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2015.11.21 17:00

 

 

개인적으로 송창식의 외적 모습은 TV에 나와 가나다라를 부르던 이미지가 제일 강하다. 마이크 잡느라 한 팔만 옆으로 뻗었던 것 같기도 하고 두 팔을 다 옆으로 뻗었던 적도 있던 것 같아 자세히 기억할 순 없지만 당시 이 노래를 부를 때의 제스처는 상당히 파격적으로 다가왔었다. 국악에 대한 조예가 전혀 없었어도 꽹과리로 시작하는 인상적인 인트로와 자유스러웠던 분방함에 저절로 흥이 났고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 덕분에 가사의 뜻을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어도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으로 이어지는 조선왕조의 계보를 외울 수 있었다. 기존 가수들의 무대와 너무 달랐기에 불쾌하게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래서 당시 대통령이 싫어해 TV에 더 이상 나올 수 없었다는 루머도 돌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그때까지 TV를 통해 본 어느 몸짓보다도 강력했기에 대중음악 퍼포먼스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송창식의 노래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시원함이다. 이 시원함은 트로트, 국악과 어우러지면서 시작된다. 그 시작은 1974년 군 제대 후 발표한 피리 부는 사나이왜 불러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출발한다. 이전 트윈 폴리오 해체 후 발표한 솔로 곡들에서는 발라드가수로서의 입지가 보다 더 강하다. 가령 속삭이는 듯한 한 걸음만이나 밤눈 같은 곡은 다정다감함과 절제가 느껴진다. 이렇게 소프트하면서도 포크적인 청아한 호소력은 철 지난 바닷가나그네와 같은 곡을 외면할 수 없게 하는 힘이 있다. 이 곡들과 더불어 군대 가기 전 발표한 곡들 중에서 새는김민기가 작사로 참여한 내 나라 내 겨레에도 손을 들어주겠다. 후자는 역대 애국이란 타이틀을 걸고 나온 노래나 정수라가 부른 ! 대한민국 류의 곡들 가운데에서 세계 청소년 축구 4강 신화와 함께 했던 이기자 대한건아신중현이 맘먹고 만든 아름다운 강산과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군대에서 송창식은 새로운 계기를 만난다. 남의 노래를 들어볼 기회가 많아진 것이다. 3대 독자였음에도 군대에 불려간 그는 AFKN에서 KBS <전국노래자랑>처럼 일반인들이 나와 부르는 아마추어 경연대회 같은 것을 비롯해 국악 경연대회 같은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음정과 박자가 잘 맞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몇 달간(어느 인터뷰에서는 일주일을, 어느 인터뷰에서는 석 달을 울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학대하며 심각한 고민에 빠진 그는 남을 쫓는 것이 아니라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국악과 트로트를 이론부터 파기 시작했다. 송창식의 음악 역사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밀려오는 트로트의 가요사적 수용은 대마초사건과는 별개로 시작된 일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그 작업의 첫 번째 소산이다. 이 곡과 왜 불러의 빅 히트는 197512월 대마초사건과 더불어 포크와 록의 시대를 마감하는 사건으로 기억되어도 좋을 듯싶다. 물론 대마초사건이 없었다면 포크와 록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진 않았을 테지만 대마초사건이 아니었어도 결국은 왜 불러조용필돌아와요 부산항에, 최헌오동잎처럼 트로트 색채를 더한 곡들로 대세가 넘어갔을 것으로 본다. 사실 포크 음악의 신선도도 이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는 언제나 웃는 멋쟁이소절 바로 다음 트로트 음계를 느낄 수 있다면 왜 불러에서는 아니 안 돼지 돌아보면 안 돼지”에서, 토함산에서는 중간 간주에서, 한번쯤, 참새의 하루 등에서는 트로트와 국악을 접목시키려는 노력이 느껴질 것이다. 이 중 왜 불러는 그렇게 좋아하는 곡은 아니었지만, 송창식을 어릴 때 버리고 떠났던 어머니가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와 그를 불렀을 때 끝까지 문을 열어 주지 않고 돌려보냈던 일화를 바탕으로 쓴 곡임을 알고 애착이 가기 시작했다.

 

당신은 같이 완전 트로트 곡을 만들기도 했지만 송창식유현상의 경우처럼 트로트 가수로 완전히 변신했다고 보긴 힘들것 같다. 잘 들어보면 트로트를 약간의 곡에서만 차용했을 뿐 기존의 포크를 비롯해 국악과 록, 가곡스타일의 전개와 창법 등으로 다양한 장르를 그때 그때마다 포괄적으로 융합해 완전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랑이야로 시작하는 1978년 음반이 그렇다. 이 음반은 따로 리뷰를 해야 할 정도로 곡 하나를 꼽는 것이 힘들지만 그래도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을 녹여내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토함산을 제일 먼저 꼽지 않을 수 없다. 간드러지게 튕겨주는 바이브레이션으로 중중모리처럼 카타르시스로 몰아가기 위해 작은 능선을 넘다가 처음 들을 때는 마치 고함처럼 들리는 보컬이 곧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숭고미를 느끼게 한다. 그러다 템포가 빨라지면서 시원하게 쭉 뻗어 스트레이트하게 올라가 찬연한 클라이막스를 선사한다. “아침 그 빛을 기다려란 가사처럼 이 노래는 일출을 보기 위해 내내 가파른 산을 오르는 기분으로, 한 치도 긴장하지 않고선 들을 수가 없다.

 

이 앨범에서 어린 시절의 감수성을 강타한 곡은 토함산뿐만 아니라 내 가슴을 온통 채워버린나의 기타 이야기란 곡도 있다. 이 곡은 개인적으로 아주 다양한 기억이 단편적으로 추억되는 노래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송창식의 독특한 싱커페이션을 맞추기가 아주 어려웠던 기억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기타로 치면서 부를 때마다 꼭 한 두 번씩 틀렸고 그것도 아주 오래갔다. 언젠가 극복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이 곡이 선사한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에 아주 손쉽게 감정 이입되었고 황순원의 <소나기>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별>처럼 이루어지지 않음에 대한 비애미가 주는 강렬함에 완전히 슬픔으로 용해되어 버리곤 했다.

 

 

1980년대는 가나다라와 시작한다. 우리말을 잘 모르는 재일동포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 곡은 술 취한 아저씨가 집에 오면서 자기 멋대로 가사를 지어 부르는 고성방가 수준의 자유로운 강약이 정말 재밌는 곡이다. 아마 이 곡은 리메이크가 불가능한 곡이 아닐까 싶다. 어찌 이 곡뿐이랴. 담배 가게 아가씨도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송창식 특유의 해학과 소박함은 아무도 흉내조차 내지 못했다. 아무리 최신 악기로 편곡하고 최첨단의 마스터링을 통해 리메이크 한다고 해도 그의 발성에서 나오는 여유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담배 가게 아가씨아자자자자다음에 나오는 으 하늘이 노랗다으 그 아가씨 웃었어에서 빵 터지며 동생과 박장대소 했던 순간은 아직도 오직 송창식 버전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마지막으로 송창식이 다른 가수에게 준 곡들 중에서 정미조가 부른 불꽃이란 곡을 추천하고 싶다. 이 곡은 1975년 일본 동경에서 열린 세계가요제에 참가했다가 상을 받지 못하고 금지곡으로 묶여버렸던 작품이다. 금지가 풀린 후 길거리 리어카에서 파는 <금지곡 모음집> 같은 컴필레이션 테이프로 들었고 가사에서 느껴지는 가슴 뛰는 설렘과 그 환희에 매료되었다. 지금 들어도 희망과 긍정적인 기운을 여전히 느낀다.

 

의성어의 사용과 그로 인한 신명, 현실에 대한 소박함과 서정성이 가득한 송창식의 노래는 1986년을 마지막으로 멈췄다. 공연에서 정훈희와 신곡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살짝 내보이긴 했지만 그간 송창식의 인터뷰들을 하나 둘씩 떠올려보면 이제는 더 이상 곡을 발표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송창식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고 말했던 평론가 김형찬의 안타까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새 앨범은 고사하고 적어도 과거의 앨범들만이라도 리마스터링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기다릴 여력이 있어서인지 아직은 그것만으로도 참 행복할 것 같다.

 

20130306 다음뮤직 현지운 trajanus1126@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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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현지운 Rainy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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