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荒城)의 적(跡)은 대한민국 가수 이애리수(이음전, 19100101 - 200900331)가 1932년 4월에 빅터사에서 발표한 곡으로 대중음악사에서 축음기라는 대중적 매체를 이용해 히트한 최초의 곡이자 일본 엔카의 요나누키 단조(트로트)로 만든 최초의 히트곡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3박으로 되어 있어 기존의 국민정서와의 융합을 시도한 곡으로 보기도 한다. 아주 빠른 시간에 5만장이 나간 것으로 보아 이 곡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파이가 커져 작곡가들과 가수 지망생이 많이 등장했다.
제목은 '황폐해진 성에 남은 유적'이란 뜻으로 기본적으로 화자가 망해버린 옛 왕조의 성터를 돌아보며 애석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가사는 나라를 잃어버린 당시 조선인들의 가슴을 아주 강하게 위로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황성 옛터라고 더 많이 알려졌는데 이는 유통 과정에서 제목보다는 곡의 맨 처음 부분을 가리키면서 전달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금보다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제목이 제대로 공시되기도 힘들었고 되었더라도 지속적인 노출이 되기는 힘들어 의사 소통과정에서는 첫 소절을 가지고 정보를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다. 타향의 "타향살이"와 낙화유수의 "강남달"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작사는 포리돌레코드 조선 지점 초대 문예부장 왕평(19080315 - 19401231), 작곡은 전수린(전수남, 19070215 - 19841128)이 했다. 둘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송도)에서 공동작업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이 둘은 연극단 단원이었는데 순회공연차 개성에 머무르게 되었다. 하지만 비로 인해 공연이 취소됨에 따라 여관에만 있어야 했고 방안에만 갇혀 있어야하는 답답한 심정을 개성의 만월대에 빗대어 곡을 만들었다. 고려후기의 문신 야은 길재의 시조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를 연상시킨다.
이 곡의 대대적인 인기는 조선총독부를 긴장시켰고 1933년에 취체규칙이라는 것을 만들어 결국은 출판물이나 음반에 대한 검열을 강화하게 되었다. 이 곡의 인기를 두려워한 것은 가사가 주는 조선인들의 동질감에 불을 지른 것에 대한 불안 때문일 것이다. 실례로 이 곡에 대한 반응이 너무 크자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총독부는 순사를 극장에 파견했다. 극장에 이애리수가 등장하자 관중들은 환호를 보냈고 노래가 끝나자 종교집회 같은 열광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본적이 없던 조선인들의 단합에 놀란 순사는 휘슬을 불며 그 분위기를 제지했고 급기야는 그 공연을 해산시켰다. 아마도 3.1 운동 때 그 열렬한 단합이 떠올라 겁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 이 곡은 금지곡이 되었고 한 초등학생이 이 곡을 부르다 순사에게 걸려 학생의 담임이었던 선생이 감옥에 들어가는 일까지 생겼다. 이후 금지곡은 비일비재한 일이 되었고 1934년에 나온 비슷한 주제의 서울의 노래 역시 금지를 당해 출반 하기까지는 몇 차례 개사를 거쳐야 했다.
가사에 대한 해석은 <한국대중가요사>에서 음악평론가 이영미가 말 한대로 "옛것을 그리워하고 슬퍼하는 상태에서 끝난다"는 시각도 있으나 <오빠는 풍각쟁이야>에서 음악평론가 장유정은 그렇게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불만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갈등의 해소방식으로 다른 대상을 지향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한국가요 정신사>를 집필한 작사가 김지평은 의문문이 아니라 "그 무엇 찾으려 덧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하고 평문으로 처리한 것은 화자 자신이 '그 무엇'을 정확히 알고 있고 또 이 노래를 듣는 우리 겨레 또한 화자가 찾는 '그 무엇'을 잘 알기에 설의법이 아닌 평문 맺기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장유정은 같은 책에서 "단순히 옛것에 대한 그리움에 빠져 눈물과 통곡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옛터에 작별을 고하고 '발길 닿는 곳으로 가겠다'며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아주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현지운 rainysunshi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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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 녯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달빛만 고요해
폐허의 스른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는구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못 일우어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루고
구슯흔 버레 소래에 말업시 눈물지어요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 흘리네요
성은 허무러저 빈터인데 방초만 풀으러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향기로운 풀만 푸르러
세상의 허무한 것을 말아여 주노나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는구나
아 가엽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차즈랴
아 가엾다 이내 몸은 그 무엇을 찾을까
덧업난 꿈의 거리를 해메여 잇노라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고 있노라
나는 가리라 끝이 업시 이발길 닷는 곳
나는 가리라 끝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
아 한업난 이 심사를 가삼속에 품고서
아 한없는 이 설움을 가슴속에 품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정처 없이도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목적지 없어도
이 몸은 흘너서 가노니 녯터야 잘 잇거라
이 몸은 혼자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거라
[1920s/1927] - 낙화유수(落花流水) -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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