 ~ 1930년대 가곡 1920 ~ 1930년대 가곡 우리나라에서 (서양음악 형식의) 가곡(歌曲)이란 장르는 1920년대에 들어 그 틀이 형성되었다. 초기의 곡들 중에는 단순하고 소박한 곡들이 많아 나중에는 동요로 분류된 가곡들도 적지 않다. 지은이의 감정 표현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내용적으로는 낭만적이고 정서적으로 서정적이다. 대부분 정형시의 가사에 동일한 선율이 반복하는 유절 가곡이며, 선율과 리듬 면에서 민요적인 요소를 취하고 있고 반주가 선율에 종속되어 있다. 홍난파 – 봉숭아(봉선화), 봄처녀, 사랑, 옛동산, 성불사, 장안사, 금강에 살으리랏다현제명 – 니나, 가을, 고향 생각, 오라, 나물 캐는 처녀, 조선의 노래안기영 – 그리운 강남, 마의 태자박태준 – 동무생각조두남 - 옛이야기 1930년대는 한국 가곡의 어법.. 2019. 3. 11.
창작동요의 시작 동요란 어린이들의 생활 감정이나 심리 상태 등을 표현한 노래로 외국의 경우는 민요의 범주에 속하지만 우리나라는 동요는 양악에 속한다. 전래동요와 창작동요가 있는데 창작동요의 역사는 1920년대부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민간이 주도한 자생적 민족 문화 운동으로 볼 수 있다. 방정환(1899 ~ 1931)을 중심으로 한 색동회가 처음 시작했다. 색동회의 윤극영(1903 ~ 1988)은 반달을 발표해 동요로서는 최초의 국민 애창곡이 되었다. 때문에 반달 이전에 창작 동요가 있긴 하지만 반달을 한국 최초의 창작 동요로, 이 곡이 발표된 1924년을 창작동요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이 외에도 정인섭(1905 ~1983) 중심의 녹양회, 마해송(1905 ~1966) 중심의 두루미회, 유기홍 중심의 녹성동요회, 경성.. 2019. 3. 3.
봉숭아(봉선화) – 김천애 / 1942 봉숭아(봉선화)는 소프라노 김천애(1919~1995)가 1942년 발표한 가곡이다. 김천애의 발표 후에 라디오에 자주 나옴으로써 아주 큰 사랑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받았고 후에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다. 작곡가 홍난파(홍영후, 1898~1941)의 일본 유학 첫 번째 작품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애창된 가곡으로 인정받고 있다. 2000년 월간조선이 작곡가와 성악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최고의 가곡 설문조사에서 3위를 차지했다. 홍난파는 1920년 4월 이란 단편 소설집 첫 머리에 애수란 제목으로 이 곡의 기악곡 멜로디를 실었다. 그 책을 본 김형준(1884~)이 1926년 가사를 붙였고 홍난파는 같은 해 에 봉숭아를 수록했다. 홍난파와 김형준의 관계에 대해 김천애는 “김형준이 살던 집 울 안에 봉숭아가 가득.. 2018. 1. 27.
창가(唱歌) 서양음악적인 의미에서 창작음악의 역사는 1905년 김인식이 만든 학도가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학도가는 창작음악 1호라는 역사적인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이를 음악적인 장르상으로는 창가(唱歌)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직업적인 가수 등)이 부르는 걸 듣는 감상용이 아니라 직접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다. 이 말은 일본에서 유래했다. 일본에서 창가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용 노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당시의 서양식 노래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김인식에 이어 이상준이 창가를 작곡했다. 이상준은 , 등 여러 편의 창가집을 발간해 창가를 정착시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어 홍난파는 1916년 야구전을, 정사인은 추색을, 백우용은 조선유람별곡 등을 발표했다. 창작작품이 아닌 경우는 189.. 2014.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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