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s/19952015. 2. 2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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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스(Deux)의 해체는 전략적인 것이었다. 이현도는 2013년 MBC <라디오스타>에 나와 저는 프로듀서로서, 성재는 엔터테이너로써 독립하는 게 훨씬 더 낫다는 생각에 팀을 해체함으로써 서로가 더 전문적인 길을 함께 가기 위한 것이었어요. 저는 프로듀서로서의 브랜드를 갖고 싶었죠. 작전상 해체였어요라고 말했고 M.net <봄여름가을겨울의 숲>에서는 "아이돌 생활의 염증과 한계를 느꼈고 당시 소속사를 나와 나의 색깔을 고집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또한 이현도의 자서전 <24살의 사자후>란 책에서 나는 내 음악을 하고 싶은데 기획사 측에서 음반 판매와 직결 시켜 새로운 시도보다는 안정적으로 판이 팔릴 수 있는, 소위 '대중적인 음악'을 요구하는 것이나 소위 일류 댄스가수이면서도 변변한 연습실 하나 없는 것 등이 우리에게 제약 이었어요... 더 이상 서커스단의 곰돌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서커스단의 곰돌이가 되지 않으려면 서커스단을 탈출하는 것 이외의 방법은 없었어요라고 적고 있고 해체당시 인터뷰에서도 소속사와의 갈등이 일기 시작하면서부터 허리부상이 심화되고 활동에 대한 심한 회의가 일기 시작했어요라고 말하고 있어 당시 소속사의 열악한 대우 역시 해체의 큰 몫을 했음을 느끼게 한다.

 

해체 기자회견에서 김성재 해체 후의 정확한 진로를 생각해 놓은 것은 없어요. 대충의 계획만 잡아 놓은 것인데 패션공부를 위해 유학길에 오르느냐, 아니면 국내에 남아 지속적인 연예인 활동을 하느냐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있어요. 일단은 현도랑 좀 쉬면서 쉬엄쉬엄 생각하기로 했어요라고 말해 듀스의 컴백에 대한 기대를 열어 놓고 있었다. 해체 콘서트가 7 15-17일에 있은 지 약 4개월 후 그 기대는 듀스 아닌 듀스의 컴백으로 이어졌다. 해체 이후의 이야기를 <24살의 사자후>에서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팬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뭔가 슬프고 섭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찾은 해방감에 취해 성재와 나는 가슴이 설렜다. 미국에 도착한 우리는 같이 살집도 마련하고 가구도 함께 쇼핑했다. 다시 예전의 친구사이로 돌아왔다. 옛날 얘기도 하고 서로의 사사로운 얘기들도 한껏 나눴다. 한두 달을 그렇게 여유롭게 지낼 때쯤 성재가 솔로 앨범 내기를 원했다. 그리고 곡을 써달라고 했다. 그때가 9월이었는데 예당 측에서도 11월경에는 귀국해달라고 요구했다. 남은 기간은 불과 두세 달, 사실 빡빡한 일정 이었지만 듀스 4집을 위해 준비해둔 곡도 몇 곡 있고 해서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다시 밤을 새며 강행군을 시작했다. 듀스 시절로 되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때와는 달랐다. 마음속에 응어리처럼 맺혔던 그 어떤 것이 없었다. 나와 성재가 생각하고 결정하면 그대로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작업을 하면서도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나는 성재를 위해 좀 더 팝 적이고 국내가요 같은 발라드색채를 강조해 성재만의 분위기에 맞는 곡을 열심히 만들었고 마침내 성재의 첫 앨범 작업이 모두 끝났다.“ 그 첫 주자는 말하자면이었고 첫 방송은 SBS였다.

 

 

결전의 시간이 왔다. 이제 혼자 무대에 서는 것이다. 발로 뛰어 만들어낸 이스트 코스트와 웨스트 코스트를 딴 백 댄싱팀인 웨스트(W.E.ST)가 있고 음악은 친구 이현도 2개월간 쉬지 않고 만들어냈다. 첫 무대는 SBS <인기가요>. 듀스 시절 비주얼한 측면을 담당했던 그는 롤러블레이드 하키 복장을 위주로 코디를 짰다. 앨범이 잘되면 다음 해에 댄싱팀과 대형 콘서트를 가질 것이다. 


1995 11 19 솔로로 다시 돌아온 김성재는 완성도 높은 비디오 클립과 그의 선한 웃음을 팬들에게 보여줄 열의로 가득했다. 그리고 솔로 데뷔 무대는 팬들의 반응으로 뜨거웠고 신들린 듯한 무대는 자기만족을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너무나 잘된 데뷔 무대에 흡족해하며 팀원 모두가 잠들 때까지 수상기 앞에 앉아 100회 이상의 모니터를 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인생에 마지막 무대였다. 그는 아침까지 일어나지 않았으며 결국 팬들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은 김성재의 애인 김모씨가 졸레틴이란 동물 마취제의 구입경위를 확보하고 살인 혐의로 구속했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고 사인은 의문사로 남아 이제는 희미한 기억의 저편 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노래를 들어줘는 죽음을 예견한 제목으로 화제가 됐으며 누구의 사후에도 그렇듯 앨범은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고 김성재의 죽음을 애도하는 라디오는 연일 다시 들을 수 없는 그의 목소리를 지상에 전파했다. 그리고 공개된 수준높은 뮤직비디오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말하자면의 뮤직비디오에는 지누션 지누 김성재의 연적으로, 디바 지니가 백댄서로 나오고 진세라가 상대역으로 출연했다. 2003 UN 최정원, 2013 KBS2 <불후의 명곡 - 추모가수 특집>에서 빅스가 리메이크했다.

 

그의 죽음으로 그의 유작은 음악외적인 것에 집중되어 보도되었지만 미국에서의 달콤한 휴식처럼, 앨범은 듀스 3집보다 훨씬 부드럽고 자연스런 흐름을 가지고 있다. 전형적인 이현도표 그루브가 살아있는 댄스 넘버인 말하자면, 더 이상은, 도전, 염세주의자가 군데군데 포진해 귀를 휘감으며 듀스의 아우라를 여전히 양산하고 있고 거부할 수 없는 트리샤의 보컬이 인상적인 Let's Dance 이현도의 낭중지추를 증명한다. 물론 인터뷰에서 김성재 말하자면의 소심한 남자를 그린 가사가 자기와 다르다고 말했듯이 듀스의 남성적인 음악을 좋아했던 팬들은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절대로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Hip Hop 정신의 포스는 우리의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게 한다. 특히 외우기보다는 깨우쳐야 하며 힘이 들어서 배겨내지 못하면 그것은 길이 아니다, 법칙 따위는 몰라도, 한 마디 말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꾸미지 말고 느낌하나로 뛰어들라는 도그마적인 외침은 앨범을 관통하고 있는 듀스만의 도전의식을 느끼게 한다.

 

크레딧에 올라있는 신해철의 이름이 더욱 가슴을 아리게 한다.

 

20141120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2014/11/19 - [1990's/1996] - 친구에게 - 이현도 / 1996



Posted by 현지운 Rainy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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