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미학2011.11.27 01:03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얼굴 표정이나 몸짓, 언어, 혹은 자신이 지닌 고유의 분위기로 상대방에게 내뿜는 어떤 기운 같은 것들이 있지만,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이용해 문화를 일궈낸 인간은 이외에도 다양한 감정 표현의 대체물들을 개발해왔다. 그림, 조각, 음악, 영화, 오페라 등 수없이 많은 문화적 분야가 그렇다. 거기에 이것들을 실어 나르는 매체도 또한 매우 다양해져 셀 수 없이 많은 조합이 가능해졌다. 이 감정 표현의 대체물들은 다양한 문화적 혹은 기술적 장치들과 결합해 계속 분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음악은 우리의 희로애락을 가장 잘 반영하는 분야가 아닐까 싶다. 물론 정말 그런지는 모른다. 이것은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그렇다라고 못 박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연주를 목적으로 하는 음악을 제외하고 모든 음악은 ''이 대체하고 있기에 표제, 즉 제목이나 주제가 없으면 인간은 그 곡이 주는 다양한 해석의 십자포화를 자신의 데이터에 반영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 음악으로 인해 어떤 감정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 획일적으로 규정지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표제가 주어진 경우, 예를 들어 명확한 제목과 가사가 있는 노래를 사랑의 표현으로 대신하는 것 등은 그 표현하는 주체의 생각을 받는 객체가 확실하게 의도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음악을 사랑이나 기타 여러 감정의 표현으로 이용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음악 자체가 어떤 감정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 물자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는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로 대표되는 무조음악을 불안하게 느끼고 3도 화음 같은 것을 안정적으로 느끼지만 바로크 이전만 해도 3도를 불안정하게 느꼈던 시기가 있었다. 이것은 음악 역시도 경험의 산물이라는 것을, 모든 것은 해석의 문제이고 이것은 어쩌면 정치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글을 놓고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은가.    

에두아르드 한슬리크(Eduard Hanslick)는 절대음악을 옹호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와 같이 절대음악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표제가 음악의 해석을 한계지우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그리고 음악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다른 세계의 무언가를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의견이 그런 해석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강력한 회의가 든다. 아마도 절대음악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대로 음악은 표제로 전하려는 메시지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음의 나열일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칸트(I. Kant)의 표현을들자면, 인간은 그 해석 이상 나아갈 수 있는 어떤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음악을 표제에 싣어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감정을 넘어선 어떤 것도 지각하지 못한다. 따라서 모차르트(W. A. Mozart)클라리넷 협주곡을 아무런 표제 없이 즐기거나 그 음악이 너무 좋아 계속 끼고 살 수는 있지만 그 음악이 왜 나에게 그런 감정을 일으키는 지에 대해서는 다만 우리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혹은 그 걸 좋아하도록 만드는 경험을 해왔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음악의 역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옳을지라도 우리는 절대적으로 감정을 배제한 음악을 느낄 수는 없으며 더더욱이 그것이 이 지상의 세계를 넘어 어떤 절대자의 세계를 암시하는 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이런 논리의 전개과정에 비추어 음악에 표제를 넣어 사용하는 것 역시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이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본다. 그리고 또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천사, 혹은 신(神)이 있다면 인간의 데시빌(dB)과 같을까를 고민해 보게 된다. 우리는 지구가 도는 소리를 들을 수 없을지 몰라도 아마도 위대한 신은 (진공상태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차르트를 찬미한 '천사도 감동한 모차르트'와 같은 카피는 정말 헛소리라고 본다.(물론 철학적 정당성을 떠난 문학적 표현으로서의 그 표현은 인정한다) 만약 내 말에 동의하지 못하겠거든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상상해 보라.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가? 그렇다면 위대한 인간은 개미나 거미, 미생물의 음악을 듣고 아름답다고 느껴야 할 것이다. 저 하찮은 것들이 무슨 음악을 하냐고? 존 케이지(John Cage)433를 들어보라. 그들이 그것을 음악(이런 표현 역시 인간적인 것이다)이라고 느끼던 그렇지 않던 간에 세상의 그 무엇도 음악이 될 수 있다.

20080830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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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현지운 Rainy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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