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s/20002012.07.08 20:17

아마추어리즘은 때때로 프로보다도 더 흥분되고 감격적인 순간을 제공한다. 감동은 숙달된 조교가 가질 수 없는 순수함과 조금은 어긋나 보이는 부정교합의 반전에서도 오기 때문이다. 프로야구처럼 메이저 기획사의 음반들은 아마추어에게서 스포트라이트를 빼앗아 버리지만 아마추어가 주는 풋풋함과 돌출적인 창의력이야말로 이런 토대를 가능하게 하는 자양분이다. 그러니 프로가 되어서도 그 정신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 시장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이다.

1989별이 진다네가 포함된 1<자연으로 돌아가자>를 발표한 이후 우리 대중 음악계를 동물원과 함께 아마추어의 싱그러움으로 이끌어 온 여행스케치는 초창기의 맑고 산뜻한 보컬 속에 녹아있는 자연스러움과 사춘기적 감수성을 향유한 시적인 가사로 적지 않은 사랑을 받아왔다 

역시 1집부터 거의 모든 곡을 도맡아 온 조병석의 작품으로 앨범을 이룬 이번 작에서 예전의 갖가지 효과음은 거의 들을 수 없지만, 진솔한 보컬과 어쿠스틱 한 편곡은 예전과 변함이 없다. 하지만 I can wait 4 U널 위한 자리 같은 빠른 템포의 곡으로 알 수 있듯이 조금씩 기존의 노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보인다. 이는 지지부진한 인기에 대한 고뇌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예쁜 비디오 클립이 인상적인 왠지 느낌이 좋아4집 <다 큰 애들 이야기> 이후의 퇴색하는 인지도를 씻으려는 소망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두 번째 이별에서 이선아가 들려주는 애절한 직선타의 창법이나 Jr의 캠퍼스적인 낭만이 더 청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그래서 인상적인 편곡의 비밀 같은 곡처럼 이들이 잘하는 음악의 전공분야는 아직까지 소박한 캠퍼스 밴드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미련을 갖게 한다. 초창기 멤버는 조병석과 보컬 남준봉만 남았지만, 지금의 팀워크는 여전히 단순한 기타 화음만으로도 청중에게 각인될 만큼 단단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울타리는 어떻게 벗어나는 것이 좋을까 

공연으로 팬들에게 공동체가 되는 즐거움을 주며, 불현듯 일상의 무료함을 떨치고 애틋한 과거로의 여행을 주도하는 이들에게 삶의 적나라한 가사와 냉소적인 현실을 담길 바라는 것은 이들의 음악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모두가 폭력적인 비디오와 천편일률적인 사회 부정의 가사로 팬들에게 어필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대세이고 상업적으로 뛰어난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말이다. 아직까지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어쩌면 이들은 산울림동물원을 잇는 아마추어리즘의 절정으로 남아있다. 물론 역사적 평가가 아무 것도 해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들에게 아마추어리즘은 지켜 나가야할 편법 혹은 시장을 틈새로 돌파할 수 있는 적절한 정공법은 아닐까? 

 

200101월호 / 20120708 오이뮤직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오이뮤직>에 썼던 글을 심하게 고쳐 올린다. 당시의 글을 보니 나야말로 아마추어리즘의 절정이 아닌가 싶다. 여행스케치1집을 생각하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친구가 떠올라 그에 대한 애정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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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현지운 Rainy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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