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s/19972014.10.20 17:00

 

이 땅에 살기 위하여윤도현밴드(YB)1997년 발표한 2<윤도현 2 And Band>의 수록 곡으로 박노해 시인의 <참된 시작>에 실린 시에 윤도현이 곡을 붙인 것이다. 2집의 라인업은 보컬에 윤도현, 기타에 유병열, 엄태환, 베이스에 박태희, 드럼에 김진원이고 프로듀서는 강호정이 맡았다.

 

1997리뷰 봄호 인터뷰에서 윤도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집을 많이 읽어요. 종이연 할 때 명륜동의 시문화회관에서 근 반 년 동안 매주 시인들의 시에 노래를 붙여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시집과 가까워졌어요. 그러나 서정적인 포크를 추구하던 종이연의 성격상 거개의 시들이 서정시였고 박노해의 시는 노찾사 손방일형 집에서 잠을 얻어 자다가 처음 보았는데, <노동의 새벽>은 그 전에 봤던 시가 아니었어요. 한마디로 파격적이었는데, 그것은 시집 <참된 시작>으로 이어져 이 땅에 살기 위하여에 노래를 붙이게 되었어요. 물론 이 시를 읽으면서 바로 이 시다!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 예요. 그 계기는 작년 여름 경기도 북부를 휩쓸고 지나간 수해가 가져다주었어요. 연천 댐과 임진강 제방이 붕괴하면서 파주의 부모님 세탁소가 완전히 거덜 났어요. 전부 부실이었어요. 어느 하나만 제대로 되었어도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당연히 보상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데모가 있었지만 시작하자마자 다 잡아가서 제각각 다른 곳에 내팽개쳐놓았어요. 순박한 아저씨들이 무시무시한 소리들을 들으며 험한 꼴 당해보고는 한 결 같이 더 이상 데모 못 하겠다고 하는 것이었어요. 분노가 치밀었어요. 그러나 그 느낌을 아직 가사로 쓸 단계는 못 되었고 그 때 박노해, 그의 시들이 생각났어요. 이 땅에 산다는 것이 그렇게 처절한 것인가 하는 바로 그 감정이.”

 

2003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는 성균관대학 앞에 시 문화회관이라는 곳에서 관계자들이 모여 시에 노래를 붙이는 정례행사가 있었어요. 저도 자주 참여해서 시와 인연을 맺었어요. 박노해 시인의 시는 어느 날 노찾사 선배 집에 놀러 갔다가 처음 보게 됐지요. 이전의 예쁜 시와는 너무도 달라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제 고향 파주에 큰 수해가 났어요. 인재로 여긴 주민들이 시위를 했고 당국은 시골 사람들이라 얕봤는지 시위하는 이들을 겁주는 거예요. 수재의연금도 나오지 않았고요. 그때 정말 열 받았죠. 예전부터 격한 상황에 부닥치면 노래로 제 기분을 옮기곤 했는데 그 순간 이 땅에 살기 위하여가 떠올랐어요라고 말했다.

 

랩 성향에 대해서는 리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랩을 붙이려고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몸부림쳐도 맞는 선율이 찾아지지 않았어요. 일단 리듬의 윤곽을 컴퓨터로 잡아놓고 온갖 시도를 다 해보다가 깡그리 랩으로 하게 되었죠. 동생더러 기타를 치게 해 놓고는 무조건 소리를 질러 보았어요. 이번 앨범에서 아마도 가장 많은 연습 시간이 들어간 노래일 거예요.”

 

이 때의 인연으로 박노해 시인과 지구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함께 했고 박노해2002윤도현 결혼식의 주례를 맡았다당시 이 곡은 선동적이라는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었다공연에서 이 곡을 부를 때 확성기를 사용하기도 하고 DJ가 있는 랩 밴드와 협업하기도 한다. 15주년 기념 라이브 음반 <나는 나비>에서 확성기 버전을 들을 수 있다.

 

20141020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이 땅의 주인으로 살기 위하여 


 

 

2017/08/29 - [2000's/2001] - 하노이의 별 – 윤도현밴드(YB) / 2001



Posted by 현지운 Rainysunsh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