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은 이정석의 2집(1988)처럼 사랑에서 이별로 이어지는 흐름을 한 편의 영화처럼 배열해놓고 있다.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어보면 잔잔하게 잘 만들어진 한 편의 로맨스 영화를 본 기분이다. 그것을 이 지면을 통해 잠깐 설명해도 좋을 듯 싶다. 첫 곡 재회는 옛 연인을 다시 만나기 전 화자의 설렘을, 이루마의 피아노가 전하는 몇 해 전 삼청동 거리엔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와 우리 처음 만날 날은 제목 그대로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과 그날 내린 눈을 묘사하고 있다. 이어 멀리 떨어져 지내며 점점 희미해지는 사랑을 부여잡으려고 노력하는 8211, 그러다 이별을 예감하는 사랑한다면을 거쳐 이별에 이르는 이별택시와 끝이 연애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고, 잘해주지 말 걸 그랬어와 아침 인사에서는 이별 후에 왜 헤어졌는지를 고민하면서 아직 미련이 남은 화자의 후유증을 담고 있다. 마지막 세 트랙은 계속 혼자 지내면서 추억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화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고, 마지막 곡 그건 사랑이었지의 아웃트로에 첫 곡 재회를 살짝 입힘으로써 첫 곡이 사실은 시간상 마지막 곡임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지금도 마니아를 이끌고 있는 그의 2집은 당시에 크게 터지지 않았다. 백비트 평론가들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거보면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나 보다. 그것은 당시 일상적인 앨범이 가지는 원톱의 개념보다는 작품중심에 강조점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래도 거짓말 같은 시간이나 여전히 아름다운지와 같은 트랙을 바랐던 팬들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 이 앨범이 지닌 한편의 소설 같은 순수한 이별의 정한은 토이의 초기작이나 공일오비가 비행했던 시기, 혹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태지와 아이들 출현 이전의 화법이다. ‘10분 만에 상대를 꼬실 수 있는가’를 묻는 2000년대 패스트푸드 감성에게 이 슬로우푸드는 너무 심심했다. 물론 연인은 심심치 않게 라디오 전파를 탔으며 잘해주지 말 걸 그랬어 역시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었지만 윤종신이 MBC <라디오스타>에서 이별택시를 소개함으로써 뒤늦게 화제가 되었듯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에게만 인기가 있었고 오히려 절판된 후 입소문과 콜렉터들의 끊임없는 관심에 힘입어 재발매되는 인기를 누린다.
하나의 전체적인 작품으로서만 의미를 갖는 이 앨범이 당시 대중적 인식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CD 위주의 음원에서 MP3로 확연하게 넘어간 시점에 등장한 데에 있을 것이다. LP나 CD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그 앨범의 전체적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소화하는 세대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만 MP3에 담아 듣는 세대와의 분기점이 형성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이 MP3세대는 핸드폰의 증가와 함께 컬러링 세대를 준비하고 있었고 컬러링 세대는 후에 후크 송 열풍을 가져오게 된다.
거기에 당시 유행하던 브라운 아이즈, 휘성, 김범수 등 알앤비 보컬 스타일이, 그리고 이 앨범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SG 워너비의 1집 이후 거기에 두터운 고음을 더한 소몰이 창법이 크게 유행하면서 가창력의 판도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결과적으로 날카로운 고음역으로 소름끼치게 만드는 김연우의 목소리를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밀어붙인 유희열의 계산은 소떼들이 차트를 휩쓰는 상황에서 정반대의 전략이 되어 시장에서 뒤처지고 말았다.
20120226 다음뮤직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2015/12/30 - [1990's/1999] - 여전히 아름다운지 - 토이 Feat. 김연우 /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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