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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s

새야 새야 파랑새야 - 구전민요 / 1895

by Rainysunshine 2016.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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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야 새야 파랑새야는 1894년 발생한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인 전봉준(18550110 ~ 18950424) 장군을 기리는 3음계의 대한민국 구전민요다. 전봉준 장군뿐만 아니라 전사한 남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아내들과 유족들이 부르기도 했다. KBS2 <불후의 명곡 -설특집>에서 선우가 불렀고 이외에도 신영옥, 임형주, 조수미, 말로 등 셀 수 없이 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파랑새란 제목으로도 불린다.  

전봉준은 어린 시절 키가 녹두콩만큼 작아서 '녹두'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동학군의 대장이 됐을 때도 이 별명이 그대로 전해져 '녹두장군'으로 불렸다. 주로 '녹두밭'은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을, '파랑새'는 일본군을, '청포 장수'는 동학군이 이기기를 소망하는 당시 민중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크지만 전봉준의 전(全)자를 파자하여 팔(八)왕(王) 이라고 불리기도 해, 이것이 변형되어 파랑새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1절을 제외하고는 지방마다 가사가 조금씩 다르고 음도 조금씩 다르다.  

'파랑새'가 일본군을 지칭한다는 것을 김지평의 저서 <한국 가요 정신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는 원래 '쇠야 쇠야 팔한(八寒)쇠야'였다. '쇠'는 낮은 신분을 나타내는 남도 말로 변강쇠, 마당쇠, 쇤네 등으로 쓰이고 있고 '팔한'은 지옥명칭의 하나이니 '팔한쇠'는 '지옥쇠'가 된다. 즉 '쇠야 쇠야 지옥쇠야'하고 놀리는 노래다. 따라서 파랑새는 혁명군의 적이었던 진압군인 일본군을 지칭한다.... 이 노래가 일제에 의해 금지되었다는 것은 창가독립운동사건 주모자로 2년 6월의 옥고를 치룬 신영순(한영서원 교사)의 증언으로 처음 밝혀졌다."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동학(현 천도교의 전신) 세력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대규모 민란으로 조선 정부가 청나라 조정에 반란군의 진압을 요청하면서 청나라 군대와 일본군이 국내에 들어와 진압 후에도 나가지 않으면서 청일전쟁을 예고하게 되었다. 이듬해 관군과 일본군에 의해 진압되기는 했으나 우리나라 역사에서 아래로부터의 근대적 개혁, 계급투쟁의 시초, 반외세를 내건 최초의 무장 투쟁으로 그 정신은 이후 항일 의병 운동으로 이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부군수 조병갑이 만석보라는 저수지를 쌓은 후 이에 대한 사용료를 양민들에게 부과하고 조병갑 자신의 아버지가 죽자 공덕비를 세우겠다며 양민들로부터 엄청난 조세를 걷어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이에 전창혁이 탄원서를 내며 항의하자 곤장으로 징벌해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갔고 전창혁의 아들인 전봉준이 봉기를 계획하면서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되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2015년 12월 31일에 최종공포 되었다. 
 

20161128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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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다른 가사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아랫녘 새는 아래로 가고
윗녘 새는 위로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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