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단연,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뮤지션의 한 사람은 신해철이다. 그 가치는 캠퍼스 밴드 무한궤도의 리더로서, 틴 아이돌의 스타로서, 그리고 다시 1990년대 최고의 록그룹 넥스트(N.EX.T.)의 수장으로서, 크롬(Crom)이란 이름의 테크노와 국악을 실험한 장인으로서, 다시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이라는 그룹의 이름으로 만들어낸 다양한 음악적 변동지수가 말해준다. 이렇게 촉수가 닿는 대로 뻗어 방대한 계보를 만들어 낸 그의 이력은 주류와 비주류를 좌충우돌하며 장르를 핍진적으로 개척해 낸 공로가 있다.
무한궤도 멤버들은 음악이라는 불안한 미래를 자신의 탄탄한 미래와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 시기를 신해철은 대마초를 찾을 만큼 힘들게 겪었고 이 때의 쓰라린 상처는 그의 초창기 음악인 나에게 쓰는 편지나 자신이 프로듀서를 맡은 전람회와 같이 부른 세상의 문 앞에서처럼 종종 미래에 대한 신뢰로 표출되거나 숨어 있는 불안을 대변한다. 이 불안은 그가 첫 번째 솔로앨범에서 터트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는 물론이고 두 번째 앨범의 내 마음 깊은 곳, 길 위에서 등에서와 같은 사랑의 발라드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불안감은 신해철이 발표한 2장의 솔로 앨범이 거둔 막대한 성공으로 어느 정도 날아갔다. 1집의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안녕 등은 이런 성공과 같이 갔고 2집의 재즈카페,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나에게 쓰는 편지 등은 라디오를 주름잡았다.
서태지의 성공이 록을 위한 것 이였다면 솔로로 거둔 신해철의 성공은 그가 그토록 원하던 밴드로 회귀시켰다. 실로 그룹 넥스트의 등장은 아무 것도 없이 모래만 나부끼던 사막에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넥스트는 약간의 쇼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TV 출연을 봉쇄하고 앨범 판매량과 라이브만으로 높은 판매고를 올리며 척박한 국내 시장을 횡단했다.
록은 물론이고 스래쉬 메탈과 프로그레시브, 국악, 클래식과의 접목 등은 이들이 해체할 때까지 대중들의 많은 지지를 이끌어 내었으며 ’90년대 최고의 록 밴드‘라는 수식어가 말해주듯 가요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신해철은 그토록 잘나가던 넥스트 시절, 그룹의 테두리에만 있지는 않았다. 1996년 윤상과 프로젝트 그룹인 노댄스를 결성하고 뉴웨이브 계열의 음악 스트일로 테크노에 대한 실험을 했으며 김홍준 감독의 영화 <정글스토리>의 음악을 맡아 솔로 작업을 병행 했다.
넥스트 해체 후에는 영국으로 날아가 일상으로의 초대가 담긴 <Crom’s Techno Works>라는 두 장짜리 앨범을 공수하고 이어 넥스트의 4집에서 엔지니어링을 맡았던 크리스 쌍드(Chris Tsangarides)와 같이 모노크롬(Monocrome)이라는 그룹을 결성한다.
이 당시의 음악은 전형적인 빅비트의 사운드에다 국악을 차용해 독특한 하드코어 테크노의 모습을 띠고 있다. 하지만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그 전의 앨범들이 누렸던 판매량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앨범 속지에 “단 하나의 일, 음악을 할 것이다”라는 선언을 함으로서 그간 불안한 미래로 투사되었던 음악이라는 불투명한 현실을 벗어난 느낌을 주었다.
모노크롬 발표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팬 서비스 차원의 더블 시디 < Home Made Cookies & 99 Crom Lives>라는 앨범을 발표한다. 이 앨범은 많은 주목을 끌진 못했지만 민물장어의 꿈 같이 그의 발라드 속에 묻혀있는 성찰의 이미지를 고집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수작이 담겨 있다.
신해철은 위에서 언급한 많은 활동 외에도 영화 음악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1991년에는 강정수 감독의 <하얀 비요일>이라는 영화에 참여했으며 그 다음해에는 유하 감독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에서 음악 작업을 통해 엄정화의 눈동자를 히트시켰다. 넥스트 시절에는 <정글 스토리>에서 아주 가끔은으로 인기를 모았으며 1999년에는 송능한 감독의 영화 <세기말>의 음악으로 비트겐슈타인 멤버들을 미리 선보인바 있다. 이외에도 2002년 김종혁 감독의 SBS 드라마 <천국보다 낯선>, 2007년 박정우 감독의 <쏜다> 음악을 맡았다.
비트겐슈타인을 결성해 Over Action Man으로 활동을 시작한 신해철은 유령 방송 <고스트 스테이션>을 이끌어 열혈 청취자들의 밤잠을 설치게 했으며 사회의 반항아로서 소외된 계층을 위한 집회에 꾸준히 참여하며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음반에서 프로듀서를 맡았다.
화려하고 폭넓은 경력에 알맞게 다시 그룹 넥스트의 재건을 선언한 그는 2002년 9월 그간의 음악들을 총결산하는 베스트 음반을 발표했고 넥스트의 <The Return Of N.Ex.T Part III>, <Regame?>, <666> 등을 차례로 발표하고 재즈를 표방한 솔로 앨범 <The Songs For The One>과 2014년 <Reboot Myself Part. 1>을 발표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음악과 시대를 앞서간 가사로 여전히 우리의 기대를 져 버리지 않는 뮤지션다움과 카리스마로 팬들의 촉각을 쉬지 않게 하는 그의 음악은 아무리 기다려도 지루하지 않다. 그것이 언제나 변함없이 ’그만의 음악’을 고대하게 하는 힘이다.
20010201 / 20141101 / 이즘 /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이 글은 2001년 웹진 이즘에 썼던 바이오그래피를 수정한 것이다. 감정의 오버 과잉과 매끄럽지 못한 전개들이 있어 확 고쳐버리고 싶지만 그때의 느낌이나 분위기가 담겨 있어 조금이라도 말을 바꾸면 어떤 결정체가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아 섣불리 손대기 힘들었다. 그래도 조금은 손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른 블로그에 원본을 보관해 두었다. 끝을 저렇게 둔 것은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나 “죽어도 못 보내”의 마음이랄까.
2014/10/30 - [1990's/1990] -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 신해철 / 1990
2014/10/28 - [1990's/1991] - 내 마음 깊은 곳에 너 - 신해철 / 1991
2014/10/24 - [1990's/1997] - Here, I Stand For You - N.EX.T /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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