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603 (1989)
나미, 소방차 등의 댄스 음악 계열이 많은 사랑을 얻기도 했지만 전적으로 발라드의 한 세대를 책임졌던 1980년대 말에 등장해 발라드 가수의 계보를 잇는 듯했던 이승환의 데뷔 음반이다. 엄청나게 큰 사랑을 받는 가수가 되지만 시작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대학을 팽개치고 딴따라의 길에 들어섰지만 주 록음악에 심취한 이 청년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10여 군데의 소속사를 전전하며 오디션을 봤지만 퇴짜를 맞아야 했고 서울음반을 만나서야 데뷔 앨범을 발표할 수 있었다.
반 이상의 곡을 자신의 곡으로 채우며 본인의 색깔을 내세웠지만 류지화의 텅빈 마음과 오태호의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가 높은 인기를 얻었으며 그를 발라드계의 새로운 왕자로 부추겼다. 그러나 라디오가 주요한 매체로 각광받던 시절인 당시에 가을 흔적과 눈물로 시를 써도 등 다른 여타의 발라드 곡들 또한 전파를 탔으며 이승환의 록적인 기절을 발휘한 좋은 날과 크리스마스에는, 그저 그런 이야기 등도 앨범의 구매욕을 자극했다.
앨범 타이틀로 인해 그는 '어린 왕자'라는 별명을 얻었고 요즘 주요한 전략의 하나가 된 '얼굴 없는 가수'만큼은 아니지만, 대중 매체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아 궁금증을 유발할만한 기사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그는 이 앨범으로 주류 음악계에서 힘있는 신인으로 꼽혔지만 앨범 재킷의 평범한 외모만큼이나 그것은 그리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Always(1991)
2집으로 돌아온 이승환은 후에 법정 다툼을 벌어야 했던 어수은의 너를 향한 마음으로 '91년 가을을 강타한다. 그리고 겨울에는 오태호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으로 확실하게 정상의 물고를 틀어쥔다. 이 음반은 91년 신승훈(이승환과 신승훈은 이 당시 발라드계의 라이벌로 하이틴 잡지에 소개되곤 했다)이 데뷔앨범으로 제기한 도전을 가라앉힌 것이었으며 신승훈의 2집과 함께 변진섭, 이문세가 주도권 다툼을 하던 발라드 음악계의 파이를 양분했다. 이승환과 신승훈의 장점은 80년대에 인기를 얻었던 여타의 가수들과 달리 싱어 송 라이터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승환의 히트곡은 번번이 다른 작곡가의 손에서 나왔으며 이러한 시장의 선택은 계속 이어진다.
90년대 들어 댄스음악으로 세대가 교체되었음에도 이승환이 장수의 가능성을 견지한 것은 다른 가수들과 달리 라이브에서의 진가를 보여주면서부터였다. 이 자그마한 체구의 어린 왕자는 무대를 뛰어다니며 관중들과 호흡하기 시작했으며 전속 밴드 올웨이즈(Always)를 이끌고 종횡무진 전국을 누볐다. 앨범에서 줄 수 있는 묘미와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 덕분에 그는 라이브의 황제라는 영광스러운 닉네임을 얻었으며 이 전설은 시간이 지날수록 향기를 더한다.
최희준의 하숙생을 소프트 록으로 리메이크한 이 앨범은 회상이 지나간 오후, 먼 시간 속의 추억, 이 밤을 뒤로와 같은 수준작이 숨어 있으며 냉소를 알기 전 이승환의 따뜻한 미소에 쌓인 여린 감성이 묻어 있다.
2·5·共·感 (1992)
이 조인트 앨범을 위해 뭉친 이승환과 오태호는 대학 시절 아카시아란 그룹에서 활동하며 익히 친분을 쌓아오던 사이였다. 이 앨범이 나오기 전에 오태호는 이미 이승환의 앨범에 수록된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이나 기다린 날도 지워진 날도 등의 히트곡을 만들며 작곡가이자 음악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으며 이승환도 1, 2집의 대성공으로 인기 가수로서 자리를 굳힌 상태였다.
예전부터 둘 만의 이름을 새긴 음반을 만들고 싶었던 이들은 피자를 먹던 와중에 의기투합했고 그렇게 한 장의 명반을 내놓았다. 이오공감(둘의 성을 따서 이오라고 하고 한자로 공감(共感)을 붙였다)이라 이름 붙인 이 앨범의 A면은 이승환의 곡들로 채우고 B면은 오태호의 곡으로 채웠다. 그래서 프로젝트의 개념보다는 과거 <신중현 작곡집>에서 볼 수 있는 스타일의 앨범으로, 두 뮤지션의 곡 스타일이나 감성을 분리해서 보여준다. 이승환은 아기자기한 편곡과 곡 스타일로 노래에 치중하는 한편 오태호는 상대적으로 처량한 음색으로 강력한 훅이 돋보이는 뛰어난 멜로디 위주의 곡들을 선보이고 있다.
A면에서는 김용선이 만든 만화 영화 음악 <프란다스의 개>의 주제곡을 효과적으로 편곡해 덧입힌 프란다스의 개가 히트했고 이승환이 3집에서도 연작을 선보였던 잃어버린 나 시리즈가 그의 탁월한 감각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특히 서재형이 참가해 현 위주의 편곡과 코러스의 멋진 앙상블이 돋보이는 잃어버린 나 part 2는 그의 최고 걸작 중의 한 곡으로, 후에 발표하는 너의 나라나 나의 영웅 등과 같은 대작들의 전조가 되는 곡이다.
하지만 이 앨범의 결정판은 바로 B면을 장식하고 있는 오태호의 곡들이다. 여기에는 그룹 공중전화 시절 발표했던 사랑이 그리운 날들에가 보너스처럼 실려 있고 이승환과 오태호가 같이 부른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 대단한 히트를 기록했다. 이승환에 비해 오태호의 곡들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우리를 무릎 꿇게 하는 놀라운 곡들이 대부분이다. 한 곡도 빼놓지 않고 히트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이 곡들은 그가 괜히 히트제조기가 아님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승환도 M.net <봄여름가을겨울의 숲>에 출연해 "오태호의 B면 때문에 앨범이 엄청나갔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 같은 히트곡이 있어서"라고 말한 바가 있다.
다만 약점은 오태호의 애처로운 보컬이다. 처음에 들을 때 그의 흐느끼는 듯한 보컬은 감상자들에게 약간 지루함을 줄 수도 있다. 이러한 부분은 좋은 곡임에도 선뜻 선곡을 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뛰어난 보컬톤을 가진 가수가 부른다면 대단히 만족스러운 조화가 될 것이 틀림없는 곡들은 오태호의 슬픈 목소리에 묻혀 이승환의 통통거리는 목소리에 비해 힘을 잃는다.
이 앨범은 댄스 시대의 시작과 정면으로 충돌한 앨범이지만 그 작품성으로 인해 꾸준한 판매고를 올린 앨범이고 댄스의 거품이 간간이 가신 이후에도 늘 조명을 받는 앨범이다. 음악계에 카리스마의 위상을 차지하게 된 이승환과 달리 뛰어난 곡들로 채우고 있음에도 솔로로서의 성공을 맛보지 못한 오태호는 작곡가로서는 굉장한 인지도를 쌓는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가 가진 역량에 비해 작곡가로서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발라드에 대한 팬들의 입맛이 바뀐 탓이라기 보다는 운이 없다고 보는 쪽이 옳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곡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팬들은 꾸준히 인터넷을 뒤지며 그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않고 있다.
The Show (1993)
1993년 1월 17일 인천 실내체육관과 2월 28일 잠실 체조경기장에서 가졌던 라이브 공연 중에서 하이라이트 부분만을 모아 구성한 이 앨범은 키보드 주자 박용준이 속해 있던 그의 전속밴드 올웨이즈(Always)가 연주를 해 주고 있으며 오태호, 이정식, 이현석 등의 게스트 뮤지션들이 함께 하고 있다. 1, 2집과 이오공감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라이브용으로 편곡해 기존의 곡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수많은 리허설로 관객들과 함께 하는 라이브 공연의 유연함으로 라이브 황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LP와 CD의 교체시기에 나온 이 음반은 LP는 더블로 제작되어 총 19곡을 전부 소화시킬 수 있었지만 CD에서는 15분 가량이 잘려나갔다. 하지만 앳된 모습을 드러내는 속지의 사진만큼이나 이승환의 쌩쌩한 목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음반 중간 중간에 선보이는 웅장한 코러스는 1백 명이나 되는 합창단의 울림이며 나는 나일 뿐과 사랑하는 걸은 도입부를 스튜디오 녹음으로 시작해 중간에 라이브 실황으로 전환하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했다.무엇보다도 앨범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패턴을 창출하는 이승환의 라이브 음반은 왜 가수들이 립싱크를 하지 말고 라이브로 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앨범이후 박용준을 제외한 올웨이즈의 멤버들은 앨범을 만들기 위해 이승환과의 만남을 접었지만 화제 거리를 만들지는 못했다.
My Story (1993)
“영원한 건 아무 것도 없다. 사랑도 미움도... 그리고 미움도, 나에겐 그랬다”로 시작하며 자전적 상념을 음반으로 옮긴 이승환의 세 번째 음반은 정석원, 오태호, 김광진 등의 화려한 작곡자 진용과 함춘호, 조동익, 박용준, 김현철 등의 세션진, 조규만, 조규찬, 우순실 등이 가세한 막강한 코러스진, 남성 35인조, 여성 10인조, 어린이 4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참여하며 이후부터 시작되는 초호화 세션과 거대 물량이 투입된 후기작들의 라인 맨 앞줄에 서 있는 노작이다.
김광진의 세련된 발라드 내게와 온갖 의성어가 즐거운 상상으로 몰고 가는 덩크슛에 많은 빚을 지고 있긴 하지만 이후 오태호의 화려하지 않은 고백이 많은 사랑을 받았고 높은 판매량답게 다수의 곡이 노래방에 깔리며 그의 인기를 뒷받침해 주었다. 이승환의 역작 시리즈 잃어버린 건...나 part 3,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 스타일의 편곡으로 웅장함을 느끼게 하는 무너져버린 믿음 앞에서등이 대중성의 대척점에 서 있으며 작곡자의 스타일에 함몰되지 않고 이승환 자신의 고유한 보컬톤을 보여줌으로써 이승환의 앨범에서는 그가 주인임을 각인 시켜 주고 있다.
한때 손진태가 편곡한 화려하지 않은 고백의 도입부로 인해 마음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사랑에 대한 불신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녹아 있는 이 앨범은 이승환을 평범한 발라드 주자에서 음악계의 장인으로 가는 길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Human : the different side (1995)
정석원과 데이빗 켐벨(David Campbell)을 프로듀서로 끌어들인 이 앨범은 이승환을 인기 면에서뿐만 아니라 음악성인 측면에서도 국내 최고의 가수로 끌어올린 음반이다. 이승환의 완벽주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국내와 외국을 오가며 이루어낸 양질의 녹음, 200여 명의 세션, 당시 CD 분량의 한계까지 다달은 음원 등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 앨범은 댄스씬의 활황 속에 던져진 한 줌의 모래 역할을 하며 당대의 뮤지션들 모두에게 용기를 주었던 음반이다.
이승환이 그 동안 불러왔던 조용한 스타일과 약간의 미디엄 템포를 담고 있는 물(Water) 사이드와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스타일인 록의 여러 형태를 분사한 불(Fire) 사이드로 되어 있는 이 음반은 인간의 양면을 물과 불에 대비시킨 이승환 개인의 철학만큼이나 확연히 다른 음악 스타일을 창조했으며 이후 팬들을 위한 면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위한 면으로 가르는 패턴을 만들어 냈다.
김동률의 뛰어난 발라드에 이승환의 가사가 일품인 천일동안이 아주 오랫동안 사랑 받은 이 앨범은 후속곡으로 재미있는 뮤직 비디오가 인기를 얻었던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인기를 모았고 이승환의 성숙한 작곡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체념을 위한 미련, 김동률의 다만, 김광진의 흑백영화처럼, 전형적인 지누 스타일의 부기우기, 유희열의 변해 가는 그대, 1집의 그저 그런 이야기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이승환만의 스타일 멋있게 사는 거야 등의 훌륭한 곡들이 빼곡이 앨범을 채우고 있으며 9분 여에 이르는 대곡 너의 나라의 프로그레시브적인 파노라마가 최후의 피니시 블로우를 준비하고 있다.
단 한 곡도 소홀히 들을 수 없는 이 앨범은 김동률, 김광진, 유희열, 정석원의 곡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시켜 그 원작자를 알 수 없게 만든 이승환의 고집스러운 카리스마로 완성된 장인정신의 승리이며 이승환 음악의 결정판이다.
His Ballad (1997)
발라드 모음집이다. 재지한 분위기의 이상과 현실, 강수지와의 듀엣곡 그들이 사랑하기까지, 타이틀곡으로 밀었던 침묵의 기록 등의 신곡이 포함되어 있으며 마법의 성은 기존의 올스타버전과 달리 MGR, 유희열, 김형중, 양파, 조원선, 이장우, 김장훈, 사준, 윤종신 등의 호화 게스트로 짜여져 있다. 천일동안은 4집의 편곡 그대로 실었지만 너를 향한 마음, 너의 기억 등은 지누와 유희열이 쿵짝리듬를 강하게 넣어 새롭게 편곡했으며 기존에 알려진 히트곡들도 원래 편곡자들을 다시 기용하거나 박용준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원곡이 가진 이미지를 부술 만한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어 냈다. 덕분에 베스트 음반이 가지고 있는 미덕을 과감히 말소시켜 오리지널 히트곡들을 듣고 싶은 새로운 구매자들은 당황했지만 기존의 팬들에게는 마치 새로운 앨범을 건진 듯한 느낌을 주었다.
Cycle (1997)
지난 앨범을 프로듀싱한 데이빗 켐벨(David Campbell)과 정석원 대신 전면으로 부상한 유희열의 도움을 받고 있는 이승환의 여섯 번째 앨범은 이별과 사랑 노래에 천착하던 그의 모습에서 벗어나 조금 더 세상과 현실감각을 보여준 앨범이다. 앨범의 주요 테마처럼 3부작으로 되어 있는 아이에서 어른으로는 항상 어린 왕자일 것만 같았던 그에게서 현실을 직시하게 된 어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며 붉은 낙타에서의 호방한 기운과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곡으로 선정된 세상사는 건 만만치가 않다의 해학적 기질, 영화 <라이온 킹(Lion King)>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앨범의 베스트 트랙 사자왕 등에서 보여주는 록 성향의 곡들이 전체를 버무리고 있는 가운데 가족간의 이해와 화해를 도모한 가족이 많은 사랑을 얻었고 귀신소동으로 이후 언론과의 대화를 단절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준 애원이 후속곡으로 인기를 얻었다.
방대하지만 전체적으로 4집에 비해 짜임새와 구성에서 조금 밀리는 양상을 보여주는 앨범이지만 그러나 음반에 공을 들인 흔적만은 지울 수 없으며 음반 한 장 한 장을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만들려는 그의 의도는 경외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The War In Life (1999)
러닝타임을 60분이 넘도록 가득 채우는 이승환의 집념과 열정적인 도전의식은 이 앨범에서 와서도 마찬가지로 스러지지 않는다. “새로운 빛이 대질 감싸고/ 성난 기운이 우(愚)를 내친다/ 어둠의 시간은 멀리 떠나고/ 희망의 역사를 쓰게 될 거다”라고 대예언을 하고 있는 이 앨범의 재킷은 '희망을 수혈하는 주사기'가 의미심장하게 전면을 장식하고 있으며 음반은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뉘어 타협과 실험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의도를 서슴지 않고 드러냈다.
웅장한 서사적인 발라드 그대는 모릅니다라는 곡을 타이틀로 내세웠지만 이보다는 이규호의 예쁜 고백 세 가지 소원이 더 폭넓은 사랑을 얻었고 명작으로 아직까지 호평을 얻고 있는 비디오 클립이 인상적인 당부가 후속작으로 인기를 끌었다.
정상 사이드에도 첫날의 약속과 같은 멋진 메시지송이나 고(告)함, 오늘은 울기 좋은 날과 같은 이승환적인 컨벤션이 잘 어우러진 곡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앨범의 하이라이트는 찡그린 인상을 하고 있는 비정상 사이드다. 애원의 비디오 클립이 가져온 귀신 조작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던 이승환은 귀신소동이라는 곡을 만들어 여전히 화가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숨어있는 베스트 트랙 MGR의 Rumour, 김세황의 마무리 기타와 이승환의 절규가 그의 록에 대한 본질적 본능을 깨우쳐 주는 Let It All Out 등이 이 쪽 면을 화려하게 매워주고 있다. 거기에 너의 나라를 연상시키는 비장한 사랑의 영웅시 나의 영웅, 이호와 양금의 소리가 가슴을 울리며 파고드는 당부까지 이 비정상의 트랙들이야말로 이승환의 본성을 규정짓는 가장 정확한 음악들로 음악의 발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이 비정상 사이드가 더 정상적으로 들린다.
유희열, MGR, 이규호, 황성제, 윤상, 지누, 김진표, 김세황 등의 초호화 국내 세션과 외국 세션이 참여한 이 앨범은 자신의 스튜디오 드림 팩토리에서 총 1,100여의 녹음 시간, 단일 곡 최다 믹싱 시간인 42시간, 단일 곡 최다 90트랙 사용 등의 기록을 세우며 완벽주의자 이승환의 세심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Egg (2001)
우리에게 음악이란 무엇일까? 취미로 혹은 그냥 좋아서 시작한 음악은 앨범 한 장의 소망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이루어지면 자신의 음악으로 세상정복을 꿈꾸고 그렇게 인간은 끝없는 욕심을 만족시키며 꿈을 이루어 나간다. 하지만 어느덧 직업이 되어 타성에 젖게 된 음악은 한 곡 이상 뜨지 않으면 무명가수로 쉽게 전락하게 되고 애초에 순수한 동기로 시작한 이 뗄 수 없는 마약은 쉽게 세상과의 타협으로 귀결점을 찾기 십상이다.
히트해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비슷한 종류의 음악으로 팬들의 귀를 사로잡아야 하고 자신도 모르게, 혹은 의도적으로 히트할 수 있는 음악적 패턴을 익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은 뒷전으로 밀려보내야 한다. 혼자만의 고생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 어릴적 소원은 제작사 식구들과 기획사 식구들, 그리고 음반을 같이 만든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해야 될 정도로 커져버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음반들을 떠올리며 안전빵의 열쇠를 찾는다. 철저한 예술가의 혼으로 불살라 최극점의 고갱이를 실현시킬 무기로 알았던 음악은 이렇게 대중화되고 이렇게 뮤지션의 자세를 갉아먹는다. 하지만 실패의 두려움을 자식같이 떠 안고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연약한 가수들에게 우리는 돌을 던질 수 없다.
주류의 가수들 중에서 그 대중적 반경이 가장 넓은 이승환의 선택은 위와 같은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고집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 절충점은 지난 앨범의 정상과 비정상 사이드에서 한 발짝 나아가 아예 발라드 계열의 음악과 분노에 찬 록 사운드 계열을 분리해 버렸다. 그래서 팬들은 자신의 스타일을 고를 수 있게 되었으며 이승환은 다른 가수들에 비해 판매량에 덜 걱정하면서 음악을 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누가 들어도 이승환의 음반으로 인정할 수 있는 부드럽고 히트의 예감을 확신케 하는 잘못과 기다림이 수록된 Sunny side up에 비해 Over easy는 기운찬 록커의 자존심을 드러낸 이질적인 음반이다. 자신의 곡과 이규호, 정석원 등의 입김을 빌린 명확하지 않은 실체에 대한 분노는 그의 음색을 좀더 드세게, 사운드를 조금 더 거칠게 몰고 가고 있으며 조용한 음색을 깔고 있는 곡이라도, 여느 때와 달리 원색적인 어투로 난무하는 가사 속에서 그 진의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분열적인 시선은 어쩌면 우리 나라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록에 대한 야심을 숨기고 댄스 가수로 지내다 하드코어로 복귀한 서태지나 아직도 록과 테크노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는 발라드 가수 이현우 등 이 땅의 많은 가수들은 한 쪽에는 하고 싶은 음악을 끌어안고 한 쪽에는 대중이 원하는 음악을 이고 간다. 하지만 서서히 수면위로 올라선 본색을 확실하게 드러낸 이번 앨범에서 “꼴통같이 타협도 싫고 독종같이 고집만 센” 이승환은 어서 “원하는 것 모두 가질 수 있는 대신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위험한 낙원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정작 그의 수명을 연장시킨 것은 바로 이런 측면 이였다고, 이승환이란 계란 하나가 이토록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니 그 누구도 그럴 수 있다고. 이것은 성공만을 위해 달리는 우리들이 성공에 그치지 않고 성공한 뒤에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우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200201 / 20120521 / 이즘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어쩌자고 그러고 사니? 발은 뻗고 자는 거니
가사전문 http://m.music.daum.net/song/vcliplyrics?song_id=8232421&album_id=497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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