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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s/1993

Debut - Björk / 1993

by Rainysunshine 2016.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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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틀고, 아주 앳되어 보이는 소녀가 두 손을 합장하고 있는 모습의 표지를 보던 나는 비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았다는(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Human Behaviour가 울려 퍼지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아이슬란드의 얼음요정 같은 목소리가 주는 편견, 애기 엄마라는 사실을 모르고 보았던 표지의 얼굴을 통해 자연스럽게 은쟁반의 옥구슬 굴러가는 맑고 깨끗한 목소리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갖 악기와 전자 이펙트가 동원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운드와 높은 음 내기경연대회라도 하듯 시시때때로 사라포바(Maria Sharapova)의 괴성처럼 고막을 강타하는 목소리는 실로 심난한 세계로 나를 인도하고 있었다. “인간의 행동은 완전히 비논리적이야. 몹시 우울해하다 갑자기 행복해지지라는 가사는 정말 본인의 노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평단의 호의가 무색하게 그나마 끝까지 듣고 겨우 건진 곡이 Big Time SensualityCome To Me였으니 말이다.

 

펑크 밴드 각설탕(The Sugarcubes)이 점점 인지도를 얻어가자 비요크(Björk)는 펑크가 아닌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어졌다. 마침 팀원들도 <Stick Around For Joy>를 발매할 즈음에는 다들 딴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10대에 이미 써 두었던 곡들을 들고 프로듀서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The Anchor Song이나 <Post>에 수록된 It’s Oh So Quiet과 같은 재즈 스타일의 음악을 하고 싶었던 그녀의 레이더망에 걸린 사람은 배드 테이스트 레이블의 아스문두르 존슨(Ásmundur Jónsson)과 원 리틀 레코드사의 프로듀서 데릭 비르켓(Derek Birkett)이였다. 하지만 데릭과 런던에서 작업을 진행하던 그녀는 당시 남친의 소개로 알게 된 넬리 후퍼(Nellee Hooper)를 만나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넬리와의 작업에 더 마음이 쏠린 것이다. 비요크는 결국 지금까지 작업해왔던 모든 이들을 해고하고 넬리와 그가 소개한 사람들하고만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어찌된 일인지 둘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알았던 사람처럼 거의 모든 면에서 스타일이 일치했다. 결과적으로 넬리비요크와 공동으로 진행한 Like Someone In Love비요크 혼자 프로듀싱 한 The Anchor Song을 제외한 나머지 곡에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다.

 

그렇게 몇 개월에 걸쳐 뚝딱거리며 만든 <Debut>에서는 5곡의 싱글이 발표된다. 첫 주자는 앨범 발표에 앞서 레이 브라운 오케스트라(Ray Brown Orchestra)Go Down Dyin‘을 샘플링한 퍼커션으로 시작하는 Human Behavior. 평론가들이 앨범의 백미로 추켜세운 이 곡은 미국 모던 록 차트와 댄스 차트에 각각 2위에 랭크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이터널 선샤인>이란 영화로 유명한 감독 미셸 곤드리(Michel Gondry)가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당시 롤링 스이 선정한 역사상 최고의 뮤직 비디오 100(96)에 선정되었다. 그 다음은 그는 소년이지만 미의 여신이라고(당시 애인의 미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노래한 곡) 노래하는 Venus As A Boy를 싱글로 내놓았다. 힘을 뺀 일렉트릭 사운드로 포장한 이 음악의 후반부에서 비요크는 초현실세계와 교신하는 듯한 고음으로 아방가르드 스타일을 과시한다. 이 뮤직비디오에서 비요크는 아주 독특하고 기괴한 헤어스타일과 도마뱀 친화적인 모습으로 당시의 MTV 매니아들에게 기묘함을 주었다. 지금 보면 아무렇지도 않지만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싸이, 자두, 파충류소녀 디에나엽기라는 타이틀로 인기를 끌었던 2000년대 초반보다 10여 년 앞선 것이다.

 

 

세 번째는 영화 <Young Americans>에 삽입되었던 Play Dead로 고통을 잊기 위해 시체놀이를 한다는 내용이다. 지금이야 디럭스판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신곡을 추가해 앨범을 다시 찍는 것이 관행처럼 되었지만 당시에는 이 곡이 첫 판에 실리지 않고 재발매 음반에 실려 팬들의 원성을 샀다. 네 번째로는 Big Time Sensuality. 이 곡은 비요크넬리를 만나고 나서 무언가 굉장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으로 쓴 곡이다. “뭔가 중요한 일이 생기리라는 걸 난 느낄 수 있어, 다가오고 있어라고 말하는 가사는 제목에서 풍기는 성적인 은유와 함께 새로운 만남의 기대로 가득 찬 클러버들의 심장에 꽂히며 미국 클럽가를 강타했고 댄스차트 1위에 올라섰다. 그 덕분에 비요크 노래 중에서는 처음으로 미국 싱글 차트 100위권(88)에 모습을 드러냈다(비요크의 미국 싱글 차트 최대 히트곡은 2007<Volta>에 수록된 Earth Intruders, 84위까지 올랐다). 이 곡은 클럽에서의 인기 때문인지 다양한 리믹스 버전이 선보였는데 뮤직비디오는 플루크(Fluke) 버전으로 만들어졌다(여기서도 Venus As A Boy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등장하며 난해한 몸동작으로 된 춤을 보여준다). 이 앨범의 마지막 싱글은 Violently Happy란 곡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혹은 어떤 대상)에게 감정기복이 심한 자신을 달래달라는 내용이며 역시 댄스 차트에서 인기를 얻었다.

 

다섯 곡의 싱글 외에도 군중 속의 고독을 묘사한 Crying, 한 지겨운 파티에 참석했다가 느낀 점을 표현한 There's More To Life Than This, Big Time Sensuality와 비슷한 감정을 노래하는 One Day, 자신은 아이슬란드에 살고 남친은 영국에 살 때의 감정을 노래한 Aeroplane, Violently Happy와 반대의 상황으로 내가 보살펴 줄게 나에게 오라Come To Me같은 곡들이 다양한 악기와 전자음, 그리고 변화무쌍한 비요크의 목소리로 청각을 인정사정없이 자극한다. 당시의 메인스트림과 조금 다른 길을 가는 이 앨범에게 NME는 올해의 앨범이라는 찬사로 화답했다.

 

이후에도 비요크<Post><Homogenic>을 비롯해 내놓는 앨범마다 대부분 호평을 받는다. 하지만, 첫인상이 강하게 남아서인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다른 앨범보다는 <Debut>에 먼저 이끌린다. 특히 Big Time Sensuality를 들을 때면 커다란 클럽의 한 가운데에서 있는 상상을 하곤 한다. 가창력 위주의 기승전결이 뚜렷한 전형적인 곡 패턴에 익숙한 분들은 거부감이 일어 한 번 듣고 방치할 수도 있겠지만, 이따금씩 불현 듯 떠오르는 비요크의 음악은 들을수록 매혹적이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100만장 이상 팔렸다는 사실도 납득이 된다. 특히 요즘처럼 획일화된 음악들이 전파를 장악한 시점에 뭔가 다른 음악을 찾는 분들에게 이 앨범을 적극 추천한다. 매너리즘에 빠진 귀를 신선한 감각으로 채워 줄 것이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

 

20120306 다음뮤직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1990's/1996] - 비요크(Björk) 기자를 공격하다 

[2000's/2000] - New World - Björk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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