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가 88만원 세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고, 옥상달빛의 없는 게 메리트가 불투명한 미래를 사는 젊은이들을 다독거렸지만, 고가의 대학등록금을 낸 이들에게 졸업 후 찾아오는 것은 “미친 세상”일 뿐이다. 이 경쟁사회가 주는 삭막함은 여유를 빼앗고 그런 상황은 날 선 신경을 불러온다. 그러니 어쩌면 젊은 세대가 성격장애를 겪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남의 행복을 빌어주며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가사의 너그러움 따윈 개나 줘버릴 일이다.
입사 시험 백 번은 떨어졌을 법한 스타일로 우두커니 서 있는 황인경의 프로필 사진이 시사하듯 이들에게 없는 것은 불투명한 미래와 돈뿐만이 아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큰 키와 잘생긴 외모는 물론이고 요즘 어디서나 덤으로 요구하는 쿨함마저 모자라다. 스스로를 루저라고 부르는 전기뱀장어의 첫 번째 EP의 홍보물에서 “솔직히 저희가 키 크고 잘생기고 잘나갔다면 이런 노래들은 못 만들었을 거에요”라는 김예슬의 말은 이번 앨범까지도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가사만 놓고 보자면 완연한 못난이들의 합창이다. “무엇하나 멋진 게 없는” 화자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보여줄 거라곤 기껏해야 “초라한 내 모습, 불안한 내 두 눈”뿐이고 ‘최신유행’에 민감한 연인을 곱게 바라보지 못하는 “속 좁은 맘”뿐이다. “나만 빼고 변해가는 세상”이 맘에 들지 않지만 어쩌면 그게 “작은 키”만큼 “작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래를 듣고 동질감을 느낀 이라면 사회 부적응자를 노래하는 가사와 다른 멤버들의 면모에 배신감을 느낄지 모른다. 켄 로치(Ken Roach) 감독의 2002년 영화 <빵과 장미(Bread And Roses)>에서 밀입국자 마야가 노동운동가 샘의 연봉에 놀라는 것처럼, 이들의 학력은 찌질한 가사에 비하면 완전한 반전이다. 물론 가사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상의 단면을 그린 것에 불과하므로 “윤리학자가 꼭 윤리적일 필요는 없다”는 쿨한 명제와 동치 시킬 수도 있지만, 이 지나친 학벌사회에서 루저의 근사치를 일상생활의 찌질함에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되면 단지 “키가 180cm가 되지 않으면 루저”라던 과거 한 패널의 말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 앨범은 이것만으로 여정을 마치지 않는다. 전작에서 찰리 파커(Charlie Parker)의 Ornithology(조류학)을 연상시키는 구조지질학으로 패기만만한 실험정신을 보인 이들은 이번에도 거친 참치들로 가슴 속에 비수처럼 갖고 있는 도전정신을 꺼낸다. 비틀스(The Beatles)와 비교되는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나, 그린 데이(Green Day)와 비교되던 오프스프링(Offspring), 혹은 오아시스(Oasis)와 자웅을 겨루던 블러(Blur)처럼 이들의 고민은 어쩌면 다른 길을 누구보다 더 쉽게 갈 수 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이들의 소원대로 “조금 기다려”야 할 듯하다. 이들이 내보일 최고의 비밀병기는 다름 아닌 “나의 노래”로 대변되는 음악이고 “성난 파도 폭풍우가 와도”, “별”이 보이지 않아도 “마음먹은 대로” 묵묵히 “바다를” 건널 거라는 뚝심을 내보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9회 말 투 아웃 풀 카운트가 되어도 휘두르지 못할” 것 같은 나약한 소심함은 읽을 수 없고, 프로메테우스가 짊어진 것 같은 “영원한 형벌”을 견뎌낼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비록 공연에서는 정제되어 있지 않은 콜리지 록의 투박함이 묻어나고, 기타 애드립으로 간주를 때우는 일관된 형태가 지루하긴 하지만, 송곳니에서 보듯 기타 리프를 만들어 내는 김예슬의 솜씨는 골방연주 전문인 숨은 하수의 모습이 아니다. 상당히 혹은 일부러 못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던 스테이크의 면모와 달리 자외선의 후렴구에서 인상적인 보컬 실력을 보여줬던 황인경은 이번에도 허스키한 목소리로 드라이하게 곳곳을 채운다. 평행사변형과 거친 참치들에서는 샤우트로 응수하며 기타 주도의 밴드음악에 어울릴 만한 음색으로 역량을 강화 중인 것이다.
20120406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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