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은 대한민국 싱어 송 라이터 박인희가 1976년 발표한 스튜디오 앨범 <고운노래 모은 제3집>에 수록한 곡으로 시인 박인환(19260815 ~ 19560320) 작사, 이진섭 작곡, 이정선이 편곡을 맡았다. 처음 발표한 버전은 1956년의 나애심, 현인이고 이후로도 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곡이 처음 1956년 당시에 명동 엘레지(elegy, élégie, 슬픔을 노래한 시 등의 문학, 악곡)이라고 불렸고 글을 위해 자료들을 찾다보니 대중적으로 아주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박인환의 출생지인 강원도 인제군에서 2020년에 개최한 <박인환 문학축제> 기념연극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곡의 창작사에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명동에서 살며 주로 명동에 대한 이야기를 썼던 소설가 이봉구의 단편 <명동>를 비롯해, EBS의 <명동백작> 등 이 곡의 배경을 묘사한 무수한 자료들을 정리해 보면, 박인환과 이진섭은 명동싸롱에서 차를 마시다 술을 마시기 위해 당시 맞은 편에 경상도집이라 불리던, 새로 생긴 술집 은성(배우 최불암의 모친이 운영)으로 갔다. 술을 마시며 동석했던 가수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했는데 거절하자 이진섭이 박인환이 시를 쓰고 자신이 바로 곡을 붙이면 불러달라고 제안을 했다. 전날 첫사랑의 무덤에 갖다왔던 박인환은 바로 일필휘지로 시를 적고 샹송을 좋아했던 이진섭 역시 앉은자리에서 바로 그런 스타일로 곡을 만들었다. 하지만 나애심은 가창을 사양했다. 한 두 시간 후 나애심과 다른 일행이 돌아가고 난 뒤 테너 임만섭과 이봉구 등이 합석을 했다. 악보를 본 임만섭은 그 자리에서 우렁찬 성량과 미성으로 노래를 불렀고 술집의 사람들과 길 가던 행인들이 모두 멈춰서서 구경을 했다. 그리고 이 곡은 이후 명동에서 유명한 곡이 되었다는 것이다. 열훌 후 박인환은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박인환의 사망 두 달 후 나애심이 처음으로 곡을 녹음했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곡을 만든 건 아닌 것 같다. 1956년 발간한 잡지 아리랑과 주간희망, 2014년 근대서지 상반기호에 실린 염철의 '세월이 가면의 증언 자료에 대하여’ 등에 따르면 박인환, 이진섭은 어느 날 명동을 적셔줄 샹송 스타일의 곡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한 뒤 박인환이 바로 다음날 시를 써 오자 그로부터 열흘 뒤에 이진섭이 곡을 완성한 것으로 지금까지의 전설을 정정한다. 박인환의 아들 박세형씨도 월간조선과 가진 인터뷰에서 “시는 말이죠, 영감이 떠오르면 후닥닥 금방 쓰잖아요. 굳이 퇴고를 안 하죠. 마치 신이 내린 것처럼 씁니다. 그런데 작곡은 달라요. 시어에 맞춰 작곡을 해야 합니다. 아버지 시에 즉흥적으로 곡을 붙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됐나요? 세종로 집으로 아버지와 이진섭 선생이 왁자지껄하게 오셨는데, 그날 8절지 도화지에 세월이 가면이 적혀 있었어요. 근데 좀 특이했어요. 콩나물 대가리 같은 음표는 없고, 아라비아 숫자가 잔뜩 있었거든요.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음표더라고요. 예를 들어 ‘도·미·솔’ 하면 ‘1·3·5’라는 식으로…"라고 말해 이런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박인희는 2016년 컴백한 뒤 여러 인터뷰에서 이 곡의 인기에 대해 "팬들은 이 곡을 들으면서 누군가의 노래고, 누군가의 시로 기억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젊은날, 가버린 사랑, 이루지 못한 옛 기억들을 떠올리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사람들은 이 곡이 던지는 인간의 숙명적인 의미에 고개를 숙이고 옛날을 추억해요.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을 그리워하죠. 이 곡이 자신을 다시 보게 하는 기제가 돼요. 그래서 나까지 새삼 기억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유난히 사랑했던 시인이 나의 노래로 빛을 발했다는 사실도 감격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인희는 박인환과 이름이 비슷해 친인척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혹자는 이 시가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시 Le Pont Mirabeau(미라보 다리)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20210514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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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사람은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에 호숫가 가을에 공원
그 벤취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혀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 원작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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