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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s/1976

처녀뱃사공 – 금과은 / 1976

by Rainysunshine 2019.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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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뱃사공 오승근, 임용재로 구성된 남성 듀오 금과은(Two Ace)1976년 이전의 곡들을 커버해 발표한 <옛 노래 모음>에 수록한 곡으로 당시 MBC 10대 가수상에 오를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가수 윤항기 윤복희 남매의 아버지인 윤부길이 작사하고 빈대떡 신사로 유명한 한복남이 작곡한 곡으로 1959년 민요가수 황정자가 처음 발표했다. 후렴구의 에헤야 데헤야얄리얄리 얄랑셩의 전통을 잇는 느낌이여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민요가수가 불렀다는 게 적절해 보인다. 2016년 KBS2 <불후의 명곡 - 오승근, 조항조>에서 디셈버가 커버했다. 

 

매일경제, 오마이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보도한 이 곡의 작사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유랑극단 단장이던 윤부길은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내려와 극단을 운영한 뒤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 상경하던 가운데 있던 일로, 윤부길19539월 함안 가야에서 공연을 마치고 대산으로 가던 길에 악양루 인근 나루터에서 한 소녀가 운전하는 배를 탔다. 그리고 나루터 근처 그 소녀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윤부길은 소녀에게 배를 젓는 이유를 물었고 당시 23세였던 박말순18세의 박정숙 자매는 오빠가 전쟁으로 군대에 간 뒤에 부모님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 자신들이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에 노를 젓게 되었다고 말하고 오빠와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후에 오빠는 전쟁에서 전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010월, 경남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악양루 인근에 처녀뱃사공노래비가 세워졌다. 그러자 이 노래에 대한 증언자들이 나타났고 뱃사공의 실제 주인공이 노래비에 기록된 사람과 다르다는 주장, 나루터가 악양이 아니라 의령군 정곡면 적곡리 나루터라는 주장, 연도와 계절도 맞지 않는다는 주장 등이 제기되었다. 대체로 연도는 1951~4년으로, 계절은 가을과 늦겨울 2월경으로 갈린다. 또한 가사에 나오는 낙동강은 악양루에서 12km 더 하류로 내려가야 하는 곳이라서 노래의 배경이 성주나루터나 낙동강 하구언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당시 함안천을 낙동강으로 잘못 표기한 신문 기사가 있을 정도라 윤부길이 낙동강으로 잘못 알았을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큰 애기'는 이름을 모를 때나 3인칭으로 불러야 할 때 큰 처녀를 부르는 애칭이다. “큰 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는 여자가 사공인 것에 대해 말이 많았던 당시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큰 애기 타령에서도 여자들이 일하러 가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나온다. “앙가슴은 두 가슴 사이를 말한다.

 

20190428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 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은 내가 모시고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낙동강 강바람이 앙가슴을 헤치면

고요한 처녀가슴 물결이 이네

오라비 제대하면 시집보내 마

어머님 그 말씀에 수줍어질 때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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